노마드 3.0, 세상 바로 보는 관점

진보 vs보수, 개혁 vs수구

by 노마드 프리너

노마드, 자립

노마드로 살아가는 일은 어쩌면 자립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스스로 홀로 서는 일, 중심을 잡고 내가 원하는 방향의 삶을 설계하며 살아가는 일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중심을 잡는 일이다.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해석하며 입체적으로 이해하며 그걸 바탕으로 다음으로 나아갈 방향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나만의 원칙과 상황에 따른 대응 능력을 키워 그 길을 만들어 나가며 자립해야 한다. 어떤 이념, 조직, 계층 등의 논리에 매몰되는 것이 아닌 나만의 관점을 통해 이해하되, 여러 이해관계자 사이의 공통의 이익을 만들어내고 충족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만들어 가는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그 노력이 꾸준히 쌓여 나갈 때, 세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며 그 안에서 자립할 수 있는 방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아래의 내용에서 이러한 자립을 위해서 경험과 참고한 개념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노마드의 20대, ‘이기적인 놈’과 ‘호구’의 사이

20대 초반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면서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다른 문법(?)이 존재를 느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지방소도시에서 살았고 그곳은 거의 비슷한 계층과 배경을 가진 친구들이 함께하였다. 그런데 서울로 대학을 가다 보니 더 다양한 계층과 배경을 가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방소도시와 큰 대도시인 서울에서 생존하는 일종의 문법(?)이 다르다고 느꼈다. 지방소도시에는 ‘양보’가 미덕이었다. 무언가 좋은 기회가 있을 때 양보를 하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나에게 기회로 돌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사회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함으로 크게 경쟁과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그 기회를 결국 작은 소도시에 나눠지기 마련이니, 조금 기다리며 서로 간 양보 미덕(?)으로 행동해야 했다. 그런데 대도시인 서울을 가니 그 문법(?)이 먹히지 않았다. 예를 들어, 대학강의 시간 끝나고 15분 짧은 시간 동안 강의내용에 대해서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때 내가 먼저 줄을 서서 기회를 얻었지만, 더 간절해 보이는 동기가 있어 그 질문기회를 양보했다. 그 후 시간이 모두 지나 내가 질문할 기회를 잃었다. 그 후 나는 내가 양보했으니, 나에게 다시금 질문 기회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 다시는 그 기회가 나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기회를 얻기 위해선 경쟁을 하고 욕심을 부려야 했다. 새로운 문법에 적응해야 했다. 기회의 총량은 더 많을지 모르지만, 그 기회를 잡기 위한 경쟁자가 훨씬 많았다. 경쟁과 욕심을 부리며 새로운 환경에서 생존해야 했다.


그런데 나의 본가가 있는 지방소도시로 내려갔을 대 ‘왜 이렇게 이기적이냐, 자기중심적으로 변했냐’라고 비난받았다. 나의 경쟁과 욕심은 그들에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서울에서 기회를 양보하는 일은 바보 같은 짓이었고, ‘내가 양보했는데 그 양보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 돌아오는 말은 ‘네가 호구라고 그래. 왜 그걸 양보하냐’라는 식의 비난을 듣게 되었다. 양쪽에서 나는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어려웠다. 지방소도시와 서울에 거리는 100km 남짓 차이였는데, 생존을 위한 문법은 확연히 달랐다. 누구도 나를 이해하기보단, 자신들의 문법에 맞지 않는 나를 비난하기 일쑤였다.


난 그때 ‘나만의 원칙’을 세우로 마음먹었다. 어떤 그 환경의 문법보단 내가 믿고 따를 수 있는 원칙을 만들고자 하였다. 대학교 중앙도서관 5층, 인문학 코너에 틀어 박혀서 닥치는 대로 읽었다. 문학, 철학, 역사, 법학, 심리학 등등 그 환경의 문법을 넘어서는 원칙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읽었다. 자연스레 그 원칙들이 조금이 만들어지며 그대로 행동하며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그에 따라 판단하며, 문법과 다르다는 비난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내가 정한 대로 해 나갔다. 그 원칙에 따라 상황별로 행동해 나갔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대응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이 생겨나갔다. 원칙은 세워져 있되, 어상황에서는 이런 행동을 저런 상황에서는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는 기준이 생겼다. 그렇게 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나만의 관점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어떤 상황에서 나에게 최선의 결과가 나올 수 있는 대응 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이 배양되어 나갔다.


노마드 세상을 바라보는 눈, 진보와 보수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의 잣대는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이해하고,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것에 따라서 어떤 국가의 방향성이 바뀌고, 그에 따라 개인의 삶의 경로로 바뀌기 대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한 경제학자의 정의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근대사회에서 진보파와 보수파의 구분은 경제활동을 조절하는 기본적인 두 축인 ‘시장’과 ‘국가’의 상대적 양에 관한 것이다. 진보파는 시장보다 국가를 더 선호하며 보수파는 그 반대다. 국가가 자원을 배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세금을 많이 거둬 그것으로 복지를 강화하자는 게 진보파고, 그 반대로 세금과 복지지출을 줄이자는 게 보수파다. (중략)

나아가 ‘진보↔보수’를 근대사회를 넘어 인류사회 전반에 적용하면 어찌 될까. 진보파는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며 사회연대(공생), 경제적 평등, 분배, 민주성, 정치적 자유를 강조하는데 반해, 보수파는 사회적 강자를 대변하며 자기책임(경쟁), 경제적 자유, 성장, 효율성, 정치적 질서를 강조한다. 인간 본성을 따지자면 진보파는 모성과 음에 가까우며, 보수파는 부성과 양에 가깝다.

이렇게 설명한다. 즉, 시장과 국가 상대적 양에 관한 것이며 서로 상대적 개념이다. 두 개념은 상호보완적 관계이지 적대적 관계가 아니다. 진보와 보수가 어떤 차이이며 어떤 배경에 따라 진보와 보수적 관점으로 달라지는 게 알 수 있게 된다. 지금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데 굉장히 큰 해석의 틀로 활용이 가능하다.


노마드 세상을 바라보는 눈, 개혁과 수구

여기에 다른 선진국에서 잘 볼 수 없고 개념이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개혁과 수구의 구분이다. 사회적 신뢰와 특권구조가 적은 나라에서는 이러한 개념자체가 생소하고 필요가 없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후발대로 성장하는 있는 국가에서는 이러한 개념을 알아둘 필요성이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진보와 보수라는 구분과 별개로 ‘개혁과 수구’라는 구분도 강조될 필요가 있다. 개혁파는 근대사회의 두 축인 시장과 국가의 질을 높이려는 세력이고, 수구파는 이에 반대하는 세력이다. 시장의 질을 높인다는 것은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경쟁을 발전시키는 것이고, 국가의 질을 높인다는 것은 국가의 민주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근대사회를 넘어 인류사회 전반에 대해 개혁↔수구를 규정한다면, 사실과 이성에 입각하며 효율성과 민주성을 모두 해치는 사회시스템, 예컨대 부패와 특권구조 같은 걸 뜯어고치려는 세력이 개혁파고 수구파는 이를 저항하는 세력이다.(중략)

나는 위의 ‘개혁↔수구’를 이해하는 순간 많은 세상 일들이 해석되었다. 이 개념이 참 중요하다고 느꼈다. 부패와 특권구조를 계속하여 유지하는 세력과 그것을 고치려는 세력을 수구와 개혁으로 나누고 그에 따라 세상의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해석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진보적인 단체였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과 특권구조를 강화하려는 단체로 변하였을 경우, 수구적 진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다. 그들은 개혁의 대상이며 그들의 논리가 수구적인지 개혁적인지 따져서 가려들을 수 있다. 이 관점이 생기면 세상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행태가 진보인지 보수인지를 넘어 수구인지 개혁인지를 관통하여 볼 수 있다.


위의 개념들을 가지고 있다면, 어느 조직과 이념, 계층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으며 올바르게 세상을 바라보며 나만의 방향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설정하는데 큰 개념으로 작용되며, 이 관점을 통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노마드 설계노트>

Q1.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문법(?)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그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였는가?
Q2. 진보와 보수는 무엇인가? 개혁과 수구는 무엇인가? 이 관점으로 해석할 수 세상의 일은 무엇이 있는가?
Q3. 내가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서 나에게 던질 질문 한 가지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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