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폼폼 Nov 03. 2022

교사의 자괴감 : 나 교사해도 괜찮을까

학생이 주는 좌절감, 학생이 건네는 격려

  중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우리 반 학생을 지속적으로 툭툭 건드리며 괴롭혀 온 아이가 있었다. 1학기 때부터 줄곧 우리 반 학생을 무시하고 놀렸던 아이인지라, 담임 선생님을 통해 말씀드려 몇 차례 지도한 적이 있었는데 1년이 지나도록 그 아이는 변하지 않았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그 아이가 먼저 우리 반 학생을 건드렸고, 심지어 우리 반 학생의 얼굴에는 멍이 남았다. 여태 크게 나서지 않고 담임 선생님을 통해 지도하는 방식을 택해왔으나, 진작에 나서서 지도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담임 선생님과 별개로 나도 단단히 지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거의 모든 교과 선생님들께서 학을 떼실 정도로 만만찮은 학생이었다. 수업 참여는커녕 동학급 친구들을 방해하고 수업 진행을 어렵게 만드는, 동학급 외에도 동학년 아이들을 건드리며 돌아다니는, 선도위원회가 몇 차례 열렸음에도 딱히 달라지지 않는 학생. 직접적으로 수업을 하거나 마주칠 일은 없었지만, 사방에서 들어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어찌 지도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내가 지도해야 할 부분은 다문화 학생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얕보며 괴롭힌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언행이 잘못되었다는 점이었다. 대화 없이 엄한 태도를 보이며 내가 지도할 내용을 일방적으로 전달해야 할지, 대화로 풀어나가며 스스로 답을 찾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나에게 맞는 스타일은 후자였고, 더 교육적일 듯했다. 게다가 아무리 멋대로 막 나가는 학생이라 하더라도, 1:1로 조용히 불러 대화를 시도하면 나쁘지 않은 아이라고 느낀 경험이 꽤 있었던 터라 후자를 택했다.


  쉬는 시간에 아이를 찾으러 교실에 가니 곤히 자고 있었다. 자고 있는 아이를 깨워 잠시 얘기를 하자고 불렀고, 아이는 순순히 따라왔다. 왠지 대화로 잘 풀릴 것만 같았고 수월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대화하는 방식을 택한 것은 나의 실수였다. 부드럽게 아이를 포섭하고자, 무작정 혼내려고 부른 게 아니며, 사건 당시 아이의 입장이 어땠을지 헤아리고 있음을 밝혔다. 또한, 아이가 근래에도 선도 위원회에 대한 처벌을 받고 있는 데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꾸중 듣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하여 스트레스가 작지 않을 것임을 다독여주었다. 이 즈음되었을 때 마음이 열려서 자신의 잘못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시인할 줄 알았으나, 전혀 통하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일부는 인정하지만, 나머지는 전혀 잘못한 게 없어서 내가 자신을 왜 불렀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고 하는 말에도 억지와 오기를 내세우며 지지 않으려는 기세를 보였다. 대화가 통하지 않고 마음이 닫힌 상태에서 대화를 한들 엉뚱한 방향으로 빠질 뿐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막 던지는 무논리에 말문이 막힘을 스스로도 느꼈다. 결국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기는커녕 맥을 놓치려는 대화를 붙잡고 붙잡다가,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고 기싸움에서 지지 않으려고 애쓰다 시간이 가버렸다.


  어떠한 결론도, 뚜렷한 지도 내용도 없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자괴감이 들었다. 대화 방식이 통하지 않은 것에 대한 실망감과 막막함과 함께 4년간 교사 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쌓아온 지도 방법이 무력한 경우를 직접 목격하니 마음이 공허했다. 그리고 조그만 아이 하나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하여 실망감과 부끄러움이 느껴졌다. 아이를 지도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화를 내 버린 것도 아니었고, 아이가 딱히 크게 반항한 것도 아닌 데다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속수무책인 시간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도를 딱히 효과적으로 잘한 것도 아니며 자칫 아이에게 말려들까 전전긍긍하며 지도했다는 생각에 속이 상했다.


  게다가 이 일이 있기 전, 1교시에는 R과 이미 실랑이를 한 판 하고 온 터였다. 잠에 취해 수업에 전혀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R에게 참다못해 화장실에 가서 세수라도 해서 잠을 깨고 오라고 했는데, 나갔다가 들어온 R이 대뜸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휴지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강당 옆쪽, 즉 지금 있는 교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화장실에 다녀오면 안 되냐고 물었다. 수업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은 데다, 방금 보낸 수업 시간도 R이 잠에 취해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기에 R이 화장실에 다녀오면 수업 시간이 이렇게 끝나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지금 꼭 가야 하겠는지, 많이 급한지 확인하고자 두 차례 물었다. 2번째 질문을 들은 R은 성가시고 짜증 난다는 듯 손짓을 하며 "아 됐어요, 수업하자, 수업해요."라고 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1학년 학생 R은 기분이 나쁠 때면 겉으로 안 좋은 기분을 티 내는 일이 잦았다. 누적된 데다 나 또한 사람인지라 예의 없는 태도에 순간 화가 났다. R에게 지금 뭐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R은 더욱 열을 내며 자신의 입장을 따지는 투로 말했다. 감정을 가라앉혔어야 했는데 화가 나서 화를 섞어 지도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R의 그런 태도에 화가 난다고, 왜 지금 이렇게 열을 내며 따지는지 모르겠다고, 수업 시간인지라 꼭 화장실에 가야 하는지 확인하고 보내려고 2번 물은 게 그렇게 잘못한 거냐고 지도하는 척 '화를 냈다'.


  화를 낼 때에는 응당 화날만한 상황이라 생각했는데, 역시 언제나 그렇듯 화를 낸 후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게다가 R은 한국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 혼나면서도 중간중간 무슨 말인지 되물었는데, 화를 내는 과정에서도 단어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갑갑했다.

 

  짧은 시간 사이에 이런 일을 연속으로 겪으니, 자괴감이 엄청났다. 교무실에 와서도 한창 내가 너무 부족하고 못난 교사 같다는 생각에 좀처럼 일이 잡히지 않았다. '나 교사해도 되는 걸까..?'라는 질문만 맴돌았고, 여태 자랑스레 생각했던 나의 지도 과정과 그에 따른 성과가 아무것도 아닌 듯이 느껴졌다. 오후 수업 때에도 그 감정의 잔해가 남아 있었는지 D는 나의 목소리에 안 좋은 감정이 느껴진다고, 기분이 안 좋냐고 물었다. 그 질문을 듣고 나니 아차 싶어 최선을 다해 오해를 풀었지만, 한편으로는 자괴감이 더욱 짙어졌다.


  이 일을 하고 있어서 행복할 때도 있지만, 오늘 같은 날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답을 찾기 어려운 날이었다.


  초과 근무 후 어둑해진 골목을 터덜터덜 걸으며 퇴근하는데,  타이밍이 맞아 각별했던 졸업생 K를 잠시 만났다.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K는, 가정환경으로 인해 몇 차례 죽음을 말했던 아이어서 1년 넘게 마음과 정신을 많이 쏟은 아이였다. 그 과정에서 나 또한 많이 소진되었었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짐을 느낀 적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나라도 손을 꽉 잡고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아이였다. 가정환경은 아이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요인인지라 고등학교에 가서 잘 지낼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오늘 만난 K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의젓하고 듬직해진 외양, 여전히 변하지 않은 가정환경으로 인해 강해진 생활력에 대해 담담히 말하는 모습, 자신이 전공하는 고등학교 학과와 자신의 진로에 대하여 말하는 모습, 구사하는 한국어 단어의 수준 등을 보니 K는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아주 많이 성숙해져 있었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너무 멋지게 잘 커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니 K는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잘 크고 있는 거죠."라고 했다. 겸연쩍어 손사래를 치니, "진짜로, 선생님이 잘해주셔서 우리가 이렇게 잘 크고 있는 거예요. 진짜예요."라고 했다.


  내가 작년에 K에게 위로와 격려, 그늘이 되어 주었듯이 K가 오늘은 내게 위로와 격려가 되어줌을 느꼈다. K에게 요령 없이 힘껏 쏟은 마음과 정신이 이처럼 예상치 못하게 더 크게 돌아오니 교사하는 보람이 문득 느껴졌다. 학교에서 오전 내내 짊어졌던 질문에 대해 K가 답해준 날이었다. "선생님, 걱정 마세요. 잘해왔고 잘하고 있어요. 그러니 계속 교사해도 괜찮아요."


  앞으로도 오늘처럼 수없이, 예기치 못한 순간에 '나 교사해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그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해줄 수 있는 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계속 교사로 지내도 괜찮다는 뜻 아닐까. 그렇게 믿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