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돌아오기를..
그녀가 끝내 오지 않았다.
내가 그녀를 기다린 시간은 두 시간, 아니다 준비를 해야 하니 일찍 가 있었으니 두 시간하고도 삼십분동안 그녀를 기다린 셈이다. 아무튼 그녀는 프로그램이 끝날때까지 오지 않았고, 기관의 담당자가 전화를 했는 듯하여 짬을 내어 물어 보니 그녀가 왜 안오는지 확실하게 답을 해 주지 않았다.
내가 기다리는 그녀는 중학교 1학년이다. 내가 본 그녀의 첫인상은 애기같은 얼굴로 수줍음이 많은 소녀다. 처음 기관에 올 때도 엄마의 손을 잡고 머리를 숙이고 인사도 건네지 못하면서 수줍게 들어 왔다. 그리고 엄마의 부탁은 아직 장애에 대한 인지를 하지 못하고 자신이 왜 이런데 와야 하는지 의문이 많으니 될 수 있으면 장애라는 말은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이 곳은 성인 발달장애인이 모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다. 성인 발달장애인이 모인 곳인데 여중생이 참석 한 것 부터가 아리송했을 터인데....소녀는 아마도 본인의 장애가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 함께한 이들의 모습, 행동, 언어, 분위기를 보고 듣고 느끼면서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힘이 들었을까 싶었다.
그녀는 여중 1학년이지만 키가 아주 컸다. 머리도 엄청 길었다. 외부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저 수줍음이 많은 소녀. 큰 키에 구부정하게 서 있는 자세. 아마도 수줍음이 어깨를 움츠려 들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긴 머리 또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기관 담당자와의 짧은 대화에서 살펴 보자면 수용언어는 어느 정도 되는 듯하고, 표현언어는 .....사실 나와는 대화를 많이 나눌 수가 없었고, 이야기를 하도록 유도 해 봐도 말을 하지 않았다. 사람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 보지 않았으며 대답이나 반응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아래로 까는 정도로 이해를 했다.
담장자가 전하는 말로는 그녀의 어머니는 아주 적극적이라고 한다. 부모가 자녀의 장애를 인정했다고 하는데 아직 장애 진단을 받거나, 형식을 갖추지는 않은 상태라고 했다. 그리고 자녀의 교육과 치료에 엄청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하는데 자녀가 응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OT가 있던 첫 날, 기관의 모든 담당자가 이 소녀의 소극적인 언어, 작은 행동에도 엄청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긍정적으로 대응해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다음 회기에 꼭 참석하라고 손가락까지 걸며 약속을 했다.
두 번째 프로그램 진행에 그녀는 아주 늦게, 그것도 검은 모자를 꾹 눌러쓰고 참석을 했다. 지각생이지만 환영 받는 아이였다. 이렇게 늦게라도 참석해 준 것에 대한 관계자들의 호응도 대단했다. 활동에 적극적이지도 않고 어쩔 수 없이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짧은 대화이지만 얼굴을 쳐다보고 말 하도록 한 것과 손에 힘이 없어 힘을 어떻게 주는지에 대해 설명한 것과 가끔씩 만나니까 일찍와서 오랫동안 얼굴 보자고 한 것. 그리고 예쁜 얼굴 감추지 말고 모자벗고 수업하자고 한 것. 이것이 나와의 대화 내용이다. 아니 일방적인 나의 말이었다고나 할까. 많이 힘들었을까?
담당자와 소녀가 주중에 문자를 주고 받았다고 했다. 너무 재미있고 즐거워서 다음에도 꼭 가겠노라고 했다는데... 세 번째 시간에 그녀는 오지 않았다. 수업이 끝나고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본인이 왜 그 자리에 가야 하냐고 했다고 하는데.... 성인들 사이에서 힘들었나. 또래가 없어서 기가 죽었나. 한번, 두번의 만남에서 이 친구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래서 세번째 시간에는 나와 가까이에 두고 진행하려고 계획을 했는데 많이 아쉬웠다. 참으로 아리송한 특징, 그리고 서로가 인정하기 어려운 수준 사이에서 부모도 소녀도 엄청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고작 한달에 한 번 만나는 아이, ot 때 얼굴보고 난 후 다시 한번 만난 사이. 그것도 10명이 되는 참여자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뿜뿜 나타내는 친구도 아니였다. 두 시간동안 나의 눈길, 손길, 말길이 닿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고, 신체적으로도 밀리고, 목소리 톤에서도 밀리고, 활동의 속도에서도 밀리고, 나이에서도 밀리고 .... 아무튼 나는 그녀가 내 옆에서 찰싹 달라 붙어서 두 시간동안 행복하게 즐기다 돌아가기를 바래보는 마음에서 다음 번에는 나타나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녀가 돌아왔다>를 말 할 수 있기를.
이 글을 쓰면서 왠지 뻥 뚫린 가슴에 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