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에 감성을 터치하다
깽깽이풀은 미나리아재비목 매자나무과 여러해살이풀이다. 산중턱 아래 골짜기에서 잘 자라며 강원도, 경기도 지역에 군락을 이룬 명소도 있다. 대개 꽃들은 양지바른 곳을 좋아하는데 깽깽이풀은 통풍이 잘 되는 반음지에서 잘 사는 특징이 있다. 4 ~5월 뿌리에서 잎보다 먼저 1~2개의 아주 작은 적갈색 꽃봉오리가 맺히면서 꽃줄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꽃이 연꽃잎을 축소하여 놓은 모양이며 여러 송이가 모여서 난다. 꽃봉오리마다 생장 속도가 달라서 잎이 풍성하게 나고도 늦게 피는 꽃송이가 있다.
이 아이는 이름이 여러 개다. 깽이풀, 황련, 조선황련이라고도 부른다. 최대로 몸을 키우면 높이 약 25cm까지 자란다. 꽃이 진 후 풍성한 잎줄기도 남다른 아우라를 뿜어내기 때문에 땅에 녹아드는 그날까지 눈을 뗄 수 없다. 주로 화단에 관상용으로 심는데 야생화를 잘 다루는 사람들은 아파트 화분에서도 잘 키운다고 들었다. 내가 직접 본 적은 없다.
이 깽깽이풀은 꽃이 화려하면서도 기품이 느껴진다. 그래선지 마니아가 있을 정도다. 해마다 깽깽이풀 군락지를 찾는 야생화 트레킹 여행프로그램도 있다. 다만, 아쉽지만 꽃을 오래 즐겨 볼 수가 없다. 아침 해가 비추면 꽃 잎을 활짝 열지만, 일조량이 없이 흐린 날에는 아예 꽃잎을 열지 않는다. 또, 잦은 봄바람 앞에서는 거의 쥐약(?)을 삼킨 수준이다. 꽃잎이 워낙 약해서 금방 떨어져 날아가버린다.
그래도 늘 희망은 있다. 내년에는 이 깽깽이풀이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새끼(?)를 치면서 새로운 꽃을 피워주기 때문이다. 자연을 보면 언제나 희망은 살아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잠깐 고개만 창밖으로 돌리면 된다.
내가 이 깽깽이풀을 정원에 심은 것은 13년 전이다. 한창 야생화 매력에 빠져서 화원에서 석부작 교육을 받을 때다. 요새는 이 아이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깽깽이풀은 상당한 고가였다. 일반적인 야생화가 한 포트 2~ 3천 원, 좀 ‘예쁘다’ 싶으면 5천 원에서 1만 원 정도 했다. 그런데 이 깽깽이풀은 한 포트에 거금 12만 원을 주고 구입했다.
사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많이 놀랐다. 하지만 이 가격에도 선뜻 구매를 하게 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산책을 하던 중 이웃집 정원에 활짝 핀 깽깽이풀을 보고는 첫눈에 반해 버린 것이다. 그러니 이미 내가 사랑에 빠졌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깽깽이풀을 처음 만난 후 매일 그 집을 중심으로 산책을 하다가 집주인을 만나고 나서야 겨우 이름을 물어볼 수 있었다. 그 주인은 깽깽이풀이라고 하지 않았고 그냥 ‘깽깽이’라고 알려 주었다. ‘깽깽이’ 처음 그 이름을 듣고는 좀 놀랐다. 생긴 모양새와 달리 이름이 웃기기도 하고 조금은 ‘싼 티’가 나서였다
그렇다고 해서 깽깽이풀이 달리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깽깽이풀이 가진 매력이 남달랐기에 그 이름이 촌스럽다고 해서 내 애정이 달라지지 않았다. 사실, 이름이 뭐가 중요할까? 그보다 더 멋진 삶을 살아내는 깽깽이풀인데! 지금도 깽깽이풀 사진만 보아도 마음이 설렌다. 이른 봄, 다른 야생화들이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을 때 홀로 주인을 찾아와 주는 자수정처럼 빛나는 보석 같은 존재이기에!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누구나 인생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날, 그런 시기가 있다. 그때는 남다른 존재감으로 자신을 뽐내기도 하고 남들도 인정해 준다. 그래서 사람들이 원래 가진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그때가 인생에서 최고로 빛을 발하는 시기이기 않을까? 이를테면 조직에서는 <자리>가 될 수 있고 어떤 일이든 성과를 낸 사람에게 붙여지는 <브랜드>가 될 수도 있다. 작가에게는 유명한 <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재밌는 것은 이름이 멋지면 그에 걸맞은 의무(?)가 따른다는 것이다. 이름에 맞는 이름값을 해야하는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 하는 어떤 법칙이나 원칙이 있지는 않은데도 그렇게 요구되는 현실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멋진 이름에 멋진 이름값을 하기 위해서 산다는 것! 어쩌면 진짜 내가 아닌 보이기 위한 즉 남을 위해서 사는 삶이 아닐까?
그러니 가끔 내 이름이 그리 멋있지 않은 게 꽤 괜찮아 보일 때가 있다. 남편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서 사는 게 큰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경우 구독자는 몇 안되지만 브런치 작가로 부단히 글을 쓰고 있다. 물론, 연재 일에 맞춰 펑크를 내지 않기 위해서 없는 머리를 쥐어 짜내는 나름 이름값(?)을 하는. 중이다. ㅅ 과거 신문사 칼럼니스트일 때는 왠지 모르게 멋지고 있어 보이는 글을 짓느라 꽤나 힘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보다 더 훨씬 편하게 글을 쓰고 있다. 더욱이 그때는 드러내지 못한 내 감정에 솔직하게 쓰고 있으니 지금이 더욱 행복하다.
앗싸~~!
누구나 잘 나갈 때가 있고 그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 잘 나가고 있다면, 깽깽이풀이 금방 스러지는 날이 오는 것처럼 우리의 찬란한 그날도 어느새 빛을 잃을 때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겸손해지도록 노력하자. 이에 반해 ‘내 인생에 또다시 그런 기회가 올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래도 어떤 식이든 잘 나가는 남을 부러워면서 단념하거나 포기하지는 말자. 우리 인생에서 다음 기회가 꼭 없으란 법은 없지 않은가! 봄이 되면 다시 피는 저 깽깽이풀처럼 화려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이름에 맞는 이름값 정도는 하고 떠나는 인생은 만들 수 있지 않은가.
“여보! 정말 수고했어!”
“엄마! 정말 고마워요! ”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