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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작가 Apr 05. 2024

영하의 날씨 구독 일기:4.범인은 바로 '나'

영하의 날씨 구독일기 :기록취미


범인은 바로… ‘나’


“아니, 왜 하필 내가 커피 볶을 때마다 화재경보가 울리는 거야?”

“혹시…”

<영하의 날씨 중..>


딸아이와 얇은 폼롤러의 합작품.




새벽 5시가 되기도 전에 잠에서 깼다. 혹시, 드디어 새벽기상을 시작할 수 있는 몸이 된 걸까. 그러면 좋을 텐데. 현실은 두통약 2알을 물과 함께 꿀꺽 넘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일찍 일어난 걸까. 아니다. 잠이 깬 건 그냥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대라서다. 두통약은 일어나고 보니 머리가 무겁고 통증이 생겨 먹은 것이다. 보통은 램수면 상태에서 조금 뒤척이다가 다시 잠이 든다.



단지, 이번 램수면 상태에서는 보통의 패턴이 깨졌을 뿐이다. 잠결에 왼쪽 어깨 근육이 불편해서 얇은 폼롤러를 찾아 손을 더듬거렸다. 더듬거리지 말았어야 했다. 불편한 근육에 마음 쓰지 말고 그냥 깊은 수면의 세계로 빠져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며칠 동안 감쪽같이 사라졌던 폼롤러였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폼롤러의 맛을 느끼지 못했기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뭉친 근육과 근막을 지그시 눌러야 다시 잠이 들 것 같았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고 폼롤러를 찾았지만 이상하게 주변에 없었다. 없으니깐. 뇌가 어? 왜 없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은 이럴 때 하는 게 아니란다. 지금은 그냥 스위치를 끄고 다시 꿈속으로 들어가야 한단다. 하지만  눈치 없는 뇌는 쓸데없이 생각에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꿀잠으로 빠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야 말았다. 누구를 탓해야 하는 건가. 눈치 꽝인 뇌인가. 더듬거리던 손인가. 몇 년째 통증을 달고 사는 어깨 근육인가. 아니면 램수면인가. 그것도 아니면 얇은 폼롤러?



5일 동안 사라진 얇은 폼롤러. 그래, 내 팔뚝보다 얇다고 자랑하나 보다. 이불장을 뒤져도 보이지 않았다. 옷장에도 없었다. 거실에도, 화장대 위에도, 책장에도. 정말 뽕! 하고 사라졌었다. 이해불가능한 미스터리였다. 뭐, 집안 어딘가에 있겠지. 이러다가 어이없는 곳에서 나오겠지. 이런 마음으로 기다린 게 5일이었다. 슬슬 짜증과 답답함이 올라왔다. 그러다 어젯밤 잠을 자기 전에 다시 한번 쓰윽 방안을 살펴보았다. 허탕이었다. 에잇! 몰라. 포기를 하고 이불을 깔고 누웠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공해가 거슬렸다. 고개를 들어 암막 커튼을 치기 위해 창문 쪽으로 손을 뻗은 순간. 얇고 기다랐고 검은 물체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동안 책장과 책상 사이의 빈 공간에 커튼의 도움을 받으며 숨어 있었던 것이다. 허, 허, 허. 어이없음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귀인(歸因). 순간 얇디얇은 폼롤러가 사라지기 전날 아침. 청소기를 돌리면서 잠깐 저 빈 공간에 살포시 세워두었던 내가 생각이 났다. 손수 암막커튼으로 폼롤러의 바디를 살짝 가려 놓았었다. 바람에 떨어질까 봐. 범인은 바로… ‘나’이다. 새벽 4시 45분. 이 낯선 시간에 나를 깨운 건. 결국 나였다. 미안하다. 뇌야, 손아, 통증아, 램수면아, 특히 폼롤러야. 진짜 너희들을 의심해서 탓하려던 건 아니었다. 나도 답답하니깐. 아무튼, 미안하다.



<영하의 날씨>에서 김영하 작가는
로스팅을 중단했고
 더 이상 화재경보는
울리지 않았다고 했다.
평화를 찾은 것이다.

하지만,

나의 평화는 얇디얇아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이 깜박거리는 뇌는 지금도
무언가를 까먹고 있을 테니깐.







그림 : 흔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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