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쯤일 거다. 아니면 고등학교 때일까. 사진첩에서 엄마의 젊음과 마주 한 적이 있다. 사진 속 젊은 20대 시절의 엄마는 친구들과 한 껏 멋을 낸 모습이었다. 추억의 옆으로 사진 찍는 자세를 하고 있었다. 기억이 맞다면 말이다. 친구들과 등산을 하려 간 듯한데. 전혀 등산과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기억 속의 모습은 선글라스를 끼고, 청바지를 입고 포즈를 잡은 모습이다. 역시 등산이 목적이 아니 듯하다. 지금 당장 기억이 맞는지 사진을 보고 싶지만 갖고 있지 않아 아쉽다. 사진이 있다면 꼭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신발. 운동화일까. 구두일까. 여기서 목적이 드러날 텐데.
어쩌면 엄마의 비밀을 맛볼 수도 있다. 뭐, 아닐 수도 있지만. 사진이 내 손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 혼자 재미있는 스토리를 상상할 수 있다. 그것 만으로도 행복하다. 사실 밋밋한 이야기 말고 조금 찐한 이야기가 있었으면 한다. 멋을 좀 아는 나의 엄마와 친구들의 영화 같은 스토리를 기대하게 된다. 처음 그 사진을 봤을 때 엄마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긴 했었다.
“이거 엄마 맞아? 여긴 어디야? 친구들과 뭐 하고 놀았어?”
엄마의 대답은 간단했다.
“어, 엄마 맞아. 어디 어디 산이야.(설악산인 듯하다.) 친구들과 놀러 갔었지.”
“엄마, 멋쟁이었네…..”
사진 속 모습이 너무 이뻐서 엄마는 젊었을 때 뭐 했는지도 물어보았다. 하지만 시원하게 대답을 하시진 않았다. 집에서 농사일을 도왔다고 했다. 농사일을 도운 건 맞다. 근데 그것 말고도 더 있을 듯한데…. 농사만 도와주던 그런 포스가 아니었다. 순딩순딩 농촌 아가씨가 처음 삐까뻔쩍한 옷을 입고 첫나들이를 하는 모습이라고 믿을 수가 없었다. 진짜 그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어쩌면 그때 나는 엄마, 아내라는 이름 말고 다른 이름으로 살았던 엄마가 신기했나 보다.
요즘 엄마에게 자주 전화를 한다. 엄마는 당뇨로 발가락과 심장에 무리가 생긴 아빠를 챙기시고 계신다. 아빠의 안부 끝에 엄마는 어떤지 물어보면 대답은 한결같으시다.
“나는 괜찮다. 걱정하지 말아라.”
이 말에 안심이 되면서도 그 속에 숨은 비밀이 있는 듯싶어 전화를 끊고 나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곧 엄마의 생신이다. 봄이 왔으니 엄마와 봄바람도 맞고 꽃구경도 하러 가야겠다. 참, 엄마의 비밀도 밝힐 수 있으면 더 좋겠지. 일단 비밀을 마주하기 전까지 혼자 상상의 소설을 써봐야겠다. 남주인공으로 누가 좋을까? 아빠는 제외다. 결혼 전이니깐. 임영웅도 제외다. 엄마가 좋아하지만 이건 나만의 상상 소설이니깐. 그럼… 누구? 눈물의 여왕에 나오는 김수현. 상상이니깐.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