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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작가 May 17. 2024

영하의 날씨 구독일기:10_교양

영하의 날씨 구독일기 :기록취미



교양인들의 사회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없다. 없는 것 같다.
아예 존재한 적도 없었을지 모른다.
 -영하의 날씨 중..

   




‘무식’과 ‘교양’ 사이. 그 어딘가에 내 자리가 있다. 사실 그렇게 교양 없는 삶을 살지는 않았다. 그런데 또 막 교양이 있는 삶도 아니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상류층 사람들은 교양 있어 보이게 생활을 한다. 격식 있는 옷을 입고 여유로운 몸짓과 관용을 베푸는 부드러운 미소를 보여준다. 와인을 마시며 클래식 음악과, 미술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음, 또 뭐가 있더라. 아무튼 전부 나와는 거리가 있다. 아주 먼 거리다. 그런데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정말 가까이 갈 수 없는 거리인가.



언젠가 교양 있어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렇게 행동한 적이 있다. 여기서 시절이라는 단어를 쓰지를 못하는 것은 지금도 가끔 교양 있어 보이는 행동을 하려는 나를 만나기 때문이다. 도대체 교양이 뭐길래. 이렇게 자꾸, 틈만 나면 다가가려는 걸까. 유리잔 같은 지식이 부끄러워서? 우아한 대화에 끼고 싶어서? 아니면, 나 이 정도는 아는 사람이야. 고개를 들고 싶어서일까. 그런데 왜 이런 마음으로 교양 근처를 어슬렁거렸던 지난날이 부끄러운 걸까. 참, 이상하다. 아무래도 진짜 교양으로 가는 길에서 벗어난 것 같다. 진짜 교양이 뭔지는 모르지만.


김겨울 작가의 [아무튼, 피아노]


하지만 다행히 완전히 벗어난 것 같지는 않다. 요즘 김겨울 작가의 ‘아무튼, 피아노’를 읽고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실 ‘피아노’라는 제목이 있어 더 읽고 싶어졌다. 나에게 피아노란 손가락으로 설탕을 콕 찍어 맛본 뒤, 그 맛을 잊지 못해 엄마의 눈치를 살살 살피면서 설탕통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는 아이와 같다. 물론 엄마는 아무런 눈치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 함정이긴 하다. 또, 엄마가 없는 틈을 이용해 설탕통을 후다닥 열어 한 꼬집 집어 들고 입에 탈탈탈 털어 넣으려는 욕망에 사로 잡힌 아이이기도 하다. 미션에 성공해 설탕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으면 동생에게 가서 씨-익 웃어주는 아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설탕 먹었다. 부럽지. 나는 너하고는 달라. 어때. 나 좀 대단하지. 설탕도 못 먹어본 너와 나는 달라. 휴우… 진짜 부끄럽다.



피아노를 미친 듯이 좋아해서 사랑해서 그리워서 열망해서 치거나 들은 것이 아니었다. 물론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바빴던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이건 사실이다. 그래서 아이에게도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하지만 이것 말고 다른 이유가 숨어 있다. 내가 피아노 음악을 들었던 것은 아이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했던 것은 교양인들의 사회에 속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이다. 아니면 교양인은 되지 못해도 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가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마음으로 피아노를 듣고 쳤으며, 책을 읽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매번 피아노 주의를 빙글빙글 돌기만 한 것이구나. 온전한 달콤함을 맛보지 못 한채 말이다. 이제 보니 조금 안타깝다. 무언가를 온전히 즐기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 아무것도 아닌 게 된 것이다. 빙글빙글은 아무것도 아니니깐.



그런 내게 이번 김겨울 작가의 ‘아무튼, 피아노’는 조금 다르다. 아니 시작은 같거나 비슷했겠지만 중간부터 달라지고 있다. 평면적인 피아노라는 대상이 입체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피아노는 치는 것, 듣는 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피아노는 어때 나. 좀 괜찮지. 이런 부끄러운 교양 있는 척하는 것에서 끝날 그런 세계가 아니다. 그 이상의 것까지 갈 수 있음을 아니, 가야 함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는 내게 있어 피아노는 궁금한 세상이 되었다. 피아노라는 악기가, 피아니스트가, 조율사가, 피아노를 만드는 사람이, 공연을 준비하는 보러 오는 사람이. 모든 것이 궁금하다. 그들은 왜 피아노에 다가가려고 할까. 거기서 무얼 본 것일까. 나도 알고 싶다. 보고 싶다. 느끼고, 즐기고, 감동하고 싶다. 그 사이사이에 그들과 얘기가 하고 싶어졌다. ‘나 어때. 부럽지.’가 깔린 것이 아닌 피아노에 대한 얘기가 말이다.



아무래도 교양은 대상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사랑하고 열망해야 나오는 것 같다. 겉으로 우아하고 관용 있게 보이는 것은 교양이 있어 보이는 것일 뿐이다. 교양이 있다와 교양이 있어 보인다는 결이 다른 것이다. 와인을 마시며 음악, 미술, 문학을 얘기하지 않아도 교양은 있을 수 있다. 커피나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피아노에 대해 2~3시간씩 깊고 넓게 얘기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교양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교양 있어 보이는 틀은 버리고, 내가 만든 교양 있는 사람이 돼서 교양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좋은 관계를 쌓고 싶다. 꼭.



나이들어도 교양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진출처;픽사베이, 언플레쉬, 내 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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