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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작가 May 24. 2024

영하의 날씨 구독일기:11_너의 이름을 적는 순간

영하의 날씨 구독일기:기록취미




너의 이름을 적는 순간


                



너의 이름을 적는 순간 흘러 들어오는 웃음소리에 눈을 감아 본다

낮고 얇은 바람 소리에 담겨 나를 스쳐 지나간다

사라져 가는 익숙한 목소리.


떨리는 마찰음, 그 끝자락을 찾아 발끝을 옮겨 본다

짙은 어둠이 내린 길 위에 나의 눈은 의미가 없다

분명 너의 웃음이 지난 간 자리인데…

나의 발은 웃지 않아 걷지를 못하나 보다


너의 이름을 적고 있는 나의 손이 부디 멈추지 말길

스쳐 지나간 바람이 부디 되돌아오길

아무래도 이젠 너의 이름을 불러야 하나보다

가슴에 걸려 올라오지 못하는 소리이지만 해야 한다


너의 이름이 불리어진다

너의 이름이 새기어진다

흘러 들어오는 웃음소리가 길 위에 내린다

은은한 달빛이 허락한 옅은 발자국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눈에 입 맞추고, 속삭이는 목소리로 고인 눈물을 위로한다


너의 이름은 끝을 피할 수 없었겠지만 아직 모든 끝은 아니다

나는 너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적을 수 있다. 부를 수 있다.


너의 이름을 적는 순간

너의 위안을 만나는 순간이다

그래서,

너의 이름을 적는다.


 





[영하의 날씨]11회-잡귀

… 그날이 돌아올 때마다 우리도 먼저 떠나간 이들의 이름을 어딘가에 적고, 붙이고, 부른다.  
…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생물학적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닐 수 있다는 것…

-김영하 작가의 ‘영하의 날씨’ 중에서




  



사진출처:픽사베이 & 언플레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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