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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작가 Jun 08. 2024

영하의 날씨 구독일기:13회_날 기만하는 너, 모기.

영하의 날씨 구독일기: 기록취미


… 우리는 무엇으로 자기 자신과 타인을 판단해야 할까? 모두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행동이다. 그것이 유일한 근거이다. 다른 것은 없다.

- 김영하 작가의 [영하의 날씨 _13회 ‘기만’ 중에서


이틀 연속 모기 녀석들로 인해 잠을 못 자고 있다. 아무리 에프킬라를 뿌려도 약기운이 떨어질 때가 되면 기어 나온다. 나와 딸아이의 피를 지키기 위해 늦은 새벽이지만 눈을 부릅뜨고 모기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오늘이 3일째 되는 밤이다.


모기와의 전쟁 첫째 날. 밤이 되자 신나게 기어 나오는 모기들. 이 집에서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 와, 모기 진짜 많다. 긴박하게 에프킬라를 찾고 강렬하게 뿌렸다. 다행히 에프킬라로 모기들이 힘이 빠졌는지 천장에서 벽에서 떨어지고 있었다. 모기 한 놈, 두 놈. 세 놈…… 이러다가 열까지 숫자를 세겠다. 아니 열 놈은 되는 듯했다. 후드득 에프킬라의 힘에 방바닥으로 떨어지는 모기 녀석들을 보니 속이다 시원했다. 마음 편히 아이에게 잠을 자라고 했다. 머리를 대자마자 잠든 아이 옆에 누워있었다. 떨어져 죽은 모기의 숫자만큼 나의 안심레벨은 올라가 있었다. 그런데 한 20분쯤 지났을까. 검은색의 날아가는 물체를 봐버렸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모기였다. 어이없음이다.


이때부터다 나의 기만이 시작된 것이. 명분은 모기를 잡아야 한다. 하지만 그 안에 숨은 것은 잠을 자기 싫다. 물론 다음날이 휴일이라 그랬던 거다. 마음에 여유가 있었다. 늦게 일어나도 괜찮으니깐. 아무튼 모기를 퇴치했다고 믿었었는데 실망이 너무 컸다. 내 뒤통수를 내리친 모기를. 나를 기만한 모기를. 살려둘 수는 없는 것이다. 음, 또 뭐. 겸사겸사 중드도 보고…. 말을 해라. 모기 잡는 것이 목적이냐. 아니면 중드냐. 모기가 나를 기만하는 것이냐. 내가 나를 기만하는 것이냐. 음. 둘 다구나.  


하지만 모기의 기만이 딱 1만큼 더 앞에 있다. 다시 한번 더 강조한다.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은 것은, 아니지 못 잔 것은 바로 모기 때문이다. 절대로 모기와의 전쟁에서 패배를 할 수 없다. 피를 줄 수가 없다. 가려움이라는 벌을 받을 수도 없다. 절. 대.로. 끝장을 볼 때까지 전쟁은 계속된다. 2차전을 치르기 전 잠을 자는 아이의 얼굴에 에프킬라가 내려앉으면 안 되기에 이불을 얼굴까지 덮었다. 숨 쉬는 것이 불편하지 않게 얼굴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했다. 훗! 모기. 너희들은 이제 끝이다. 구석구석 다시 치-이-익. 고개를 들어 천장을 두리번두리번. 그러면 그렇지. 검은 물체가 보여 바로 치-이-익. 죽였다. 새벽이 밝아 올 때까지. 계속된 행동. 그러다 문득 결혼하기 전 나의 행동이 떠올랐다. 그때도 집요하게 잡았었는데. 행동은 바뀌지 않나 보다.  


전쟁도 체력이 있어야 하나보다. 이제는 버티기 힘들어 자리에 누웠다. 아이도 잘 잔다. 조명이 아이의 얼굴을 비추고 있다. 이쁘다. 어라, 딸아이의 오른팔에 저건 뭐지. 뭐야, 모기에게 물렸잖아. 어이구. 열받아 에프킬라를 다시 치-익. 뿌렸다. 중드도 제대로 못 봐, 계속 천장만 보니 목도 아파. 창문을 못 여니 더워. 잠을 못 자 머리가 멍해. 모기를 다 잡았다고 너무 쉽게 생각했다. 모기가 나를 기만한 것이 아니다. 모기를 잡았다고 믿은 마음이. 잠을 자지 않고 전쟁을 치른 내 행동이 나를 기만한 것이다. 마지막에 부린 여유가 모기에게 승리를 나에게 패배를 준 것이다.


아무래도 이번 모기와의 전쟁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날 기만하는 너, 모기. 잡아도 자꾸자꾸 나오는 너, 모기. 싫다. 마지막에 여유를 부리다 뒤통수 맞은 나의 행동이 싫다. 모기장을 검색하다 결국 사지 않은 나의 게으른 행동이 싫다. 오늘밤 또, 전쟁을 치러야 한다. 내일은 주말이니 방어도 하고 중드도 보고…. 아, 여전히 정신 못 차렸나 보다. 모기 잡는 것이 목적이냐. 잠자기 싫은 것이 목적이냐. 부끄럽다. 그래도 모기는 잡아야 하니깐. 당분간만 눈 감아줘야겠다. 뭐, 이러다 졸리면 자겠지. 정신 차리겠지. 이번주까지만 봐줘야겠다.



아무래도 모기장을 사야겠다.
그래야,
기만을 하지 않을 듯하다.

음…
이것도 물욕을 감춘
기만인가?

에잇!
그만 쓰고,
모기 잡으러 가야겠다.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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