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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작가 Jun 22. 2024

영하의 날 구독일기_15회_딱 한 송이만 그리면 자유다

영하의 날씨 구독일기

스스로 고통을 선택하고 그 고통을 끝낼 자유가 있다면 인간은 그 고통을 기꺼이 견딘다. 하지만 자유가 없다면 고통은 고통일 뿐이다.
  -[영하의 날씨_15회_‘고통’을 읽고…



핑크핑크한 하늘과 구름을 그리고 싶었다. 뭉게뭉게 구름과 묘한 분홍색의 하늘을 오일파스텔로 그리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우-와. 정말 예쁜 폭죽이 팡팡 터지겠는데. 이건 무조건 그려야 해. 굳어가는 감정이 말랑말랑해지겠군. 어쩌지 심지어 집에서 그리는 것이 아니야. 커피와 브런치가 있는 카페야. 세상에나 느낌 좋다. 그래, 이런 게 행복이지. 그럼 그럼. ... 딱 여기까지가 즐거운 시간이었다.


룰루랄라 ~~ ^^!!


카페 테이블 위에 24색 오일파스텔을 올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뭐지, 24색이 아니다. 23색이다. 제일 중요한 흰색 오일파스텔이 없다. 그제야 다른 오일파스텔 케이스에 넣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살짝 망한 느낌이다. 집으로 다시 갈 수는 없었다. 괜찮아, 핑크핑크 하늘을 그릴 거니깐. 흰색이 없어도 될 거야. 흔들리다 못해 사정없이 돌아가는 눈과 마음을 진정시키고 종이를 폈다. 괜찮아. 평소에 쓰던 종이가 아니지만 괜찮아. 종이 표면이 조금 울퉁불퉁하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할 수 있어. 할 수 있긴.... 찌-익. 다시, 찌—이-익.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휴우. 누가 보기 전에 찢긴 종이를 빠르게 가방에 구겨 넣었다.



이때부터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 어떻게든 핑크핑크 하늘 구름을 그려보고 싶었다. 2번을 시도해 보았다. 핑크와 퍼플이 만나 묘한 하늘 배경이 나와야 하는데. 이건 완전히 지저분한 하늘색이 되었다. 고통은 1+1인가 보다. 울퉁불퉁한 종이표면 때문에 실크로드의 부드러움도 나오지 않았다. 누가 보기 전에 반으로 접은 후에 쫘악 찍어버렸다. 그러다 결국 핑크핑크 하늘과 구름을 포기하게 되었다. 이제 뭘 그려야 하지? 아무래도 고통은 1+1이 아니라. 1+2인가 보다.


그리고 싶었던 핑크핑크 하늘구름~~; 사진출처:픽사베이


배경을 깔기 힘든 종이라면 할 수 있는 건 하나다. 드로잉. 카페니 깐 디저트를 그릴까. 아니다, 디저트를 그리지 않은지 너무 오래되었다. 패스. 그러면 꽃을 그릴까. 얼마 전에 튤립을 그렸으니깐. 좀 쉬울 것이다. 튤립 꽃다발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쩌지. 아… 괴롭다. 힐링하러 왔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어떻게든 이 고통스러운 감정을 끝내고 싶었다. 이때 떠오른 것이 양귀비꽃이다. 함께 온 언니가 보여준 양귀비꽃이 생각이 났었다.



그려본 적 없는 빨간 양귀비꽃을 그리기로 했다. 사실 이쯤 되니깐. 거의 반 포기 상태였다. 그냥 그리는 행위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이쁘게? 잘? 이 단어들은 내려놓았다. 제발 이 고통스러운 기운 빠지는 감정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힐링은 못했어도 ‘노력’이라는 단어는 가져가고 싶었다. 딱 양귀비꽃 한 송이만 그리고 끝낸다. 퀄리티? 이런 거 생각하지도 말자. 그림재료를 들고 카페까지 온 시간을 허무하게 끝낼 수 없었다. 오늘의 그림 완성. 이 문장에만 의미를 두기로 하고 '딱 한 송이만 그리자.'를 목표로 했다. 그러면 나는 자유를 얻을 것이다.


딱 한 송이만...; 사진출처:픽사베이


집에 갈 시간이다. 양귀비꽃을 다 그리지 못했다. 딱 한 송이. 이게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다니. 그림의 어려움을 다시 느꼈다. 명암을 조금만 더 넣으면 될 것 같았다. 그러면 오늘의 작은 목표는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자유인 것이다. 결국 집에 와서도 23색 오일파스텔과 울퉁불퉁한 종이를 꺼냈다. 그리고 결국 완성. 자유를 얻었다. 고통에서 벗어났다. 고통이 뿌듯함과 기쁨이 되었다.



딱 한 송이만. 꽤 괜찮은 방법이다. 이 정도는 참고할 수 있다. 내가 정한 고통의 범위라서, 그 고통을 끝낼 자유가 내게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다행이다.



고통 끝에 얻은 자유~~~^^


p.s 급 반성도 하게 되었다. 아이의 선택과 자유를 빼앗으려고 한 어제의 나. 흑. 반성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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