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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적작가 Jun 30. 2024

영하의 날씨 구독일기:16회_ 사진취미?그냥 하면 돼.

영하의 날씨 구독일기 : 기록취미


사공 없는 나룻배가 기슭에 닿듯 살다보면 도달하게 되는 어딘가. 그게 미래다.
 - [영하의 날씨_16회_ 결정]중에서






사진학과에 가고 싶었다.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것을 카메라 뷰파인더에 담는 시간이 좋았다. 나에게 사진은 자유, 해방의 의미였다. 아, 나도 뭔가를 담을 수 있구나. 표현할 수 있구나.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긴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대학이라는 입시 앞에 놓인 나는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서 가지를 못했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처음이었다. 너무 떨려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같이 있어달라고 까지 했었는데. 그 뒤 그다지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20대 초반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사진 학원을 다녔다. 사진 기능사 시험을 한 번 보기도 했다. 광속으로 탈락을 해버렸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친구와 함께 사진 동호회에 가입을 하고 출사도 다녔다. 좋아하는 취미를 함께하며 꽤 재미있게 보냈었다. 결혼을 하고도 사진기를 들고 나 홀로 동네출사를 다니거나 남편과 함께 다니기도 했었다. 그랬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사진이라는 취미가 사라져 버렸다. 고모부께 처음으로 받은 니콘 카메라는 언제 없어졌는지 기억이 없다. 분명 친정집에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언젠가 찾아봤는데 도통 보이지 않았다. 또, 이래저래 바꾸어가면서 썼던 다른 카메라도 자연스럽게 사라져 갔다.


니콘.. 어디로 갔니?  ;; (사진출처:픽사베이)



얼마 전 ‘나 혼자 산다’ 프로그램에서 사진이 취미인 연예인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순간 사진출사 가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을 했다. 남편, 나, 아이가 같이 사진기를 들고 출사를 가면 정말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마음과는 다르게 넘어야 하는 벽이 행동을 막고 있다. 함께하는 출사는 잠시 내려놓고 혼자라도 사진을 찍는 행위를 해보고 싶었다. 내 손에는 똑딱이 컴팩트 카레라도, SLR 수동 카메라도, DSLR 디지털카메라도 없다. 스마트폰 딱 하나만 있다. 이거라도 있으니 나 혼자 동네 사진탐방을 해봐야겠다 싶어 무조건 나갔다. 산책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왜? 나 사진 찍으러 나왔어. 이 말이 목에서 뱉어지지가 않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관심도 없는데. 괜히 혼자만 부끄럽고 그래서다. 하, 인정해야겠다. 자신감이 없어서다. 인정하고 나니. 좀 괜찮네. 어차피 ‘1’ 이니깐. ‘1’부터 하면 되지 않을까.(‘0’이 아닌 이유는 스마트폰이 있으니깐.)



이건 사진 출사가 아니다. 산책 기록이다. 4월의 반이 지난 어느 날 가벼운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한 손에 들고 집에서 나왔다. 조금은 가볍게. 날도 좋다. 산책을 하며 사진을 찍고, 영상촬영도 했다. 뭘까. 이거 기분이 좋다. 찍은 사진과 영상의 퀄리티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냥 좋다. 맞아, 이 기분이지. 가슴이 설레는 자꾸 입꼬리가 올라가는 나를 보았다. 햇빛 때문일까. 아니면 오랜만에 한 산책 때문일까.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인가. 중학교 때 처음으로 친구와 사진기를 들고 집 앞 공설 운동장에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도 이렇게 바람이 불었었다. 구도는 1도 모르면서 찰칵찰칵 친구의 모습을 찍어주었었는데. 햇빛, 바람 사진을 찍는 행동이 옛 기억을 끄집어내었다.



노을사진은 2005.9.6에 찍었네요. 나머지는 최근 3개월 안에 찍었구요.~ 후보정도 없이 올리는 자신감은 뭘까?ㅋ



완전히 나에게서 떠나버린 사진이라는 취미였는데. 이렇게 갑자기 닿아버렸다. 20대에 생각했던 사진을 찍는 내 모습과는 거리가 있지만 괜찮다. 튼튼하고 단단한 나무로 만든 그런 꿈의 부둣가에 제시간에 정확하게 닿은 건 아니다. 하지만 어딘지도 모를 기슭에 살짝 닿게 된 지금이 반갑다. 작고 얇은 배안에 앉아 있지만 기슭에 닿았다. 나 이제부터 다시 사진을 찍을 거야. 사진 출사도 다닐 거야. 흑백사진 인화도 해볼 거야. 사진 전시도 할 거야. … 할 거야. 뭐, 이런 거창한 목적을 갖고 기슭에 닿은 것은 아니다. 그냥 닿았다. 빙빙 돌다가 말이다. 닿았으니, 찰칵 찍어 본다. 지금 나에게 이거면 된다. 4월부터 6월이 끝나고 있는 지금까지 가끔 산책을 하며 사진을 찍고, 영상촬영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기슭에 닿은 작고 얇은 배에서 내린 것 같다. 걷다가 멈춰서 찍고, 또 찍는다. 그리고 지금은 필름 카메라나 폴라로이드를 사려한다. 조금 더 끌리는 건 필름 카메라이다. 암실에서 흑백사진을 현상하고 인화했던 그 추억이 고프다. 하지만 폴라로이드의 감성도 느껴보고 싶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폴라로이드. 아-. 알고 싶다. 찰칵, 윙-. 흔들흔들, 짜잔. 뭐가 되었든지 곧 내 손에 올 것이다.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는 건 생각보다 쉽다. 그냥 그것을 하면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할까 말까를 고민하다 보면 시간만 흘러간다. 그러다 대부분 못한다. 그러니 꼭 카메라를 하나 사야겠다. 필름 카메라든 폴라로이드 카메라든지 말이다. 있으면 찍겠지.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찍겠지. 사진취미? 그냥 하면 된다.




폴라로이드 갖고싶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남편 고마워^♡^~


ps.  오늘 저에게 생애 첫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생겼어요.^^♡ 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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