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날씨 구독일기:기록 취미
… 그럴듯한 이유 없이도
인간은 얼마든지 변하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김영하 작가의 영하의 날씨_18회 변화 중
"엄마, 베이스 소리 너무 좋지 않아?"
"베이스? 무슨 베이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잠들기 전이라 그런가 중등언니가 하는 말이 한 번에 해석되지 않는다.
"아니, 엄마. 그 베이스 있잖아. 기타 말고 베이스…"
"…아! 그 베이스? 그렇지 베이스 소리 좋지. 근데 네가 어떻게 베이스를 알아?"
질문이 바보 같았지만 베이스를 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워서 물어보았다.
늦은 밤. 잠을 자기 위해 취침등으로 바꾸고 음악을 틀었다. 가을이 왔으니 가을밤에 어울리는 조용한 음악을 틀었다.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면서 중등 언니에게 “이 음악 너무 좋지 않아?”라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심플하지만 기분 좋게 “어. 좋네.”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베이스 소리가 좋지 않냐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베이스의 저음이 너무 멋있다고 말하는 아이의 눈이 반짝거렸다. 세상에나. 아이가 중등언니로 1년 가까이 살더니 변했다. 변했어. 베이스 맛을 알아버렸다.
"오, 저음이 좋아? 그렇지. 베이스 저음 소리 진짜 좋지. "
"어. 나는 기타보다 저음소리가 멋있어서 베이스가 좋아."
아이와 야밤에 베이스 기타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대화를 하다니. 뭔가 갑자기 다른 세계로 넘어간 듯하다. 아이와 함께하던 세상이 변해버렸다. 근데 그 변화가 나쁘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너어무 멋지다. 좋아하는 악기가 생겼다는 것 자체로 멋져 보였다. 그 악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어서 멋져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편하게 말할 수 있어서 멋져 보였다. 엄마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영어덜트 시기에는 누구나 변한다. 그 변화들이 모이고 쌓여서 한 사람의 가치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변하는 이유는 없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그 변화는 엄마의 예상 범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절대로. 단지 엄마들은 항상 엄마들이 예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변하길 원한다. 왤까? 아마도 예상 범위를 벗어나면 큰일이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엄마들이 정해놓은 예상범위는 항상 범위가 좁다. 그래서 아이들은 할 수 없는 것이 많아 답답해하고, 엄마들은 자꾸 벗어나서 미치겠는 것이다. 잘못될까 봐. 불안해하는 것이다. 그래서 범위에 여유를 주기 힘들어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변화는 그 범위가 좁을 수도 넓을 수도 있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때로는 좁게 때로는 넓게 다른 세계로 가는 변화를 겪으면서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하지만 영어덜트 시기 때 넓은 변화를 겪어보지 않은 아이들은 그만큼 생각의 폭이 좁아질 것이고, 자신을 찾는 경험이 부족해져서 가치관을 형성하는 힘이 부족해질 수 있다. 그러니 공부 말고 다른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을 나쁘게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이런 변화를 반기는 것이 더 좋은 일이 될 수 있다. 물론 도덕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변화는 제외하고 말이다.
그래서 지금 중등 언니의 엄마인 나는 열심히 아이를 꼬셔본다. 베이스에 관심이 생겼으면 배워 봐. 혹은 베이스 솔로 음악을 찾아 들려준다. 이 베이스 기타 음 악은 어때? 뭐, 베이스 악기를 안 배울 수도 있고, 베이스 솔로 음악을 몇 번 듣다가 다른 것으로 갈아탈 수도 있지만. 적어도 네가 관심 두는 모든 것에 대해 엄마는 응원해. 뭐 이런 메시지는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원래 그럴듯한 이유 없이도 얼마든지 변한다고 했다. 아이가 맛만 보고 금세 다른 것에 관심을 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닌 거다. 저 중등 언니가 어제 다르고 오늘 달라도 정상인 것이다. 오히려 엄마인 나도 변하는 운명이니 마음 편이 변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오, 베이스 기타? 그럼 한 번 베이스 솔로 음악을 들어 볼까?”
“오, 그럼 나도 악기하나 배워볼까? “
“악기는 잘 못하니. 다른 거라도 시작해 볼까?”
어차피 인간은 변한다고 하니깐. 이왕 변하는 거 조금 멋지게 변해보면 좋겠다. 아이의 입에서 “엄마, 좀 멋지게 변했는데.”소리를 들을 만큼 말이다.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