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나를 대신해서 나를 보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나의 어떤 면을 문자 그대로 보고, 생각하고, 이해한다. 그리고 관계를 지속한다. <영하의 날씨_19회 중>
오일파스텔_가을하늘
"한국화 느낌인데요~!"
"와~멋집니다. 진짜 구름이 뭔가 한국화의 산 그림 같기도 합니다."
타인의 시선이 나에게 들어온 순간. 느낌대로 그렸던 보라색 구름 그림이 진짜 한국화 느낌이 나는 구름이 되어버렸다. 그 순간 ‘오일파스텔로 한국화 느낌이 나는 구름을 그려볼까?’ 뭐 이런 마음이 생겼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 번 들어온 마음은 점점 커져 버려 결국…
‘음, 그러면 연작으로 한국화 느낌의 구름을 그려볼까?’
‘연작이나 깐. 계절로 4 작품. 감정 단어로 또 4~5 작품을 그려도 좋겠다.‘
‘또… 아! 구름 종류에 따라서도 그려볼까?’
'오일파스텔로 한국화 느낌을 살려서 그릴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뭐, 여기까지 생각이 쭉쭉 뻗어나갔다. 그렇게 뻗어나간 가지는 잊고 있었던 것을 알아차리게 했다. 아, 맞다. 한국화와 동양화의 느낌을 내가 좋아했었지. 시간이 지나 관심사는 바뀌었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나 보다. 다른 것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예전에 느꼈던 감정이 묻어 나온다. 단지 눈치가 없어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일이 많을 뿐이다. 오히려 이번 오일파스텔 구름 그림처럼 타인의 시선으로 깨닫는 일이 좀 더 많다.
타인의 시선은 잊고 있었던 혹은 몰랐던 나에 대해 알려준다. 이렇게 바라보니 타인의 시선은 꼭 필요한 시선이구나 싶다. 물론 나를 공격하는 타인의 시선은 적절히 잘라내거나 무시해야겠지만. 나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주거나. 잊고 있었던 나를 찾게 해주는 시선은 버리지 말고 잘 담아야 한다. 그게 남는 장사인 것이다. 어쩌면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새로운 일을 해볼 용기가 생길 수 있다. 용기를 갖고 시작한 일이 잘 풀려서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을 수도 있다. 물론 좋은 쪽으로 말이다. 역시 타인의 시선은 잘 골라서 버릴 것은 버리고 담을 것은 잘 담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화 느낌이 나는 구름‘이라는 타인의 시선을 이번에는 꼭 잘 담아서 내 것으로 만들어봐야겠다. 아직 구상 중이긴 하지만. 구상을 시작하긴 했으니깐. 내 것으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적어도 버리지는 않았으니깐요. 이렇게 글도 쓰고 있고요. 어찌 되었든 타인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은 언제나 존재하니. 좋은 시선만 쏙쏙 뽑아서 내 걸로 만들면 타인의 시선은 그때부터 무서운 도깨비 눈이 아니라. 나를 구해줄 따뜻한 선녀님의 눈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타인의 시선을 무조건 버리지 말고 그 시선에서 담을 만한 것이 있나 눈을 부릅뜨고 찾아봐야겠다. 찾았으면 바로 꿀꺽하고 먹어버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