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이 오긴 오는구나. 드디어 복싱을 시작한 지 100일째가 되었다. 일단 축하부터 할게요. “혜영아, 잘 버텼다. 100일 축하해!” 이제 복싱 체육관에 가서 출석체크만 하면 된다. 출석체크를 하는 동시에 관장님께 100일 축하를 꼭 받을 생각이다. 왜? 얼마 전에 관장님이 “100일만 버텨보세요.”라며 응원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정말 이 한마디 말로 100일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며 운동을 했었다. 그러니 그냥 은근슬쩍 넘어갈 수가 없다. 그럼 그럼. 100일인데.
밤 10시가 되었다. 복싱 체육관에 왔다. 이상하게 운동하는 회원분들이 많지 않았다. 항상 이 시간에 운동하는 분들이 보이지 않으니 무언가 허전하고 어색했다. 다른 몇몇 분들과 인사정도만 하는. 그런 느슨한 관계에 있지만.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왠지 이 공간이 낯설고 쓸쓸해 보였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너무 줄넘기가 하기 싫었다. 귀찮았다. 나름 소중한 100일이라 기운이 팍팍 생겨날 것 같았는데. 사람의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뭐, 그냥 핑계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랬다. 마음이 이러니 당연히 줄넘기 줄이 계속 발에 걸리지. 여기서 끝이 아니라. 걸린 줄넘기를 정리하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이거 이거 100일에 이러면 안 되는데… 쩝.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바꾸지? 그때 관장님이 오셨다.
“회원님, 혹시 커피 괜찮으세요?”
“커피요? 네, 주시면 감사히 마실게요~!”
관장님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가지고 오셨다.
“커피를 받았는데, 이미 한잔 마셨거든요. 그리고 지금 마시면 잠을 못 잘 것 같아서…”
“아~! 저야 감사하지요. “
관장님이 주시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오늘이 100일이라는 것이 다시 생각났다.
“저, 관장님. 오늘 100일이에요. 복싱 운동 시작한 지요.”
“오~. 축하드려요!”
“아이스아메리카노가 100일 축하를 해주는 느낌이에요. 하하하.”
역시 기쁜 일은 나눠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덕분에 커피가 더 맛있게 느껴졌다. 시원한 커피를 마시면서 줄넘기를 마저 했다. 아까보다는 줄이 덜 걸린다. 기분이 좋아져서일까. 아니면 점프를 높이 뛰어서일까. 아마 기분이 좋아져 점프를 높이 뛰어서겠지. 축하와 카페인의 힘이란. 무서운 거였다. 아까는 분명 쓸쓸하고 귀찮고 그랬는데. 크크크.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아주 잘 변한다. 그래도 변화라는 것이 다 나쁜 건 아니니깐. 오늘의 변화는 기쁘게 받아들여야겠다. 나의 기분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주는 변화는 놓치면 안 된다. 이 느낌 그대로 살려서 복싱 쉐도잉, 샌드백 연습을 마무리하고 링 위 미트 연습을 시작했다. 삐-익. 1세트 시작.
음, 변화라는 것이 그렇지. 상승 곡선을 타다가도 하강을 해서 뒷걸음을 치기도 하는 것이다. 어떻게 1세트를 시작하자마자 어제 연습했던 것을 고새 잊어버리고 버벅거리는 걸까. 다행인 건 화는 나지 않았다. 그저 어이가 없었을 뿐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하루 만에 그 복잡한 4박자*6세트의 공격 방어기술을 마스터할 수는 없는 거니깐. 그저 다시 하나씩 눈으로 몸으로 익힐 수밖에 없다. 다행히 관장님은 인내심이 많은 분이시다. 하나하나 차분히 천천히 설명을 해주셨다. 물론 설명이 끝나는 순간, 바로 화려한 미트의 움직임을 보여주시긴 했지만.
여기서 말하는 화려함이란 ‘4박자*6세트+가드+가드+가드+위빙+위빙’ 뭐 이런 것을 말한다. 음.. 일부러 이러시는 걸까. 정말 거친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넘치기 직전까지 갔다. 혹시 100일 잔치를 열어주시는 건가. 0.3~0.5kg이 빠지지 않아 고통스러워하는 초보 복싱러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복싱 이즈 심플이다. 관장님이 정성껏 차려주신 100일 잔치의 주인공으로써 의무를 다해야지 뭐. 3세트까지 놀아보는 거다. 놀다 보면 다시 상승기류로 변화하는 기회가 반드시 올 거고, 그때 ‘앗싸!’하면서 그 좋은 기회를 잡으면 된다. 오늘은 100일 이니깐. 오늘의 변화가 준 기회를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했으니깐. 집중하고 원투 펀치를 날려본다. 삐-익. 3세트가 끝났다. 100일 잔치도 끝이다. 이제 주말이니깐 집에서 쉬어야겠다. 역시 잔치는 힘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