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저의 복싱을 응원하실 때는 꼭 ‘레프트훅 흔적작가’라고 불러주세요. 사람은 저마다 잘하는 것을 이름 앞에 붙인다. 이제 나는 <레프트훅 흔적작가>로 불릴 것이다. 나만의 카운터 펀치가 되어 내 앞에 있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없애줄 것이다. 가장 먼저 레프트훅이 없애야 되는 것은 바로 0.2라는 숫자다. 0.2kg. 너무너무 얄미운 이 숫자를 도려낼 수만 있다면 링 위에서 언제든지 레프트훅 펀치를 칠 수 있다. 근데 관장님은 이런 내 마음을 알고 계신 걸까? 말한 적이 없는데… 연속으로 계속 치고 있다. 관장님, 언제까지 레프트훅을 쳐야 하나요?
그래 눈 딱 감고. 한번 해보자. 관장님이 레프트훅을 연속으로 치길 원하신다면 하면 된다. 가장 잘 친다고 응원을 해주셨으니. 보답을 해야지. 투-레트훅. 어퍼컷-레프트훅. 레프트훅 ×n번.기절하지는 않았습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삐-익. 마지막 세트가 끝났거든요. 근데 왜 이렇게 힘든데 이를 악물고 끝까지 미트를 치는 걸까? 사람들이 끝까지 무언가를 하는 이유는 몇 개 안 된다. 너무 간절할 때. 어떻게 든 복수를 하고 싶을 때.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때. 보통은 이럴 때 이를 악물고 끝까지 해낸다. 그럼 나는 무엇 때문에 끝까지 버틴 걸까. 그건 바로 '0.2'. 이 0.2라는 숫자를 없애고 싶은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왠지 0.5는 힘들어도 0.2는 일주일 동안 없애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 땀을 흘리고 있다. 0.2kg이 준 달콤하고도 쌉싸름한 맛. 그 맛때문에.
링 위에세 레프트훅 ~~!!
월요일 오전 아침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거실로 나왔다. 거실 소파에는 건조기에서 나온 옷들이 너저분하게 쌓여있었다. 그래도 산을 만들 만큼은 아니었다. 다행이다. 손이 빠르게 소파 등받이에 옷들을 펼쳐놓았다. 동시에 눈은 숨어있는 운동복을 찾기 시작했다. 뒤적뒤적. 찾았다. 한 손에 운동복 긴바지가 들려있다. 아직 찾을 옷이 남아있다. 여전히 뒤적뒤적. 더 이상 소파 등받이에 옷을 펼쳐 놓지 않았다. 옷정리를 지금 하고 싶지는않았다. 아침부터 옷정리라니. 물도 마시지 않았는데... 나머지 운동복은 어디에 있나. 보이지 않는다. 두리번두리번.
구석에 파묻혀있던 마지막 운동복이 손안에 들어왔다. 고개를 들었다. 어쩐 일인지 체중계가 눈에 들어왔다. 월요일 오전이니깐. 한 주의 시작이니깐. 가볍게 몸무게를 재보자 싶었다. 발끝으로 체중계를 끌고 와서 올라갔다. 0점이었던 숫자가 쭉쭉 올라간다. 그렇군. 하-암. 아직 멍하다. 역시 월요일 오전은…. 헉! 깜짝 놀라서 후다닥 내려왔다. 내가 뭘 본거지? 두 손으로 점점 벌어지는 입을 가렸다. 커져가는 눈은 가릴 수가 없었다. 동공이 확대되고 놀란 토끼눈이 되었을 내 눈. 오 마이 갓! 웬일이야! 진짜?
세상에나 앞자리가 바뀌었다. 전체 숫자는 공개할 수 없지만 아무튼 앞자리가 바뀌었다. 너무 기뻤다. 이게 사실인가 싶었다. 심장에 충격이 심했나 보다. 나도 모르게 체중계에서 내려왔다. 거실에서 왔다 갔다 하며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침을 꼴깍 삼키고 체중계 앞으로 다시 왔다. 숫자가 바뀐 게 맞나? 맞다. 앞자리가 바꿨네. 바꿨어. 한번 더 올라가 봐야겠다. 두근두근. 조심조심. 살짝살짝. ... 음... 죄송합니다. 다시 앞자리가 바뀌었습니다. 나쁜 말 한 번만 할게요.
“젠장!! 괜히 체중계 위치를 바꿨어. 아까 처음 그 위치에 놓고 다시 올라갔어야 했는데. 흑흑흑.”
혹시나 해서 체중계 위치를 살짝 옮겨놓고 올라갔더니. 앞자리가 늘어났더라고요. 한 번만 더 할게요.
"젠장. 멍청이. 말미잘. 그걸 왜 옮긴 거냐고! 휴-우." 끝났어요. 에고고... 헛웃음이 났다.
오전에 운동가면 흑백사진을 찍어요~ 대충~~!!;
뭐.. 이렇게 된 거다.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다고 여겼다. 0.2kg만 빼면 되니깐. 그 찰나의 기쁨을 다시 맛보고 싶어서 무한반복 레프트훅을 관장님의 미트로 보내고 있다. 나의 간절함이 너에게 닿기를 바란다. 0.2kg 아. 이제 제발 사라져 다오. 나의 무기인 레프트훅이 너를 울리기 전에. 간절함이 복수로 바뀌면 넌 진짜 큰일 날 수 있단다. 그저 조용히 내 몸무게의 앞자리가 바뀔 수 있게 협조하길 바란다. 나 내일도 운동하러 올 테니. 두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