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의 내가 마주한 나
악!!
누군가 내 등에 올라탔다. 흡사 수중 레슬링과 비슷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이곳은 해변에서 300m 남짓 떨어진 거제도 바다 한가운데이다.
야무진 손아귀가 머리채 대신 내 수모를 잡고 늘어뜨리다 뒤에서 들어오는 또 다른 좀비의 공격을 받고 나가떨어졌다. 그도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팔을 돌리다 보니 잡히는 게 수모요, 걸리는 게 누군가의 어깨였겠지. 그렇게 어깨를 죽 잡아당기다 보니 초면에 무동을 타고 엉덩이 꾹꾹이를 시전 하는 아비규환의 원인 1이 되었을 것이다.
경기 초반의 몸싸움이 거셀 것이란 선배들의 조언은 익히 들었다. 하지만 역시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드넓은 바다를 쭉쭉 헤엄쳐 나아가는 것은 고사하고 발차기 한번 하기도 어려운 심각한 러시아워가 10분째 계속되고 있다. 처음엔 이 러시아워를 피해 삼각형 안내 끈으로부터 멀리 크게 크게 돌려고 했다. 대회는 해변을 기준으로 역삼각형 모양으로, 11시 방향으로 출발해 1km를 가고 첫 번째 반환점을 돌아 동쪽으로 또 1km, 그리고 두 번째 반환점을 돌아 7시 방향으로 마지막 1km를 되돌아오는 루트이다. 이 루트를 따라 안내 끈이 크게 삼각형 모양으로 쳐져 있는데 기록 욕심이 있거나 혹은 안내 끈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무서운 사람들은 어떻게든 안내 끈 가까이에 붙어서 나아간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안내 끝 가까이에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몸싸움으로 다치거나 초장부터 핀이 벗겨지는 일은 피하기 위해 나는 억센 바다 사나이들 틈바구니를 벗어나 3km짜리 삼각형을 3.6km로 크게 도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멀리 떨어져 가기로 했다. 적어도 계획상으로는 말이다.
남자부 경기가 먼저 끝나고 곧 여자부 경기가 시작되었다. 여자부는 인원이 많지 않아 전 연령대가 함께 출발했다. 인원이 많지 않다고는 하나 남자부에 비해서이지 20대부터 60대까지 몇 백명의 여자들이 스타트 부표에 나란히 앉아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어쩌다 바다 수영이란 걸 하게 되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실내 수영 대회도 아니고 바다를 헤엄칠 정도면 수영 짬밥이나 깡다구는 남다르겠지? 곧 출발을 알리는 사회자의 멘트에 여자들은 일제히 부표에서 내려와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기에는 물 밖으로 머리만 동동 내놓은 모습이 컬러풀한 메추리알처럼 귀여워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뒤뚱뒤뚱 입수를 기다리는 펭귄 떼 같기도 하고. 아니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또 잡생각이 모락모락 피어날 때쯤 초반 몸싸움을 피해 얼른 바깥쪽으로 이동해야겠다고 꼼지락거리는데 좋은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 대쪽까지 뻗대고 선 아주머니들을 지나쳐 이동하기는 피난길에 인파를 뚫고 역행하는 것만큼이나 거셌다.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탕!” 별안간 출발을 알리는 신호총이 울렸다. 빨강 노랑 파랑 수모를 낀 수백 명의 여자들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일제히 앞으로 나아갔다. 중간에 낀 나도 별 수 있나, 앞뒤로 치고 나가는 여자들 틈에 끼여 덩달아 헤엄을 시작했다.
헤엄은커녕 뒤에서 오는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게 요리조리 피하기만 하다 5분이 훌쩍 지났다. 이제 좀비 구간은 끝났겠지 생각했는데 웬걸, 여전히 병목 현상에 처한 좀비 아주머니가 저도 모르게 내 등을 타고 올랐다. 그 물살을 타고 내 스노클로 별안간 바닷물이 왈칵 들이닥쳤고 나는 짠내 가득한 물을 덜컥 들이마셨다. 다행히 의식이 있었던 좀비였던지 본인도 놀라 물먹은 나를 순순히 놓아주고는 제 갈 길을 헤엄쳐 갔다. 갑작스러운 레슬링에 물까지 먹어 조금 당황했지만 그제야 제법 한산해진 나는 본격적으로 헤엄을 치기 시작한다.
사실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갑작스러운 레슬링도, 당황한 나머지 왈칵 마셔버린 소금물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건 그제야 발견한 시커먼 세상이었다. 산호가 넘실대는 이국적인 바닷속 세상 같은 건 없었다. 본격적으로 물속에 얼굴을 처박고 헤엄을 치였는데 물이 썩 맑지는 않은 터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바다 구경 하려고 기껏 새로 산, 넓은 시야가 확보된다는 오픈워터용 수경으로 보이는 건 온통 까만 바다뿐이었다. 암흑 너머로 무엇이 살고 있을지 무엇이 튀어나올지 괜한 상상력이 또 한 번 가동되었다. 문어 같은 것이 퐁퐁 날아와 내 얼굴에 빨판을 붙이면 어떡하지? 입 속으로 해파리가 들어오는 건 어떻고, 상어는 또 어째? 두 발이 묶여 바다에 던져진 시체 같은 게 내 주변에 둥실 떠있으면 어떡해!! 이곳은 바다다. 보이지 않을 뿐 내 몸 아래로 엄청난 공간이 있다는 사실과 그 공간에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 내는 나의 상상력에 나는 압도되었다. 패닉이었다. 두려움에 그냥 우뚝 멈춰 서고 싶었다. 깊이도 그 끝도 알 수 없는 검정이 너무 무서웠다.
그 순간 사람, 나는 사람이 필요했다. 나랑 몸싸움하던 이들은 다 어디 갔나. 눈앞의 암흑보다야 누구 하나라도 함께 있다는 위안이 필요했다. 그제야 별안간 엄청난 힘이 생겨났다. 당장 헤드업을 해 첫 목표물 1을 발견했다. 전방 50m에서 나아가는 저 수모까지만 따라붙을 것. 너무 무서워서 살고 싶은 마음에 초인적인 힘이 생겼다. 휘적휘적 차던 핀을 있는 힘껏 굴려 목표물 1을 향해 나아갔다. 칠흑 같은 바다는 여전히 두려웠지만 “내 앞에 저 사람만 따라잡고 다시 생각하자” 두려움을 달랬다. 그렇게 눈앞의 수모들을 쫓아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니 1km 반환점이 나왔고 그 뒤론 얼른 뭍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또 열심히 발을 굴렸다. 막판 스퍼트를 위해 체력을 안배하고 할 것 없이 두려움에 처음부터 끝까지 풀 대시를 했고 어쩌다 보니 대학부 2등의 기록을 낸다.
내 인생 첫 오픈워터는 인어공주와 니모가 뛰놀 법한 컬러풀한 under the sea는커녕 온통 새까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래서 결국 나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평소라면 손쉽게 포기하고 외면했을 두려움을 안고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나를 홀로 마주했다. 그 흔한 휴대폰도, 친구와의 대화도, 하물며 꿈속으로 도망갈 수도 없이 바닷속에서 오롯이 홀로 깨어 있던 시간. 지금도 그때 그 바다를 떠올리면 그 생생한 두려움이 먼저 떠오르지만 동시에 이상하게도 어떤 그리움도 함께 떠오른다. 그 바다는 내 인생 최초이자 최고의 명상이었고 그날 이후로 나는 나를 대하기가 분명 조금은 수월해졌다. 늘 화려한 바다를 상상하며 바깥으로만 향하던 눈이 이제는 조금씩 내 안의 칠흑 같은 어둠에 익숙해지고 그 심연을 따라 두렵지만 더듬더듬 헤엄쳐 들어가 볼 일이 앞으로도 더 자주, 많아졌으면 좋겠다. 내 안의 바다에는 어떤 말들과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지 그때 그 바다를 헤엄치듯 천천히, 오래도록 누벼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