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가오리세요?
“저녁에 한국 사람들이랑 식사하기로 했는데 같이 갈래요? 한국의 갈비찜 비슷한 요리를 판대요. 여기 사는 친구가 추천해 준 맛집이에요.”
주항이 물었다. 앞으로 한 달간 묵게 될 방에 짐을 내려놓으며 J를 바라봤다. 따끈따끈한 입국 도장을 받고 우리는 이제 막 숙소에 도착한 참이었다. 이곳에 찾아오기까지 주항은 집의 대략적인 위치를 알려주고는, 지도상에 집의 위치가 정확하게 나와있지 않으니 그 근처에 내려 대문에 노란 꽃이 피어 있는 집을 찾으라 말했다. 2022년스럽지 않게 다소 서정적인 가이드에 잘 찾아갈 수 있을지 어리둥절했지만 우선 그녀가 일러준 좌표를 택시 기사에게 건넸다. 공항에서부터 한낮의 허허벌판을 한 시간쯤 달렸을까, 택시 기사는 우리를 웬 공터에 내려주곤 홀연히 사라졌다. 택시가 떠난 자리엔 비포장된 흙길의 모래바람이 훅 하고 일었다. 아담하게 줄지어 있는 흰색의 건물들 사이로 들개 세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고 있었다. 여기가 이집트구나. 떠나온 유럽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에 이제 다른 대륙으로 넘어왔음을 체감하며 노란 꽃이 핀 집을 부지런히 찾았다.
한국인 듯 한국 아닌 이곳에서
주항을 알게 된 건 이집트 여행 오픈 채팅방에서였다. 그녀는 이집트 현지인이 임대하는 집을 렌트해 친구 둘과 방을 셰어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작스레 한 친구가 숙소를 옮기게 되어 새로운 룸메이트를 구하는 글을 채팅방에 올렸고 마침 이집트에서 장기간 머물 숙소를 찾던 우리와 조건이 맞아 함께 살게 되었다. 여행을 하며 이렇게 집을 통째로 렌트하기는 처음이었다. 방 두 개에 침대 셋, 화장실은 물론 거실과 냉장고, TV까지 갖춘 그곳은 진짜 집이었다. 오랜만에 호스텔이 아닌 집 같은 숙소에 오니 마음이 넉넉해졌다. 게다가 한국인들과 함께 살다니. 숙소를 옮길 때마다 리셉션의 현지인 직원이 영어를 할 수 있는지 눈치 볼 일도, 같은 방에 머무는 여행자의 예측불허한 국적과 그에 따른 천차만별한 영어 발음에 적응할 필요도, 한국과 북한의 정치 경제 군사적 관계를 영어로 설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릴 수고로움도 없을 터였다. 당분간 저 무거운 배낭을 멜 일도 없겠군. 바닥에 내려놓은 배낭을 따라 모처럼 마음도 함께 놓였다.
“좋아요! 저녁 같이 먹어요.”
이 작은 동네에 곧 한국인 여행자 둘, 그것도 부부가 새로 온다는 소식이 금세 퍼진 모양이었다. 그날 저녁식사에 모이기로 한 한국인 멤버만 벌써 여덟이었다. 첫날부터 북적한 규모였지만 함께 저녁을 먹자는 주항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일단 긴 이동에 지쳐 배가 고프니 짐을 내려놓고 바로 식당으로 향하는데 그때마다 적당한 가격의 적당한 맛집에서 공복의 위장이 너무 놀라지 않을 만큼 적당히 현지스러운 메뉴를 고르기 위해 눈치 레이더망을 세우는 게 일이었다.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그래도 현지 맛집에서 성공적인 한 끼를 하고 싶어 머리를 굴리는데 그런 소소한 번잡함마저 스킵해 줄 보증된 식사 자리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한국 사람들’이라고 했다. 한국인 여행자들이 특히 많기로 유명한 다합에 도착한 것이 새삼 실감이 났다.
배낭여행 깨나한다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다합은 한달살이 여행지로 유명하다. 세계 다이빙 3대 성지로도 손꼽히는 다합에는 온종일 보고 헤엄쳐도 질리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바다와 그 바다를 함께 누빌 다종다양한 바다쟁이 친구들이 있다. 게다가 따뜻한 날씨와 저렴한 물가, 적당히 안전한 치안까지 모든 것을 갖춘 이곳은 그야말로 완벽한 배낭여행지였다. 하루하루가 느린 듯, 하지만 정신 차리고 보면 순식간에 한 달이 흘러가 있는 마법 같은 곳이라 애초에 계획한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두 달이 비자 만료 때까지만, 비자 만료가 1년 만이 되어 결국 다합에 정착한 이들도 제법 있었다. 그런 소문이 알음알음 나 그런지 오죽하면 중국인보다 한국인이 더 많다고 하니, 가히 (한국) 배낭여행자들의 무덤이었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한국인 여행자들도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깜짝 저녁 모임에 순식간에 사람들이 모이는 걸 보면 다합의 한국인 커뮤니티는 여전하긴 한 모양이었다. 이곳에 한달살이를 하러 온 나와 J를 비롯해서 말이다.
우리가 다합에 온 것 역시 바다 때문이었다. 바다를 워낙 좋아하는 나의 제안에 육지형 운동파인 J는 큰 생각 없이 그저 따라왔지만 이왕 온 김에 우리는 프리다이빙을 함께 배우기로 했다. 당장 내일부터 프리다이빙 수업을 듣기로 하고 오늘은 여독을 풀 겸 슬렁슬렁 시내 구경을 하러 나섰다. 우리를 위해 오후 반나절의 시간을 비워 두었다는 주항이 가이드를 자청했다. 일주일 전에 이곳에 도착했다는 주항은 이미 다합 사정에 빠삭했다. 현금 인출 수수료가 가장 적게 드는 ATM을 시작으로, 냉장고 구석에 숨겨진 생 망고 주스가 정말 찐 100%인 슈퍼마켓, 독일인이 운영한다는 베이커리, 차이 한 잔 시켜 놓고 종일 멍 때리기 좋은 특히 와이파이가 잘 되는 해변 카페를 슬렁슬렁 소개해 주었다. 다합에서의 한 달이 풍성해질 이런 꿀팁들이라니. 연고도 없는 타지에 정착하러 무작정 넘어온 멋모르는 신혼부부를 챙겨주는 지역 유지 같았다.
어쩌다 보니 주항 투어가 된 오후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초저녁의 다합의 작은 식당에 순식간에 한국인 여행자 8명이 모였다. 오늘 막 도착한 나와 J 말고는 다들 이미 아는 사이였다. 이 구역 뉴비인 나와 J는 사람들과 통성명을 했고 곧이어 누군가 슬쩍 우리 나이를 물었다. 나이로 호칭 정리를 하고 얼른 말을 놓아야 빨리 친해진다는 지극히 K스러운 논리와 함께. 평소라면 이런 급작스러운 전개가 다소 부담스러웠을 테지만 여긴 다합이니까. 다른 어느 여행지보다도 한국스러운, 하지만 엄밀히 한국은 아닌 그곳에 자리한 오묘한 K문화가 썩 마음에 들었다. 나이를 듣고 보니 마침 다들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까지 고만고만한 또래였다. 우리는 두 테이블로 나눠 앉아 왁자하게 메뉴를 골랐다. 오늘 작정하고 술을 먹어보겠다는 옆 테이블은 평소에 궁금했던 비둘기 요리에 도전했고 우리 테이블은 다합식 갈비찜과 다양한 메뉴들을 골라 나눠 먹기로 했다. 아아, 이런 K 식 음식 나눔 문화라니, 반가웠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우리는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눴다. 여행자들의 대화답게 그동안의 여행이야기와 다합살이에 대한 설익은 정보들이 주를 이뤘다. 우리 역시 터키를 시작해 유럽을 여행하고 오늘 막 이집트 다합에 들어왔고, 결혼을 하고 여행을 한지 나는 세 달, J는 두 달 정도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름과 나이, 그나마 사투리로 추정되는 고향에 대한 질문 정도가 있었을 뿐 직업이나 학력, 연애나 재산 같은 한국에서 쌓아 올린 흔적들은 누구도 굳이 묻지도 대답하지도 않았다. 다합에서 시작해 중국과 산티아고, 터키를 종횡무진 가르는 우리의 대화는 주문한 요리가 나오고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너무 무겁지도 너무 부담스럽지 않은 주제들만 쏙쏙 골라서 말이다. 그러다 어쩌다 그 얘기가 나왔는지, 불현듯 유진이 말했다.
“정현이 카이스트 나왔다며?”
다합, 다시 만난 세계
갈비찜으로 향하던 손이 멈칫했다. 순간 J와 눈이 마주쳤다.
“진짜? 이야, 정현이 공부 잘하네~ 근데 어떻게 알았어? 네가 자랑한 거야?”
구석에서 조용히 닭다리를 뜯던 정현이 포크를 든 채로 냅다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땀방울을 휘날리는 보노보노처럼 정현은 허둥지둥 대며 두 손을 연신 흔들었다. 그런 정현을 놀리는 맛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깔깔대며 그를 흉내 냈다. 유진이 말했다.
“아니 며칠 전에 정현이 다합 처음 온 날 다 같이 밥 먹었거든. 그때 주항이가 정현이 보고 “정현이 완전 카이스트상 아니야? 관상이 딱 카이스트야.” 하고 놀렸었거든. 정현이도 허허허 웃어넘기다가 나중에 시샤 하는 가게로 옮겨서 또 그 얘기가 나왔는데 다른 친구가 잘못 듣고 “어? 정현이 카이스트 나왔다고?” 하는 거야. 내가 정현이 민망할까 봐 “아니 아니, 카이스트상이라고 상. 그냥 얼굴이 그렇게 생겼다고.” 했는데 정현이가 옆에서 우물쭈물 고민하더니 “사실.. 제 입으로 말하긴 좀 그런데.. 진짜 카이스트 다니는 거 맞긴 해요.”라고 말해가지고 다들 빵 터졌지 뭐야. 진짜 카이스트 다니는데 아니라고 거짓말하자니 그렇고, 또 그렇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자니 민망하고. 정현이가 당황해 가지고 버벅대는데 다들 웃겨 가지고. 아 정현이 놀리는 거 너무 재밌어!”
그렇게 얼굴로 밝혀진 학력이라니… 관상만 보고 300개가 넘는 한국의 대학 중 하나를 때려 맞춘 주항도 대단했지만(대학에 진학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으니 그 확률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외모만으로 모교를 드러낸 정현의 외모도 실로 대단했다. 얘기를 듣고 보니 그제야 정현의 생김새가 눈에 띄었다. 사실 눈에 띄었다기엔 화려할 것 없는 아주 수수한 차림이었다. 끽해야 스물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앳된 얼굴에 알이 두꺼운 안경을 끼고 수줍게 웃는 자. 이 파워 E(외향인)들 사이에서 낯을 가리며 뚝딱거리는 그 I(내향인)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아, 저 친구는 참 순진해 보이는군.” 싶은 수수함이 도드라져 보였고, 좀 더 들여다보니 “공부도 제법 잘하게, 똘똘하게 생겼어.” 싶은 지성미가 보이는 듯했고, 좀 더 노려 보다 보니 “공부를 한다면 왠지 수학, 과학을 좋아할 것만 같아” 싶은 이과스러움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어울려 지내다 보면 외모도 비슷해지는 건가? 그러고 보니 캠퍼스에서 묘하게 정현을 닮은 이들을 제법 본 것 같았다. 카이스트상이 무엇인지 왠지 알 것만 같아…
몇 학번일까? 무슨 과였을까? 어떤 동아리를 했을까? 갑자기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스물다섯 살이라는데 그 정도면 나와는 접점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대각선 끝에서 끝으로 두 테이블의 구석좌를 담당하고 있는 우리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동문이라는 것 말곤 교차점이 딱히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동문이라며 갑자기 알은체를 하기에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 뻔했다. 그 큰 캠퍼스에서 어쩌다 스쳐 지나갔을 수 있는 인연이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고. 눈이 마주친 J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곤 둘 다 조용히 갈비찜을 마저 뜯기로 했다.
그래도 이 먼 타지에서 동문을 만나다니 재밌는 일이었다. 나중에 따로 얘기해 봐야지. 그나저나 겨울방학에 그것도 한 달씩이나, 볼 거라곤 바다가 전부인 다합에 오다니. 코시국에 굳이 출국하려면 돈도 더 많이 들고 이것저것 신경 쓸 것도 더 많을 텐데 말이야. 물놀이에 정말 진심인가 보군. 어라? 가만 보자. 카이스트에서 물놀이를 좋아한다? 아니 이 조합은..? 미지의 동문을 둘러싼 추리가 여기에 이르자 나는 갈비찜을 뜯던 수저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에게 은밀하게 물었다.
혹시, 가오리세요?
이 편 구석에서 저 편 구석으로 두 테이블을 가로질러 내가 그에게 던진 질문은 일종의 암호였다. 어느 시신에서 발견된 비밀 표식을 시작으로 비밀결사 조직 일루미나티의 비밀을 풀어가는 <천사와 악마>의 로버트 랭던처럼,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며 비밀스럽게 세상을 지배하는 흑막으로 지목받는 로스차일드 가문과 같은 미스터리함을 가득 담아 그에게 던진 암호, 가오리. 이 질문을 듣고 “가오리 찜 좋아하냐고요? 그럼요, 술안주로 최고죠. 아 갑자기 소주 먹고 싶네.” 하는 위장 중심적 대답을 한다거나 “가오리 본 적 있냐고요? 한국에선 본 적 없는데 다합에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만타 가오리가 제일 보고 싶어요.” 따위의 소원 성취형 답변을 한다면 사요나라. 오늘의 식사가 끝나고 그 언젠가 가오리 찜과 만타 가오리에 대해 찬찬히 이야기 나눠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가 진짜 가오리라면 얘기가 다르다. 이역만리에서 가오리 떼를 마주칠 이 운명과도 같은 순간은 한시라도 미룰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나의 예상은 적중했다. 두꺼운 안경 뒤의 그의 눈이 만타 가오리만큼 커졌다.
“아니, 가오리를 어떻게..?”
더 놀라웠던 것은 우린 구면이었다. 서로의 기억을 맞춰 보니 여름 엠티까지 함께 간 사이가 아닌가. 가오리 신입생들은 여름 바다 대회에 필수로 참가한다. 바다 대회 겸 여름 엠티를 겸한 행사에 오랜 선배들도 종종 함께 참가하곤 했는데 정현이 처음 바다 대회에 나가던 3년 전에 나도 오랜만에 동기 몇 명을 꼬셔 대회를 나갔다. 그 해 거제도의 어느 펜션에서 우린 아마도 잔을 부딪치며 인사를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때도 우린 거실의 구석좌를 한 자리씩 담당하며 서로 낯을 가렸을 수도 있고, 혹은 대회 완주를 자축하며 코가 삐뚤어져라 마시느라 그때의 기억이 온통 흐릿해졌을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우리가 동문에 같은 동아리인 것도 모자라 거제도에서 함께 술잔을 부딪힌 사이였을 줄이야. 비록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진 못했지만 이 또한 정현의 관상이 아니었다면 평생 서로가 가오리인 줄도 모르고 다합에서 만난 여행자 친구로 알고 지냈을 수도 있겠다.
홍해에서 다시 만난 가오리라니. 다합에서의 첫날밤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