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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하이 Oct 20. 2023

우리 같이 헤엄칠래요?

자연에서 함께 움직이는 삶

 

  며칠 뒤 정현과 나는 다시 만났다오늘 우리는 같이 수영을 하기로 했다마침 둘 다 프리다이빙 수업을 듣던 터라 각자의 선생님들과 거의 매일 같이 바다에 들어갔지만 오늘은 두꺼운 슈트도오리발이나 스노클도 없이 단출하게 만났다바다와 물놀이를 잔뜩 기대하고 다합까지 왔건만 지난 며칠 간의 바다는 내게 온통 실망스러운 기억뿐이었다물에서 하는 건 뭐든 자신 있고 좋아했던 내게 프리다이빙은 고문이었다


  프리다이빙은 호흡과 심박수를 낮추기 위해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것이 기본이다그러다 보니 물에만 들어가면 요리조리 헤엄치고 몸을 움직이려는 나를 보고 선생님은 자꾸만 가만히 있으라 했다이 넓은 바다에서 움직이지 말라니눈앞에 펼쳐진 푸른 자유를 보고도 누리지 못하는 무의미한 수련과 같았다게다가 평소에도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데 바다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으려니 어찌나 추운지비싼 돈 들여 프리다이빙을 배우며 숨 고문 지루함 고문 추위 고문에 시달리고 있자니 심통이 났다그토록 기대했던 다합의 바다가 하나도 즐겁지 않은 요즘이었다.


  J를 비롯해 가오리 얘기를 들은 사람들도 수영을 배우고 싶다며 삼삼오오 모였다우리가 딱히 가르쳐줄 것은 없고 그저 함께 바다를 가로질러 헤엄치기로 했다바다와 바로 맞닿은 해변 카페에 짐을 내려 두고 옷을 벗었다수영복에 수경 하나 덜렁 걸친 예닐곱의 청년들이 해변 카페에 둥글게 모여 섰다가오리 훈련 때처럼 다 함께 스트레칭을 했다


  오늘의 목표는 약 2km. 짐을 놔둔 해변 카페에서 1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다리까지만 찍고 돌아오기로 했다거진 30분 정도 헤엄치면 모처럼 운동이 되겠지방수가 되는 casio 손목시계를 차고 입수 시간을 체크했다이제 바닷물에 뛰어들기만 하면 되는데 막상 슈트도 없이 뛰어들려니 추워서 도저히 엄두가 안 났다온 김이 피어나는 목욕탕에서 냉탕에 발만 빼꼼 넣고 앉아 간을 보듯 다합의 뜨뜻한 햇볕을 쬐며 바다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입수할 순간만 세월아 네월아 기다렸다사람들이 이를 악물고 하나 둘 입수하고 나도 이제 진짜 들어가야 할 시간이럴 때 나만의 팁이 있다심장이 놀라지 않게 손발부터 천천히 물에 적시는 것눈 딱 감고 머리부터 점프하는 것내 몸이 주저할 여지를 주지 않고 일단 한번 점프하는 것이 팁이라면 팁이다점프를 하고 나면 그 짧은 체공시간 동안 너무 춥겠다점프하지 말 걸이라고 후회된다 해도 이미 머리는 중력을 따라 곧이어 입수해 버린다. 그렇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순식간에 다 젖고 나면 그 이후로는 얼른 몸에 열을 내려고 버둥버둥 움직이며 자연스레 헤엄이 시작된다


  우리는 다 함께 다리까지 나아갔다나는 혹시나 누가 위험하진 않을지 체크하며 맨 마지막 사람 뒤에 붙어 찔끔찔끔 헤엄쳤다맨 뒷사람은 한사코 괜찮다며 먼저 가라고 했지만 여긴 바다니까또 마침 그게 근육맨 맥주병 J였던지라 괜히 더 걱정이 되어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나는 J와 함께 놀멍 쉬멍 다리까지 갔다 왔다그렇게 30분이 훌쩍 지나고 다시 해변 카페의 첫 입수 포인트에 모인 우리다행히 처음 출발한 여섯 명 모두 무사했다첫 바다 2km 완주를 축하하며 사람들은 기분 좋게 물 밖으로 나갔다아쉬움일지 힘일지가 남아 바다 안에 동동 떠있는 건 나와 정현뿐이었다아직 뻘쭘해 서로 존댓말을 하며 물었다.


  “수영 더 할래요?”

  “좋아요!”

  “그럼 저기 자갈해변까지 갔다 와요!”


  그렇게 둘만의 헤엄이 시작되었다우리는 아주 멀리까지 나아갔다다합의 바다가 유난히 맑아 그런지 그날의 날씨 때문인지 해변에서 멀리까지 헤엄쳐 왔는 대도 바닥이 훤히 보였다형형색색 이국적인 산호들이 보이고 그 위로 간간이 스쿠버다이버들이 헤엄쳐 지나갔다어디쯤 왔나어디까지 갈까 방향을 살피러 머리를 동동 내어놓고 있는데 정현과 눈이 마주쳤다

  

  “더 갈까요?”

  “좋아요더 가요!”

  그 순간 뭐랄까나는 정말이지 형용할 수없이 행복했다우리가 지금 이 망망대해를 같이 헤엄치고 있는 거야온통 하늘과 온통 바다뿐인 이곳에서 시원한 물이 온몸을 가득 메우고어디든 함께 헤엄쳐 가보자고 이야기하는 친구와 함께 있다니이건 꿈인가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손꼽힐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이겠구나 하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내 인생에 가오리와 함께 바다수영을 하는 날이 또 올 줄이야그 순간의 황홀함은 나의 첫 오픈워터였던 스물, 거제의 여름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자연에서 함께 움직이는 삶

 

  해변으로 다시 모인 우리는 슈트와 핀스노클을 벗어던지고 한바탕 물놀이를 했다엎어뜨리고 메치고 물 먹이고 도망가고 다이빙하고 공을 던지고 땅을 파고 모래성을 쌓고해변에서 몸으로 할 수 있는 온갖 창의적인 놀이들이 튀어나왔다그러다 배가 고프면 의렬이 만들어준 유부초밥을 주워 먹고 돗자리에 드러누워 숨을 골랐다그렇게 쉬고 있으면 또 한 명씩 잡아다 바다에 빠뜨리고빠지면 빠진 대로 또 물에 젖어 깔깔댔다청량한 여름이었다


  가오리 때 이야기를 쓴다는 걸 듣고 동기 언니 오빠들이 대단하다고, 10년도 지난 시간을 어떻게 이렇게 다 기억하냐고 놀라곤 한다. 물론 다 기억하지 못한다. 사실 기억나는 거라곤 첫 오픈워터 같은 충격적인 사건이나 그때의 굵직굵직한 감정들 뿐이다. 그래서 동기들의 증언(대게 욕이다.)을 토대로 집단 지성을 발휘하거나, 네이버 카페와 훈련부장에게 남아있는 자료(이런 면에서 성근오빠는 정말 대단히 철저한 사람이란 걸 다시 한번 느꼈다.)를 찾아보거나, 혹은 그 시절 간간히 써 둔 일기장(너무 오글거려서 일기를 정독하는 게 더 힘들 지경이다.)을 들춰본다그래도 메워지지 않는 부분은 적당히 상상해서 쓴다. 그럼 이렇게 고생하여 왜 꼭 그 옛날의 글을 쓰느냐 하고 묻는다면 결국은 이런 순간들 때문이다.


  그 여름의 바다는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데 아주 큰 힌트가 되어주었다 인생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나열하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베스트 3가지를 꼽아본 적이 있다시간순으로 봤을  그중 처음은 단연 가오리였다가오리를 하면서도 분명 힘든 시간들이 있었건만나는 꼭 이 여름의 바다 때문에 내 인생에 가오리가 아주 중요하다고 꼽을 수밖에 없다그 바다에서 나는 정말이지 활짝 피어났다친구들과 함께 바다를 누비던 그날 내가 느낀 자유로움은 이전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이 더없이 큰 행복이었다


  나는 여전히 진로를 고민하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살면 좋을지 생각한다우연히 다합에서 정현이를 만나고 함께 바다 수영을 하며 번뜩이 글을 꼭 써야겠다 다짐했다자연에서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고 뛰어노는 것부끄럽지만 나는 그것이 너무 좋다얼핏 보기에 돈벌이가 되는 일도 어른스럽고 전문적인 일도세계평화나 환경보호처럼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는 일도 아니란 걸 알기에 선뜻 부끄러운 마음부터 들지만그럼에도 나는 그저 자연과 사람몸의 움직임이 어우러진 순간 속에서 활짝 피어난다는 걸 이제는 확실히 알 것 같다누가 시킨 것도어떤 다른 목적이나 도덕심의무감 없이 오직 내 안에서 피어난 나만의 고유한 기쁨으로 말이다


  이 행복을 좇아 밥벌이나 할 수 있을까누군가에게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설명이나 할 수 있을까이 마음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감도 오지 않지만 10년이 지나도록 그 순간이 그리워 이토록 긴 글을 풀어놓을 정도의 사랑이라면 이제는 너는 꿈이 뭐니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니?”라는 질문에 나는 자연에서 함께 움직이는 삶이 너무 좋다고그런 순간을 만들어 가기 위해 살아볼 것이라고 한번 용기 내 봐도 좋지 않을까파도가 넘실대던 거제와 다합의 바다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온종일 헤엄치고 웃고 떠든 그 장면들이 있는 한 그것 만으로 이미 찬란하고 가치 있는 삶이 될 테야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 있고 그런 내 곁에는 네가 있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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