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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고양이의 날

집사를 둔 개냥이, 가시밭길 위의 길냥이

by goeunpa

매년 8월 8일은 국제동물복지기금(IFAW·International Fund for Animal Welfa)이 2002년 제정한 '세계 고양이의 날'입니다. IFAW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동물복지운동단체 중 하나죠. 8월 8일이면 세계 각국의 '집사'들이 SNS에 고양이 사진을 올리며 '고양이의 날'을 축하합니다.


‘집사’의 사전적 의미는 ‘주인 가까이에서 그 집 일을 맡아보는 사람’입니다. 고양이를 키우며 스스로 ‘집사’라 부르는 이들을 보면, 그 역할은 비슷할지언정 ‘모시는’ 대상이 사람이 아닌 동물이라는 점에서 재미있어요. 어쩌다 고양이가 '상전'이 되었을까요? 굳이 그 기원을 유추해 보자면, 서열 의식이 확고하고 주인에 대한 충성심을 드러내는 개와는 달리, 독립적이고 도도한 성격의 고양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 스스로가 고양이의 수발을 드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李瀷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고양이란 성질이 매우 사나워 비록 여러 해를 길들여 친하게 만들었더라도 하루아침만 제 비위에 거슬리면 갑자기 주인도 아는 체하지 않고 가버린다”라고 했어요.*1


개와 마찬가지로 고양이 역시 고대부터 일찌감치 사람들과 부대끼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고양이 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죠. 이집트인들은 고양이를 바스테트Bastet 여신의 현신이라 여기며 숭배하였고,*2 함부로 고양이를 해하는 자는 엄벌에 처했습니다. 고대의 숭배의식이 현대까지 이어져 이집트에서는 여전히 고양이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이들이 많아요.


우리나라에 고양이가 전래된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삼국시대 불교의 전래와 관련 있을 것이라 봅니다. 중국에서 불경을 배에 싣고 올 때 쥐가 파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함께 태웠던 고양이가 한반도로 들어왔을 것이라 추측하죠. 그러나 이는 가축화된 고양이에 국한된 것이고, 야생 고양이는 훨씬 이전부터 한반도에 존재했을 것이라 보기도 합니다. 신석기시대 유적인 김해 수가리 패총과 충남 안면도 고남리 패총에서 야생 고양이의 뼈가 나온 사례가 있기 때문이에요.


조선시대의 기록을 보면 고양이와 관련된 것을 심심찮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재미난 사례를 살펴볼까요?


강원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는 조선 제7대 왕 세조世祖(재위 1455~1468)와 그를 구한 고양이에 대한 설화가 전합니다. 조카 단종端宗(조선 제6대 왕, 재위 1452~1455)에게서 왕위를 찬탈한 세조는 온몸에 돋아난 종기로 매우 고생을 했어요. 세조는 영 차도가 없는 병을 고치기 위해 영험하다는 오대산 상원사를 찾아가던 중 문수동자를 친견한 뒤 병이 나았고, 이듬해 다시 상원사를 찾았습니다.

국보_평창_상원사_목조문수동자좌상(2014년_국보_동산_앱사진)001.jpg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상원사의 문수동자상은 예배의 대상으로서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동자상이다. (자료 국가유산청)

세조는 이때 한 번 더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데, 예불을 드리려고 하는 순간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가 세조의 곤룡포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를 기이하게 여긴 세조가 주변을 살피게 하니 아니나 다를까 세조를 시해하려고 숨어있던 자객이 발각되었습니다. 세조는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고양이에게 보답하고자 상원사에 ‘묘전猫田’을 하사하였죠.


조선 제19대 왕 숙종肅宗(재위 1674~1720)은 조선의 역대 왕 중 첫 손에 꼽을 애묘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록에는 전하지 않지만 그의 고양이 사랑은 숙종 때 인물 김시민金時敏의 시문집 『동포집東圃集』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숙종은 자신이 기르는 황금색 고양이를 끔찍이 아꼈다고 합니다. 금손金孫이라는 이름까지 손수 지어주었고,*3 금손이 역시 숙종의 사랑을 알았는지 숙종이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나 늘 곁에 있었죠. 금손이는 전형적인 '개냥이'였나 봐요. 그렇게 자신을 아껴주던 숙종이 1720년 승하하자 금손은 자신의 주인이 누워 있는 빈전殯殿*4을 향해 서글프게 울어댔고, 이후 20일 동안 먹이를 먹지 않다가 주인의 뒤를 따랐다고 합니다.*5

고양_서오릉_명릉(숙종과_인현왕후)_능침.jpg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제2계비 인원왕후의 능인 명릉明陵. 금손이는 죽은 뒤 명릉 주변에 묻혔다고 한다. (자료 국가유산청)

우리나라에서 고양이는 여러 다양한 반려동물 중 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어요.*6 1인 가구 전성시대인 요즘, 분리불안을 겪을까 걱정되는 개보다 혼자 두어도 잘 지내는 고양이는 훨씬 좋은 친구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개와 같은 사귐성까지 갖춘 ‘개냥이’라면 사람들은 더욱 열광합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길고양이를 대상으로 한 학대범죄가 매년 꾸준히 증가한다는 통계조사가 존재하기도 합니다. 길냥이를 향한 이유 없는 범죄 뉴스도 심심찮게 접하곤 합니다.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저조차도 그런 뉴스를 접할 때면 분노가 일곤 해요. 생명은 경중을 따질 수 없어요. 주인 없는 길냥이의 생명은 집사를 둔 개냥이보다 가벼울까요? 길냥이들이 한여름 폭염을 잘 지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1) 李瀷, 『星湖僿說』 卷4, 萬物門, 金猫.

*2) 바스테트는 사람의 몸에 고양이 얼굴을 지녔다고 합니다.

*3) 숙종이 고양이에게 금손이라는 이름을 하사한 사실은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영조 1년(1725) 11월 9일 기사입니다.

*4) 국상 때 상여가 나갈 때까지 왕 또는 왕비의 관을 모시던 전각

*5) 金時敏, 『東圃集』 卷2, 詩, 金猫歌.

*6) 2018 반려동물 보유 현황 및 국민 인식 조사 보고서(문화체육관광부·농촌진흥청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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