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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eunpa Sep 26. 2024

조선왕릉

신성한 왕실의 영역

메인: 구리 동구릉_경릉 문석인과 무석인(사진 국가유산청)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여 지도자의 무덤은 예부터 권위의 상징이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선사 시대 거석 무덤(가령 고인돌)을 시작으로,*1 이집트의 피라미드, 고대 중국과 고대 일본,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대형 고분은 모두 그만한 규모의 무덤 조성에 필요한 노동력을 징발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 ‘노동력의 징발’은 강력한 권력의 상징이었어요.


우리나라 왕릉 무덤 건축이 완성된 시기는 조선 시대입니다. 건국 초반에는 어느 시대나 그렇듯 이전 왕조인 고려의 원칙이 유지되었으나, 성종成宗(조선 제9대 왕, 재위 1469~1494) 때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완성 이후 정립된 조선의 원칙은 이후 일관되게 유지되었습니다.

조선왕릉 (자료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은 왕과 왕비의 무덤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왕의 후궁, 왕세자와 세자빈, 왕세손, 그 외 왕족들과 폐위된 왕의 무덤까지 모두 포함해요. 묻힌 이의 지위에 따라 능陵(왕과 왕비·추존된 왕과 왕비·황제·황후), 원園(왕을 낳은 후궁·왕세자와 왕세자빈·왕세손·황태자·황태자비), 묘墓(나머지 왕족, 폐왕)로 구분하며, 형태 역시 봉분의 조성형태에 따라 단릉, 쌍릉, 합장릉, 동원이강릉, 동원상하릉, 삼연릉의 여섯 가지로 나눕니다.


태조太祖(조선 제1대 왕, 재위 1392~1398)의 건원릉이나 단종端宗(조선 제6대 왕, 재위 1452~1455)의 장릉과 같이 왕과 왕비의 봉분을 단독으로 조성한 능을 단릉單陵이라고 합니다. 총 15기가 있으며 조선 중기까지 나타나다 18세기 이후에는 거의 볼 수 없어요.

구리 동구릉_건원릉 (사진 국가유산청)

쌍릉雙陵은 왕과 왕비의 봉분을 하나의 곡장*2 안에 나란히 조성한 것으로 명종明宗(조선 제13대 왕, 재위 1545~1567)의 강릉, 영조英祖(조선 제21대 왕, 재위 1724~1776)의 원릉이 대표적이며 9기의 능이 쌍릉으로 조성되었습니다. 합장릉合葬陵은 왕과 왕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능을 말하는데, 순종純宗(조선 제27대 왕·대한제국 제2대 황제, 재위 1907~1910)의 유릉은 특이하게도 왕과 두 명의 왕비를 하나의 봉분에 합장한 동봉삼실이에요.

왼쪽) 구리 동구릉_원릉, 남양주 홍릉과 유릉_유릉 (사진 국가유산청)

15세기에 집중되어 총 7기가 존재하는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과 상설을 조성한 능입니다. 대표적으로 세조世祖(조선 제7대 왕, 재위 1455~1468)의 광릉이 있죠. 특이한 예로 선조宣祖(조선 제14대 왕, 재위 1567~1608)의 목릉은 세 개의 언덕에 선조, 의인왕후懿仁王后, 인목왕후仁穆大妃의 봉분을 각각 조성하였고, 숙종肅宗(조선 제19대 왕, 재위 1674~1720)의 명릉은 숙종과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쌍릉과 인원왕후仁元王后의 단릉을 서로 다른 언덕에 조성했습니다.

왼쪽) 남양주 광릉, 구리 동구릉_목릉 (사진 국가유산청)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은 왕릉 조성에 풍수지리가 강하게 작용한 결과 나타났습니다. 한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것으로, 이는 능혈의 폭이 좁은 탓에 왕성한 기가 흐르는 정혈에서 자칫 벗어날지 모르는 위험을 방지하고자 선택한 결과였습니다. 효종孝宗(조선 제17대 왕, 재위 1649~1659)의 영릉, 경종景宗(조선 제20대 왕, 재위 1720~1724)의 의릉이 이에 해당해요. 삼연릉三連陵은 한 언덕에 왕의 봉분과 두 명의 왕비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능으로, 헌종憲宗(조선 제24대 왕, 재위 1834~1849)의 경릉*3이 유일합니다.


왼쪽) 여주 영릉과 영릉_효종 영릉 (사진 국가유산청), 오른쪽) 구리 동구릉_경릉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왕릉은 세월의 흐름 속에 그 형태와 기능이 퇴색되지 않고 잘 보존되었습니다. 조성 당시부터 조선만의 엄격한 의례와 원칙 속에 경건하고 신성한 왕의 공간으로 조성된 탓에 조선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유적이라 할 수 있어요.

속칭 '왕릉 뷰 아파트' 논란의 중심인 김포 장릉*4 (사진 국가유산청)

근래 국가유산 당국 허가 없이 건설된 아파트로 인해 조선 왕릉의 경관이 훼손되어 논란이 있었습니다. 아파트 건설이 중단되지 않을 경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은 등재 취소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었죠. 국가유산청(당시 문화재청)의 허가 없이 올라간 아파트를 철거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동의한 이의 숫자가 20만 명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해당 아파트의 입주예정자들은 행정실수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고통을 겪었죠.


국민의 우려 속에 재판이 진행되었지만 최근 공사중단을 명령받았던 건설사들이 연이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를 받아냈습니다. 결국 공사강행 후 밀어붙이면 해결된다는 나쁜 선례가 남는 쪽으로 일단락되는 분위기네요. 한참 늦어버린 뒤에야 행정조치에 들어간 국가유산청과 문제의 소지가 있음에도 강행한 건설사들 사이에서 애먼 입주예정자들만 불안에 떨어야 했습니다. 


건설사들은 지난해 입주민들의 입주를 완료했습니다. 그나마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입주민'들에게는 해피엔딩이라 있으니 조금은 다행이라 해야 할까요?




*1)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약 30,000여 기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발견된 전 세계 고인돌의 40%가 한반도에 위치합니다.

*2) 무덤 뒤에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

*3) 경릉은 조선 제24대 임금인 헌종憲宗과 왕비 효현왕후孝顯王后, 계비 효정왕후孝定王后의 무덤입니다.

*4) 장릉은 조선 제10대 임금인 인조仁祖의 아버지 원종元宗과 부인 인헌왕후仁獻王后의 무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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