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의 꿈
긴 시간을 달려 직녀를 만났다. 경주시 양북면 두산리에 있는 명주 작업관, 그곳에서 예순부터 아흔에 이르는 분들이 모여 명주를 짠다. 수십 년간 전통 명주를 짜온 분들이다. 이들로 결성된 ‘두산손명주연구회’는 국가무형문화재 제87호이다. 얼기설기 얽힌 한세월을 풀어낸 그들의 삶이 궁금하다.
“돌 돌 돌 돌”
그들의 삶이 그랬을까. 누에고치가 하얀 실을 풀어내며 쉴 새 없이 돌고 있다. 명주 짜기의 첫 과정은 명주실을 만드는 것이다. 끓는 물에 누에고치를 넣고 살살 저어서 실을 뽑아 올린다. 손에 잡힌 실 끝을 돌 돌 돌 사려서 자새의 쇠고리에 꿴다. 고리를 통과한 실을 서로 꼬아 합사한 후 물레에 묶는다. 찬찬히 물레를 돌리면 명주실이 도톰하게 감긴다. 하얀 실을 다 내어놓은 누에는 하늘하늘한 홑겹의 명주옷 한 벌로 만족한 듯 물러난다.
고치에서 뽑은 실을 물에 우려 말린 다음 실올을 푼다. 물레가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가락이 돌아가고, 돌것도 함께 따라 돌며 실을 풀어낸다. 직녀가 풀어갈 삶의 가닥도 물레를 따라 돌아간다. 돌것과 물레가 돌아가는 소리를 벗 삼아 실이 가락에 감긴다. 한 올 한 올 가락에 감기는 실처럼 직녀는 그렇게 삶을 감아 왔다.
가락에 감긴 실타래를 날틀에 건다. 명주 한 필의 길이에 맞추어 날실의 길이로 날고, 새수에 맞추어 날실의 올수를 맞춘다. 날기를 마친 실을 틀에서 뺀 다음 매듭지어 묶는다. 곱게 거둔 날실을 광주리에 차곡차곡 담는다. 젖먹이 아기를 자리에 뉘듯 손길이 조심스럽다. 얽혀도 안 되고 헝클어져도 안 된다.
실을 걸고 묶는 직녀의 손이 다르다. 구불텅하게 변형된 엄지손가락이 검지 쪽으로 휘어있다. 실을 뽑아 베를 짜며 엮어온 촘촘한 날들의 흔적이다.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합사하는 과정만 해도, 엄지와 검지로 열 번은 꼬아야 한다. 제아무리 섬섬옥수인들 거칠어지고 구부러지지 않을 재간이 있었을까.
열여덟, 곱디고운 나이에 새신랑 얼굴도 모르고 시집왔다. 혼인날 처음 본 신랑은 곱상한 얼굴에 제법 의젓해 보였다. 살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될 오직 한 사람이었다. 혼인 첫날, 마음고생 몸 고생 다 덜어내어 자신이 짊어지겠다던 맹세는 다 어디로 갔는지. 삶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새색시는 힘든 살림 일으키려 누에를 치고 베를 짰다.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듯 시간은 하염없이 잘도 흘러갔다. 그렇게 시작된 길쌈의 세월이 수십 년을 훌쩍 넘겼다. 때로는 징글징글하기도 했고,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울 때도 있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잘 살자 했던 그는 미리 떠나버리고, 길쌈하며 산 세월이 그와 산 세월보다 길다. 이젠 뗄 수 없는 운명이 되어 함께 걸어온 시간만큼 애착도 크다.
바디꿰기는 긴 시간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촘촘한 대나무로 만든 바디살 사이로 하나의 틈에 날실을 두 올씩 끼운다. 바디 위쪽에는 바늘을 하나 꽂아놓고 바디살을 통과한 실을 걸어 둔다. 바디살 사이로 실 꿰는 손놀림에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어스름한 호롱불 밑에서 졸린 눈 비벼가며 갈고닦은 솜씨이다. 실오라기 하나도 놓치지 않는 모습에서 오랜 집념이 묻어난다.
날실이 모두 바디에 꿰어지면 베메기를 한다. 바디 끝에 참톳대를 꽂은 다음 도트마리에 묶어서 날실을 고정한다. 날실을 풀어 끄싱개의 기둥에 돌려 묶은 후, 콩즙에 쌀풀을 섞어 풀칠한다. 풀이 잘 먹도록 손으로 주무르고 골고루 퍼지도록 솔로 되풀이해서 문지른다. 푸석하고 먼지 같은 삶에 찰기를 더하듯 풀칠을 더한다.
베짜기에 앞서 꾸리 감기를 한다. 북에 들어갈 씨실의 실마리가 엉키지 않도록 실을 감는다. 씨실이 될 꾸리는 북에서 막힘없이 잘 풀려나오도록 일정한 모양새로 감겨야 한다. 팔자 모양을 그리며 직녀의 휘어진 손가락이 민첩하게 움직인다. 꾸리를 담은 북이 날실과 날실이 벌어진 사이로 통과하면서 씨실이 만들어진다. 딸까닥 탁 딸까닥 탁, 날실과 씨실이 만나 한 뼘 두 뼘 비단을 짜낸다.
삶이 잘 풀리지는 않았다. 때로는 삶의 한 장면이 먹장구름에 짓눌려 시커멓게 뭉그러졌다. 때로는 새털구름처럼 가벼워 날아 가버릴 것 같기도 했다. 삶의 무게를 베틀 위에 올렸다. 딸까닥 탁 딸까닥 탁, 베틀을 돌리다 보면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움도 실 풀리듯 가벼워졌다.
직녀는 날실과 씨실의 조화를 꿈꾸었다. 잉아실에 걸린 날실과 걸리지 않은 날실이 아래위로 교차했다. 직녀는 쉼 없이 씨실을 가로지르고 바디를 당겨가며 한 올 한 올 짜나갔다. 날실과 씨실이 만나는 동안 고된 시집살이에 날실 한 올 풀어내고, 먼저 떠난 낭군을 원망하며 씨실 한 올 풀어냈다. 그렇게 반복되는 삶 속에서 무거움과 가벼움의 교차점을 찾았다.
“이놈의 북아 말 들어라
딸깍딸깍 빛날 베를 잘도 하네
매끈매끈도 잘 나간다
이 베를 짜서 누구를 주나”
보기만 해도 고운 비단. 손수 짠 명주로 고운 옷 지어, 다음 세상으로 가시는 부모님께 입혀드렸다. 세상의 짐, 가녀린 어깨 위에 다 얹어놓고 훌쩍 떠나가는 미운 낭군도 배웅했다.
직녀가 아로새긴 날들이 무늬 속에 비친다. 가늘고 강인한 날실과 씨실을 닮았다. 누에가 한 올 한 올 실을 뽑아 집을 짓듯, 자신의 진액을 뽑아내어 삶을 지었다. 자신의 삶에서 한 올 한 올 풀어낸 날실과 씨실을 엮어 옷감을 짜고 무늬를 새겼다.
직녀는 꿈꾼다. 딸깍딸깍 삶 속에 맺은 인연, 매끈하고 도톰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