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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Oct 19. 2024

여기, 그 곳

봉황이 단청하다

골짜기를 돌아든다. 산이 산을 겹쳐 안았다. 활엽수가 침엽수를 안고 침엽수가 등성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안았다. 안고 안긴 풍경을 안고 안동 봉황사로 들어선다. 봉과 황이 조화를 이룬 봉황이 살고 있으려나. 용마루 위로 한 쌍의 봉황이 날아오를 것만 같다. 

봉황사는 신라 선덕여왕 13년에 창건되었다. 누가 세웠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극락전, 관음전, 만월대, 범종각, 만세루, 천왕문 등 여러 전각과 딸린 암자까지 갖춘 규모가 꽤 큰 사찰이었다. 하지만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 극락전, 남덕루, 요사채, 산신각이 있다.

봉황사는 임진왜란 당시 소실되었다. 17세기 말경엔 대웅전만 다시 중건하였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당당한 격식을 간직한 조선 후기의 불전으로 보물 제2068호로 지정되었다. 천장의 우물반자에 그려진 오래된 단청과 빗반자의 봉황 그림이 고찰의 품위를 더해준다.

대개 사찰의 대웅전 법당 안에는 용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봉황사는 봉황 그림만 보인다. 구석구석을 살펴도 온통 봉황이다. 여러 사찰을 다녀 보았지만 봉황만 그려진 사찰은 처음이다. 봉황사에는 대웅전 단청에 유래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찰을 창건할 당시였다. 단청을 할 화공이 왔다. 외모가 수려하고 품격이 남달라보였다. 그는 주지스님을 찾아 고아高雅한 모습으로 고개 숙여 청했다.

“스님,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대웅전 단청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해주십시오.”

“어찌 그러시는지요?”

“신성한 기운이 빠져나갈까 염려하는 마음입니다.”

주지스님은 화공의 청을 받아들여 그곳에 기거하는 모든 스님과 보살에게 당부했다.

“대웅전 단청이 끝날 때까지는 아무도 들여다봐서는 안 됩니다. 혹여나 산사를 찾는 이가 있을 경우에도 꼭 그리하여야 합니다.”

주지스님의 당부가 있었지만 스님들은 그곳을 지날 때면 궁금증을 누를 수 없었다. 문살에 바싹 귀를 들이대고 안의 소리를 들으려고 애썼다. 안에선 고요를 감싸 안은 붓질 소리만 공기를 타고 흘렀다. 붓질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하마터면 문을 열뻔한 일도 종종 생겼다. 어느 날엔 문틈을 비집고 보려다가 주지스님께 불려가 꾸중을 듣기도 했다.

“자그마한 호기심이 큰 화를 불러오기도 합니다. 호기심을 다스리는 것 또한 수양입니다. 그것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어찌 도량을 닦는다 할 수 있겠소.”

이후 스님들은 마음을 닦으며 야릇한 호기심을 눌렀다.

며칠에 걸쳐 단청을 그리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화공을 못 보았다. 희한한 일이었다. 공양간에서 일하는 보살이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중얼댔다.

“화공은 밥도 먹지 않고 일을 하나.”

공양간 보살은 괜한 선심이 발동했다. 주섬주섬 먹을 것을 챙겨 대웅전으로 향했다. 주지스님의 당부 말씀은 새까맣게 잊고 보살은 대웅전 문을 빼꼼히 열었다.

“화공님….”

어찌된 일인가. 열심히 단청을 칠하던 화공이 봉황이 되어 훨훨 날아가 버렸다. 법당 앞쪽은 단청을 다 그렸지만 뒤쪽은 아직 미완이었다.

인간의 심리가 얄궂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보지 말라고 하면 더 보고 싶다. 전해 온 이야기 가운데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인간의 얄궂은 호기심으로 인해 대부분 일을 그르치고 만다.

단청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아서 잘 마무리 되었다면 어떤 이야기가 전해왔을지 궁금하다. 화공은 봉황이었을까. 단청을 끝냈다면 봉황이었던 화공이 사람이 되었을까. 전설 속으로 들어가 알아보고 싶다.

봉황사 경내를 둘러보는데 보살님이 부른다. 점심공양하고 가라고 몇 번을 이른다. 때마침 출출한 차에 공양간으로 들어가 맛있게 비빈 비빔밥 한 그릇 비웠다. 주지스님이 상을 물리며 그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는데 봉지 하나를 쥐어준다. 몇 쪽의 떡이 들어있다.

‘아, 이것이 봉황사의 인심이었구나.’

오래전 단청 화공을 부른 공양간 보살님의 마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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