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으, 아이쿠야.”
매일 아침 잠을 깨는 소리다.
아! 뻐근한 몸이 아침이면 물먹은 스펀지처럼 무겁다. 언제부턴가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짐을 그저 반 백 년을 써온 몸이 이젠 내구성을 다했다는 생각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저기 쑤시고, 심지어는 팔을 들기도 어려워하며 좀비처럼 잠자리에 일어나면서 이게 병인가 생각됐다.
틈틈이 운동을 해오며 건강하다고 자부했는데, 어느 순간 전형적인 아저씨 몸매를 장기간 유지하는 모습에 피식하며 웃음이 나온다. 수영, 자전거, 등산, 축구, 배드민턴 등 50대 치고는 꽤 많은 운동을 했다. 그런데 불어난 체중 때문인지 무릎, 어깨, 팔 등 자꾸 쑤신다. 앉았다 일어날 때면 ‘아이고’ 소리가 나오는 것이 체면을 구기기도 한다.
노동시간 단축이 국가 정책으로 제도화 되면서 삶에 변화가 일어났다. 직장생활 27년, 그동안 연차 휴가를 낸 날을 가만히 꼽아보니 20일 남짓 되는 것 같다. 1년에 겨우 하루 정도 연차를 사용한 것이다. 입사와 거의 동시에 IMF 경제 위기로 나라가 부도나는 판에 휴가는 무슨 휴가. 그저 월급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었다. 그런 직장생활이 당연하다고 여겼고, 야근은 물론 주말 근무도 감내해야 할 덕목처럼 여겨졌다. 그러던 중 주 5일 근무, 그리고 52시간제 등이 한결 노동의 강도를 가볍게 했다.
이제 직장생활 10년이면 연차가 20일이 넘고, 그것을 당연히 다 사용해야 한다. 사용하지 않으면 수당이 지급되어야 한다. 과거 IMF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생활한 내 생각으로 보면 직장 낙원이다. 꿈의 직장이다. 이것에 더해 9시 출근 6시 퇴근이 정착되었다. 그러나 나에게 출근시간은 아침 7시 30분이다. 그 시간을 넘어 출근하면 사단이 난다는 생각이 늘 자리했고, 또 일찍 출근하는 것이 정보를 독식한다는 이상한 논리에 빠져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직원들의 컴퓨터는 9시에 켜지고 6시면 꺼진다. 완전히 대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조금씩 본전 생각이 났다.
처음에는 직원들이 6시에 퇴근하면, 멍하니 앉아 ‘뭐 할 게 없나?’ 하다가 이내 전화를 돌리고, 메신저를 주고받다가 술 약속을 잡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니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있는 삶, 그 시간이 주어졌는데 할 일이 없다는 것은 시간관리를 누구보다 잘한다고 자부하던 나에게 스스로 용납되지 않는 삶이었다. 그날도 그런 생각을 하며, 막히는 남부순환로를 운전하고 있었다. 저녁 8시 이후에 퇴근하던 내가 6시 30분쯤 나와 퇴근을 하니, 길은 매우 혼잡했고, 특히 시흥IC 근처부터는 그야말로 거북이 걸음이었다. 막히는 차안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문득 차창 밖으로 하늘을 본다고 했는데, 옆 건물에 ‘뉴욕 휘트니스 그룹PT(personal training) 1회 1만원’이라는 광고 문구가 들어왔다. 그것을 본 순간 무엇에 홀린 듯 냅다 핸들을 돌려 건물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드디어 이튼날 저녁 첫 PT를 시작했다. “오늘은 등 운동 하겠습니다.” “하나, 둘,… 자 마지막.” 마지막은 왜 그리 힘이 드는 것인지. 그렇게 안 쓰던 근육을 1시간 동안 사용하고 나니 등줄기에 고무줄이라도 들어간 것처럼 긴장된다. 그러면서도 나를 지도하는 트레이너의 몸을 힐끔거리며 쳐다본다. 내 아들 또래의 녀석이 아주 탄탄해 보인다. “아주 잘하십니다. 세 개만 더.”하며 약주고 다시 병(病) 준다. 마음속에 전투력이 상승해야 하는데, 녀석의 몸을 보면 쪼그라든다.
일을 내고 싶다. 뭔가 일을 내는 것은, 몸이 아프지 않게 하는 것, 몸무게를 5kg 빼고 체지방을 21% 이하로 낮추는 것, 다섯 시간 정도의 강의가 힘들지 않게 하는 것, 허리 32인치로 유지하는 것 등이다. 이제 이틀 했다. 그런데 쳐졌던 몸이 바짝 선다는 것은 근육에 탄력이 생김이다. 그리고 등 근육이 아프다는 것은 어제 운동을 열심히 했다는 증거다. 몸은 꼰대지만 마음은 아니라고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운동 열심히 해서 ‘꼰대=아저씨’ 몸을 20대의 짱짱한 몸으로 바꾼다면 꼰대 소리는 조금 천천히 듣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6개월 PT와 헬스를 등록한 나는 저녁에 할 일이 생겼다. 퇴근길 아주 막히는 곳에서 우직한 돌파보다는 90분 운동 후 한가해진 퇴근길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정말 탁월한 시간관리다. 시간도 잡고, 건강도 잡고, 다만 7시 PT를 맞추려면 부단히 서둘러야 해서 칼퇴근을 해야 했다. 그렇게 일주일 2회 칼퇴를 실천하면서 한 달이 지날 무렵, 주 40시간 근무는 나라가 정한 원칙이니 무조건 지키며 업무효율화를 가져오라는 지시가 하달되었다. 나에게 뭐 달라지는 건 없어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나보다 더 강한 꼰대의 등장, 변화에 대한 마음 속 거부감을 보이는 꼰대가 있음을 간과했다.
그는 능력이 탁월하여 나보다도 두 계단 위 상사다. 젊어서부터 불철주야 일을 하며, 능력을 인정받아 중요한 보직에 있다. 그런 그와 주 40시간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는 요즘 저녁에 직원들 가고 앉아 있다 보니 자꾸 술 생각만 나고 오히려 나태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고민하다 퇴근길에서 가장 막히는 곳에 헬스를 끊어놓고 다니고 있어요. 그렇게 한 달 정도 하니 술도 덜 먹고, 뱃살도 1인치나 줄었습니다.”고 했다. 그런데 아뿔싸! 주 40시간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며, 원칙에 예외를 적용하는 것은 태도 문제라고 꼬집어 말한 상사였는데. 그가 나에게 “이 이사, 그렇게 너무 즐기면 안 돼요. 적당히 하세요. 6시 30분 전에 나가는 게 좋아 보이지 않네요.”라고 했다.
이 심리는 뭘까? 내가 느끼는 본전 생각나는 것일까? 나는 7시 30분에 출근했다. 그리고 저녁 6시 30분 전에 나가는 것은 일주일에 두 번이다. 그게 왜 너무 즐기는 것일까? 내가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일에 생산성을 높이면 그것이 조직에도 좋은 일인데.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그 강한 꼰대는 삶의 선택에서 자유롭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도 비슷하고 입사도 비슷하고, 둘 다 임원인데, 그는 아직도 업무가 곧 삶인 사람이었다. 그에게 나는 자신이 선택하지 못하는 삶을 누리는 시기의 대상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도 나는 6시 10분에 퇴근을 했다. 그리고 약간은 공격적인 운전을 해서 뉴욕휘트니스에 6시 50분에 도착해 운동복을 갈아입고, 7시부터 트레이너의 구령에 맞춰 얼차려를 받았다. “하나 더, 하나 더.”를 외치는 20대 트레이너에게 ‘나도 예전에는 너 같았어’라고 하고 싶은데, 그러기엔 녀석 몸이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