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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디자이너 Apr 06. 2024

Are you really a professor?

지금 알아가는 중입니다.

정말 교수 맞나요?


2021년 늦여름이었다. 학교에서 교직원 아이디를 만들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회사일 때문에 계속 미루고 미루다 개강전주가 돼서 겨우 시간을 내서 학교 캠퍼스로 향했다. 내가 강의를 하게 된 학교는 맨해튼 미드타운에 위치한 뉴욕 주립 디자인 학교인 Fahsion Institute of Technology라는 곳이다. 보통 줄여서 FIT(에프아이티)라고 말하고 패션디자인으로 특히 유명해서 한국 유학생들도 정말 많은 곳이다. 


나에게 FIT는 아주 특별한 곳이다. 꿈을 찾아 미국에 왔지만 돈이 없어 남들은 열 군데 이상의 학교를 지원할 때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곳은 딱 한 곳뿐이었다. 사립 디자인 학교의 학비는 살벌한 수준이었지만, 그에 비해 FIT는 주립대학교였기에 등록금이 훨씬 저렴했다. 그렇게 나를 받아준 고마운 이곳에서 학부로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했다. 한국에서 이미 4년제를 졸업했기에 2년의 디자인 학부 포트폴리오로도 대학원을 지원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FIT에서 Experience and Exhibition Design(경험 전시 디자인)이라는 다소 생소한 전공으로 대학원 과정을 수료했다.


학생으로만 오던 이곳을 가르치는 입장이 돼서 오다니, 참 기분이 묘했다. 과제물을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던 캠퍼스를 걸으며 옛날 생각에 살짝 감수성이 짙어지려는 순간, 저 멀리 끝을 모르는 줄이 보였다. 


"설마 저게 아이디 만드는 줄인가?"


내 예상이 맞았다. 개강을 앞두고 나처럼 끝까지 미루던 학생들이 모두 몰리면서 줄은 학교 건물 밖을 한참을 돌아서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었기에 줄이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이길 바라며 한참을 돌아서 줄의 맨 끝에 섰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이 넘어가고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역시 나의 사랑스러운 모교답다. 아이디에 들어갈 사진을 찍는 곳에 웬 플라스틱 천 같은 걸로 뒷배경을 해놓고 하나, 둘, 셋 이런 친절한 안내도 없이 쾅하고 사진을 찍어버린다. 뭐, 아이디에 있는 사진 누가 신경이나 쓰겠나 하고 서류 작업을 하는 직원에게 걸어갔다.


"이번에 강의 처음 시작해서 교직원 아이디를 만들러 왔는데요."


내 신분증을 건네주고 이것저것 휴대폰을 확인하고 있는데, 한참을 말이 없어 쳐다보니 동료 직원을 불러서 둘이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러더니 대뜸 "당신 여기 학생이잖아요?" 이렇게 나를 쏘아보면서 말한다. 불퉁명한 목소리에 기분은 나빴지만, 수백 명의 학생들과 하루종일 씨름하느라 힘들어서 그렇겠지 하며 나는 최대한 나이스한 톤으로 대답했다. "여기 몇 년 전에 졸업했는데, 이번에 교수로 강의하게 돼서 교직원 아이디가 필요해요."


그랬더니,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나를 한참 쳐다보더니 시스템에 정보가 없기 때문에 아이디를 만들어 줄 수 없다고 했다. 이미 두 시간 넘게 기다렸는데 그냥 갈 수 없었다. 결국 이런저런 실랑이 끝에 학교에서 보내준 공식 임명서 같은 서류를 보여주니 그제야 시스템이 뭔가 잘못됐다며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그러더니 웃으면서 농담이라고 던진 말이 "You don't look like a professor. Haha" 이것이었다.


지금이었다면 이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말인가 하고, "What do you mean?"이라며 바로 따져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나 스스로도 내가 여기 가르치는 사람으로 왔음을 실감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날 내 옷 차림새도 오해를 할 수도 있었을 듯하다.


아직 날씨가 더워서 재택근무가 끝나자마자 그냥 민소매 원피스에 조리를 신고 갔더니 더 어리게 보였던 것 같다. 정말 미국인들은 동양인의 나이를 잘 짐작하지 못한다. 지금도 화장기 없는 얼굴에 후드티 입고 나가면 곧잘 나를 대학생 정도의 나이로 보곤 한다. 거기에 나는 덩치까지 작은 편이라 웬만큼 '어른'처럼 차려입고 나가지 않으면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아이디를 받은 뒤 한참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다. 교직원은 아이디를 만들어주는 사무실이 따로 있기 때문에 학생들과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지금도 크게 나아지진 않았지만 나의 시작은 참으로 서툴고 어색했다. 우리가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들도 모두 이런 '시작점'이 있었겠지? 모든 시작에서는 다들 나처럼 넘어지고 실수하며 버텨냈겠지? 문득 그들의 화려한 성공담이 아닌 이런 사람냄새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알아가는 중입니다.


 요즘 서점에 가면 수많은 사람들의 성공담이 넘쳐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성공담보다, 삐그덕거리며 불완전하지만 자신의 길을 헤쳐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성공담을 쓰신 분들의 삶도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왠지 그들은 인생의 여정에서 나보다 너무 멀리서 걸어가는 느낌이 든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영감을 받지만, 나와 비슷한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잘해보려 애쓰며 사는 모습이 더 가슴 깊이 와닿는다.


나의 이야기도 그런 이야기이다. 디자이너라는 하나의 직업으로 살다,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나의 또 다른 길에 관한 이야기다. 20대엔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했고, 30대엔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한 답을 한참 동안 찾지 못해 헤매었다.


나는 그 답을 나의 또 다른 길,

'가르치는 사람으로 살기'에서 찾았다.


아니, 여전히 알아가는 중이기에

답을 찾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의 대답은 여전히 완성형은 아니지만, 그래도 답을 찾아가는 나의 여정을 통해 이 글을 읽는 그 누군가도 자신의 인생에 작은 힌트를 얻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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