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임신했을 때 신도시에 아파트 분양을 받았다. 그리고 둘째 아이의 임신 때, 그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었다. 생전 처음 사는 동네에서 나는 지독히 외로웠다.
다행히도 같은 아파트에 사는 동네 친구가 생겼다. 우린 동갑내기에 웃음 코드가 잘 맞고,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매일 만나서 놀았다. 그 친구의 둘째 출산과 나의 둘째 출산은 비슷한 시기였다. 신생아를 키우며 느끼는 외로움과 힘듦을 같이 나눌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직장에 복직하게 되었고, 그 친구는 셋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아들 셋 엄마의 위엄이란. 그러면서도 항상 집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내게는 신 같은 존재다.(친구는 스트레스받을 때 집 정리를 하면, 스트레스가 풀린단다.) 매일 수다 떨고, 커피 마시며 놀던 내가 책을 가까이한 시기는 긴 육아휴직 후 복직을 앞두고였다. 육아에 지친 내게 '나만의 시간'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앞으로 무엇을 향해 달려야 할지 몰랐기에 독서코칭을 신청하며 책 읽기에 몰입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 친구의 셋째가 태어났고, 매일같이 만나던 우리는 가끔 전화로 안부를 묻곤 했다.
"야~ 세상에서 제일 바쁘게 사는 양지연이~" 라며 나를 놀리기도 하고, "책도 읽냐?"라며 비웃기도 했지만, 나의 푼수성을 좋아해 주는 내 친구의 말이 전혀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그저 같이 웃으며 책이 좋아진 나 자신에 스스로 놀랄 뿐이었다.
어느 날 친구네 집에 놀러 가게 되었다. 귀염둥이 셋째 모습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더라. 아들 셋을 낳은 내 친구는 딸 둘을 키우는 나를 무척 부러워했다. 일하랴 애들 키우랴 수고가 많다고 내게 말해주었지만, 내 눈에는 혼자 아들 셋을 데리고 제주도로 2주 살이를 다녀온 내 친구가 더 대단해 보이더라.
"야 내가 웃긴 얘기 해줄까?"
"뭔데뭔데?"
"글쎄, 내가 너 인스타 피드 보고 감동받아서 책 좀 읽어볼까 하고 쿠X으로 책을 주문했단 말이지~"
"와 대박! 잘했다 잘했어!"
"야 끝까지 들어봐..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책에 손도 못 대겠더라. 애 셋 돌보며 무슨 책이냐. 그래서 반품했다 ㅋㅋ"
"와 그래도 대단한데? 내 인스타를 보고 책이 읽고 싶어 졌어?"
책 읽는다고 그렇게 놀리더니... 친구는 나에게 책이 좋은 건 알지만, 아이 셋을 돌보며 책 읽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SNS에 올려주는 책의 구절들만 찬찬히 읽어봐도 너무 도움이 된다는 거다.
"야 내가 너 인스타 꼼꼼하게 볼 테니까, 이렇게 좋은 책 있으면 간간히 올려줘라~ 내가 잘 보고 있다는 거 꼭 기억해라~"
친구의 말에 뭉클해진다. 누군가가 내 기록들을 보며 힘을 얻고 있다고 해주니 참 고맙더라.
하루에 단 5분도 나 혼자의 시간이 없던 때가 있었다. 아이 둘을 키우면 당연히 그런 거라 생각했다. 항상 마음이 평온한 친구에게 이렇게 물었었다.
"너는 어떻게 스트레스 풀어?"
"음, 나는 책 읽으면 스트레스가 풀려."
"응???"
그때 나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바쁘고 힘들어 죽겠는데 그 와중에 책을 읽는 다고? 치맥도 아니고, 슬픈 영화보기도 아니고, 그저 책을 읽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그 친구 또한 육아맘으로 내 기준으로 봤을 때 예민한 아들을 키우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책 읽으며 스트레스를 푼다니. 정말 이해가 안 되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목표를 열심히 달성하며 살았다. 명문고에 진학했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했다.임용고시를 합격했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서울에 있는 한 학교에 발령이 난 후 결혼했고, 두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둘째 아이를 돌 무렵까지 키우고 나니, '나는 이제 무엇을 향해 열심히 살아야 할까?'라는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하겠더라.
30대 중반이 되어서 '내 꿈은 뭐였지'라고스스로에게 묻는데,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도 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친구의 권유로 독서코칭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1년에 한 권 읽을까 말까 했던 내가, 한주에 2~3권의 책을 읽어야만 했다. 두 아이를 돌보면서 말이다.
몸에 밴 성실함을 토대로 죽기 살기로 책을 읽었다. 즐거워서 읽는 게 아니라, 비싼 돈 내고 신청한 독서코칭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루에 단5분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어려웠던 나는 일찍 일어나기를 선택했다.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독서코칭의 미션을 수행했다. 악착같이 책을 읽던 나는 어느 순간 "책 읽으면 스트레스가 풀려~"라는 친구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책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쉼이 필요할 때마다 책을 꺼내 읽는 나를 발견하였다.
책이란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내 느낌을 적을 뿐이다.
나와 다른 관점의 사람들도
한 번쯤 읽으면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되는 작품들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우리는 누구나
책으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나를 깨우는 책 읽기 마음을 훔치는 글쓰기> p255
책이란 누가 읽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독서모임을 통해 똑같은 책을 읽더라도 개개인마다 마음에 드는 문구가 다름을 알게 되었다. 내가 좋다고 메모해둔 책 속 문구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책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나와 다른 관점의 사람들도 한 번쯤 책을 읽으면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음을 알려주고 싶어서이다. 무엇보다 나처럼 똥 싸는 시간 조차 아이와 함께 화장실에 들어가야 하는 육아맘들에게 최고의 친구를 선물해주고 싶다. 책은 때로는 내게 위안을, 기쁨을, 삶의진리를 선물해주는 친구다.
아들 셋 동네 친구의 말에 용기를 얻어 이렇게 나의 기록이 시작된다.
그리고 푸념처럼 말했던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라 이 책의 제목을 장식하게 되었다.
"야 애 셋 키우면서 내가 무슨 책이냐.. 팔자 좋게 책 읽을 시간은 없다. (내 SNS를 가리키며) 이거라도 읽어야지... 꽤나 도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