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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노는양슨생 Apr 11. 2021

나는 몇 점짜리 엄마인가

<엄마 심리 수업> 책으로 배우는 엄마 냄새

 아이에게 언제나 미안한 엄마다.

 전업맘일 때도 아이에게 미안할 때가 많았는데 워킹맘이 되니 미안한 순간이 더 많아졌다.


 코로나로 인해 가정학습을 해야 하는데, 홀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다. 아이가 열이 난다는 전화를 받으면, 아이가 걱정되는 마음보다 내일 어린이집을 못 가게 될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다. 늦게까지 어린이집에 남아있는 아이를 하원 해서 올 때, 아이가 더 칭얼거리면 '내가 너무 늦게 가서 그런가' 하며 내 자신을 책망했다.




 퇴근이 늦어진 날. 부랴부랴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엄마 야간 연장반 신청해줘~"

 '응? 야간 연장반은 또 무엇인가..'


 6시가 넘어 도착한 어린이집에는 우리 아이와 더 늦게 집에 가는 한 언니만 남아있었다. 그 언니는 야간 연장반을 신청해서 매일 6시에 저녁식사를 어린이집에서 먹고, 나보다 더 퇴근이 늦은 엄마가 데리러 오면 집에 간다.

 나는 퇴근이 이른 편인 직장임에도 불구하고, 간혹 6시가 넘어 도착하는데 그때마다 우리 아이는 저녁밥을 먹는 그 언니를 하염없이 부러워한다. 배고픈 내 아이를 위해 선생님들은 우유와 간식을 챙겨주셨다. 아이는 집에 도착 하자 마자


"오늘 OO이 언니가 짜장밥을 먹는데 너무 맛있어 보였어~ 그니깐 나도 짜장밥 해줘~"


 배고팠을 아이에게, 엄마를 하루 종일 기다렸을 아이에게. 배고픔을 참고, 먹고 싶은 걸 꾹 참은 내 아이 생각에 괜스레 눈물이 났다.




 "엄마~ ooo태권도 보내줘~"

 "응? 거기 몇 시에 가는 건데?"


 "OO 이는 3시에 관장님이 데리러 와"

 "그럼 4시쯤 끝날 텐데 엄마는 4시에는 못 데리러 와"


 "흥.. 엄마도 일 끊어!"


 친구들과 태권도 학원에 다니고 싶은 내 아이.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데리러 올 수 없는 나는 아이가 원하는 학원에 보내줄 수가 없다. 그런 내가 야속하기만 한지,  나보고 일을 끊으라는 아이. (일이 뭐 학원처럼 쉽게 끊을 수 있는 건가. 참나)


일을 끊는 게(?)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 못해 속상하다.

 일하는 게 가끔은 죄인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워킹맘의 마음속은 언제나 미안함으로 가득 찬다.


 그런데 꼭 워킹맘이라고 해서 아이에게 미안한 건 아니다.

 언제나 아이가 아프면 내 마음은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으로 똘똘 뭉친다.


 '아이 찬바람 쐬우지 말걸.'

 '설거지 좀 있다 하고, 아이 보고 있을걸'.


 저녁 식사 후, 부랴부랴 설거지를 하던 중 둘째 아이가 식탁의자에서 떨어졌다. 아이들 재우고해도 됐는데.. 시간을 잠깐만 앞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목청이 터져라 우는 아이를 부둥켜안고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를 주문처럼 말했다.

목에 난 상처를 보고있자니, 엄마는 마음이 찢어진다


 아이가 다칠 때마다, 아플 때마다 나를 후벼 파는 말들도 떠오른다.


 "엄마가 집에서 애도 잘 못 보고? 어?"

 "애 이렇게 감기 걸리도록 뭐한 거야?"


 자기 아이 아프길 또는 다치길 바라는 부모가 어디있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시아버지)은 저런 말을 내게 쏟아 낸다. 사랑하는 손녀가 아파서 속상한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내겐 야속하기 짝이 없다.


 그러다 책 속에서 만난 이 문구는 나의 죄책감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준다.



직장 맘이여,

아이를 하루 종일 돌보지 못하는 마음이 얼마나 불편한가?

아이에게 문제라도 생기면 얼마나 괴로운가?

하지만 굳건해지자.

죄책감을 갖지 말자.


아이의 문제는

엄마가 직장에 다녀서 생긴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수만 가지 요소가 결합된 것뿐이다.

이런저런 결정론에 흔들리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힘차게 가라.


<엄마 심리 수업> 책 p211


 무소의 뿔처럼 힘차게 가라는 말이 왜 이렇게 힘이 되는지.

 이 책에서 마구 힘이 되는 문구를 또 발견했다.


 '엄마'라는 단어 속에 중요한 진실이 숨어 있다. 모든 엄마는 '완전한 엄마'라는 것이다. '완벽한 엄마'는 아니지만 내 아이에게는 '완전한 엄마'다. '인간으로서 나는 부족하다. 하지만 엄마로서 나는 완전하다.' 이게 정답이다.


 누가 당신을 못난 엄마라고 했나. 당신 자신이다. 내가 나를 못난 엄마로 만들고, 그런 냄새를 풍기고, 내 아이를 못난 아이로 만들고 있다. 지금의 나, 그대로 괜찮은 엄마다. 그저 살아 있기만 하면 100점 엄마다. 살아 있는 엄마는 모두 100점 엄마다. 언제든지 내 아이를 사랑할 수 있으니까. 아이와 함께 환하게 웃을 수 있으니까. 지금 당장 안아줄 수 있으니까. 아이가 지금이라도 "엄마!"하고 부를 수 있게 해 주니까. 아이가 언제든 내 품에 안길 수 있게 해주는 나는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내 아이의 최고 엄마다!

<엄마 심리 수업> 책 p183


 세상에 완벽한 엄마가 있을까?

나는 나의 부모님을 원망했었다. 나를 좀 더 사랑해주지, 정보력을 발휘해서 대학 갈 때 좀 도와주지, 돈 많이 벌어서 경제적인 지원 좀 해주지...

 하지만 부모가 되어 돌이켜보니 나의 부모님은 최선을 다해 나에게 사랑을 표현해주셨다. 즉, 나의 부모님도 완전한 부모였다. '완벽한'부모 말고, '완전한'부모.


  나 또한 아이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 가득이다. 그런데 살아있기만 하면 100점 엄마라니! 위안이 된다. 나는 살아 있는 100점 엄마니 너무 자책하지 않기로 했다. 실제로 돌아가신 아빠를 떠올리니 살아계시기만 해도 너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땐 왜 몰랐을까.




 나는 <엄마 심리 수업> 책을 혼자서도 읽고, 맘이 맞는 엄마들과도 함께 읽었다. 그때 우리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단어는 '엄마 냄새'였다.



 엄마는 냄새다. 엄마라는 품에서 살아온 아이는 당연히 엄마 냄새가 몸에 밴다. 다른 냄새와는 달리 엄마 냄새는 평생 몸에 붙어 있다. 어딜 가나 엄마 냄새를 풍기면서 살아간다. 돼지갈비를 먹고 나오면 사람들이 금방 알듯이 엄마 냄새가 몸에 밴 아이도 사람들이 금방 알아차린다.

 여기서 엄마 냄새란 '엄마의 마음'을 의미한다.

 받는 것 없이 예쁜 애가 있고 주는 것 없이 미운 애가 있다. 바로 엄마 냄새 때문이다. 괜히 예쁜 애는 어려서 예쁨을 많이 받아서 그렇다. 예쁨 받은 냄새가 몸에 배서 사람들은 마법에 걸린 것처럼 그 아이를 예뻐하게 된다. 왠지 이상하게 마음에 안 드는 애는 부모가 아이에게 준 '마음에 안 드는 냄새'가 몸에 배서 그렇다. 끌림의 법칙이다. 사랑받는 아이는 사랑을 끌고 미움받은 아이는 미움을 끌어당긴다. 엄마 냄새 법칙이 우주의 법칙이다.

<엄마 심리 수업> 책 p21


 '우리 아이에게는 어떤 엄마 냄새가 날까?'

 둘째를 생각하니 사랑 가득한 냄새가 날 것 같은 확신이 드는데, 첫째를 생각하니 덜컥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사람들 눈치를 보며 착해야 한다는, 양보해야 한다는 강박의 냄새가 나는 건 아닌지..


 가끔 밖에서 여기저기 치이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 참 맘이 아프다. 그런 날은 '부모인 내가  아이를 더 사랑해줘야 밖에서도 사랑받지'라는 맘으로 더 많이 사랑해준다. 하지만 며칠 뒤 나만의 잣대로 아이에게 '바른 아이'가 되길 바라는 엄마 냄새를 주는 건 아닌지 또다시 반성하게 된다. 사랑 폴폴 나는 엄마 냄새를 엄마의 마음으로 정성 가득하게 표현해줘야겠다.



워킹맘이라서, 요리를 못하는 엄마라서, 화를 많이 내는 엄마여서, 내 일이 너무 소중한 엄마여서.

미안한 마음 가득하지만 난 살아있는 100점 엄마니까.


이제부터 사랑 가득한 엄마 냄새로 가득 찰 수 있게, 더 많이 사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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