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참으로 좋은 1월의 호주. 홍삼파 친구들에겐 덥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사시나무파인 나에겐 딱 좋은 날씨이다. 조금 덥지만 이런 날에는 해변 나가서 일광욕하기 딱이기 때문이다.
이번 멜버른 비행은 체류시간이 길어서 사우쓰 멜버른 쪽을 한참을 돌아다녔다. 세인트 킬다 비치까지 다녀왔는데 걷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어딜 들어가도 맛집이며 분위기 좋은 카페가 많다 보니 호주 오면 최대한 많이 걸으려고 한다.
호주는 스몰톡 (small tall)이 발달한 곳이다.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끼리 서로 거리낌 없이 대화하고 자기에 대해서 아무 의심 없이 얘기하며 궁금한 건 물어보기도 한다. 거기서 연락처를 교환하기도 하지만 보통 스몰톡만 하고 각자 갈길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스몰톡 문화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나는 딱히 거리낌이 없는 편이다. 먼저 대화를 걸진 않지만 상대가 먼저 얘길 하면 잘 들어주고 내 얘기도 곧잘 한다.
그런데 이 스몰톡이라는 게 생활이 되다 보면 약간 귀찮고 버거워질 수가 있는데 그러다 보니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게 부담스러워질 수가 있다.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말해야 하고 날씨 얘기 해야 하고 무슨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래서 한국보다 스타벅스 같은 전국 체인점 카페를 찾는 게 힘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한국이랑 다르게 호주에서는 개인 카페 바리스타들의 친화력이 엄청 좋다. 이번에 다녀온 브런치 카페에서 나한테도
”너 맨체스터 팬이니? (내 결제카드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스폰해 주는 은행) 너 처음 보는데 여기 사니? 우유는 로우팻 (low fat)으로 줄까 풀 팻(full fat)으로 줄까? “
그러다 보니 이런 걸 하나하나 다 얘기 안 해도 되는 ”나의 취향을 잘 알고 있는 단골집“ 에 자주 가게 될 수밖에 없다. 설탕 종류만 해도 화이트 슈가, 브라운 슈가, 스테비아가 있고 우유에도 풀 팻, 로우 팻, 스킴, 아몬드, 두유 등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보니 각자 가진 취향이 너무나도 다르다. 내가 호주 (특히 시드니) 비행을 할 때 너무 힘들었던 점 중 하나가 개개인이 바라는 게 너무 다르고 취향이 다양하다는 점이었다. 특히 이코노미클래스에서는 제공되는 서비스가 제한적인데 두유 없냐, 꿀 없냐, 채식 옵션 없냐 등등 요구 사항이 다양하고 많아서 손님들을 상대하기 너무 힘들다고만 느껴졌다.
반면에 한국은 다르다. 바리스타가 아는 척하면 그 카페는 더 이상 안 간다고 하는 얘기를 주변에서 종종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자기를 아는 척해주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은 모르는 사람에게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노출되는 것을 꺼려하는 편이다. 일본이랑 굉장히 비슷하다고 생각이 드는데 예전에 일본인 친구한테 일본은 북 커버 (책 표지를 감싸는 커버)도 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유인즉슨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안에서 책을 읽을 때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내가 어떤 책을 읽는지 알려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극단적이긴 하지만 이런 면에서 한국은 호주나 미국보다는 일본과 훨씬 더 비슷하다고 생각이 든다.
취향을 알려주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는 건 모르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호주가 한국보다 살기 좋다는 말이 나온 걸 지도 모르겠다. 한국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취향이 타인에게 쉽게 판단되는 사회이다 보니 이런 문화가 생긴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취향에 대해서 조금 더 존중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범법 행위가 아닌 이상 그 사람이 그렇게 살겠다는 데 타인이 함부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또 멜버른에서 문화 차이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아부다비 돌아가는 비행에서 손님들이 아무리 요구를 많이 해도 친절하게 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비행기 타면 이 생각들은 쉽게 까먹겠지만.. 멜버른 레이오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