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냄새의 역사

구두를 신는 사람은 다 그렇습니까? 위로가 필요합니다.

by 지니

이런 이야길 내가 누구한테 하려나 싶었는데 여기에 비밀스럽게 털어놓는다.

사실은 승무원들은, 음 아니 나는,

발 냄새가 이렇게 심하진 않았는데 승무원이 되면서 발을 잃었다.


나의 발 냄새를 정당화기 위한 변명처럼 들릴 수 있으나

이것은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에서 나온 결론이다.


설명(변명)을 한번 해 보면 비행시간이 가장 긴

인천-파리는 순수하게 비행시간만 14시간이다.


그러니깐 적어도 14시간을 신고 있는 것이고

또 구두를 집에서부터 호텔에 도착하기까지 신고 있으니

출퇴근시간 5시간 정도도 포함해야 한다.


또 비행기에게 정시성이란 지키기가 어려운 약속이다.

때문에 예측불가능한 항공기지연시간도 추가하면

조금 과장하면 20시간 이상을 구두를 신고 있는 격이다.


2박 4일 짐을 잔뜩 챙긴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왔다 갔다 하면

발에서 땀이 안 날 수 가없고

기내화는 메쉬재질이 아니라 통풍이란 전혀 없다. -_-

그래서 비행 끝나면 나는 발을 잃었다.



난 리무진을 타고 인천공항으로 출퇴근을 한다.

리무진 타는 곳과 집이 가깝지 않아서

가족들이 시간을 내서 번갈아가며 데리러 와주곤 했고

대개 엄마가 자주 왔다.


나는 리무진에서 좌석 1번, 운전사님 바로 뒷 좌석을 선호해서

자주 맨 앞에 앉아서 온다.


기사님 바로 뒤에는 정성스럽게 손수 코팅해서 붙여 놓으신 A4용지에

강단있는 굵은 고딕체로 '신발을 벗지 마세요’라고 쓰여있었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빛에 반사 돼 번쩍번쩍 빛나는 A4용지에

저 굵은 고딕체는 마치 십계명처럼 성스럽게 느껴졌고

절대 신발을 벗을 수가 없었다. 단 0.005센치도 허용하지 못했다.



크흠!

(아! 절대 나 때문에 붙인 거 아니다!)


그래서 난 리무진 안에서까지 내 발을 꽁꽁 숨기고 있다가

나를 데리러 온 엄마 차에서 드디어

내 발을 슬며시 꺼내 고생한 내 발들에게 숨통을 열어줬다.

그랬더니 엄마가 말했다.


"어머 야 이게 무슨 냄새야? 진짜 심각하다

야, 너는 남자친구 앞에서 신발 벗으면 다 도망가겠다. 명심해"


그래서 나만 고민인가? 해서 어느 날 크루들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다 나와 피차일반이었다.

어떤 크루는 비행 끝나고 비눗물로 발을 5분 정도 담가놓는다고 본인의 팁을 알려줬다.

뭐 사실 다 그렇다,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근데 아주 재미있는 건 이 냄새는 스트레스가 높았을 때 또 차이 가있다.

여기서 인체의 신비로움을 알게 되었다.

막내(인턴) 때는 발 냄새가 너무 심해서 정말 비누에 때타월로 몇 번을 씻고 해야 사라졌는데

이제는 사실 발냄새가 잘 안 난다. 진짜다! !



리무진에 내려 엄마 차를 타면 이제는 당당히 내 발을 꺼내놓고 숨 쉬게 해 준다.

그럼 엄마가 그런다.


"오늘 비행은 좀 편했나 보네?"

"응 오늘은 뭐 조용히 왔지 특별한 일 없었지 뭐"


그렇게 나의 발냄새의 역사다.






ps. 3화[승객이 건넨 6만원 마카롱], 고백인건가?

따듯한 비행일화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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