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자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복잡하다.
괜찮은 사람 있다며 만나보라는 권유, 서로 적당한 조건이니 만나 보자는 고백공격, 일 년 넘게 가입 권유 전화가 오는 근성 있는 결혼정보회사까지. 결혼하지 하지 않는 내가 이상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울타리가 있으면 좋겠단 마음이 드는 갱년기 같은 마음.
3년 전 업무적으로 알게 된 분과 연락이 끊길 듯 끊이지 않았다. 명절마다 형식적인 인사를 나누곤 했는데, 이 남자 정말 특이한 게 자꾸 본인이 근무하는 곳으로 놀러 오라고 하는 거다. 밥이 맛있다고. 그러다 작년쯤 업무상 그곳을 들릴 일이 있어 들렀다 연락을 해봤다. 정말 구내식당에서 밥을 사줬는데, 이게 퍽 진솔해 보이고도 재밌었다. 그러곤 데려간 카페는 스콘이 꽤 맛있었는데, 돌아가는 날 데려다주는 길에서 그 남자가 한 말이 꽤 충격적이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게 중에 꽤 사회성이 있는 편이라 사회생활에 큰 문제는 없다는 말이었다. 나는 이 남자의 당당함이 멋있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 곧장 이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좀 더 알아가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숨기면 단점이 되었을 수도 있지만 당당하게 드러내는 그 용기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는 당황해하더니 곧장 “남자로 말이죠?”라고 물어 “네.”라고 답하니 웃던 그는 생각보다 답답하게 굴었다. 자꾸 나의 말에 다른 체를 하고,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를 더 알아보길 그만하기로 했다. 이내 그는 ‘개인사정’으로 나에게 집중하지 못함에 미안해하고 했다. 이렇게 끝난 줄 알았던 우리의 미지근했던 관계는 그의 안부연락의 연속으로 이어졌다. 나는 지방으로 발령이 나 와있는데, 자꾸 서울 올 일 있으면 연락 달라는 그를 딱히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정말 내가 있는 곳으로 기차표를 예매해 올 기세로 연락을 해오는 그에게 서울에 가는 날 연락을 하겠다 하였다. 오랜만에 본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같은 모습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라는 다소 날카로운 말에 그는 구구절덜 많은 말들을 늘어놓았다. 40살이 되기 전에 결혼을 하고 싶은데, 2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타지생활이 꽤나 외로워 소개팅 비슷한 걸 해서 연상의 여자를 만나봤는데 오래가지 않았다고. 아, 이 얘긴 괜히 한 거 같다고. 근데 생각보다 스스로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었다고. 그동안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면 결혼할 때 더 좋을까 싶어 시도해봤는데 실패했다고. 이전의 애매했던 본인의 행동을 후회한다고. 혹시 전에 본인에게 했던 말이 이성적으로 보고 했던 말 맞지 않냐고, 그렇다면 어떤 부분 때문에 그랬는지 알 수 있냐고, 그 마음을 이어갈 순 없냐고. 아, 전에 나에게 남는 시간에 연애하려는 사람은 싫다 했는데 무슨 의미였냐고. 그 이후 연락을 무시할 수 있지만 왜 받아주었냐고 예상은 했지만 그 남자의 말은 꽤나 두서없고 길었다.
난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증후군 얘기를 할 때의 당신은 참 멋있었는데, 지금은 아닌 거 같아요. “는 말로 운을 뗐다. “약점이 될 수 있는 모습을 당당하게 말하는 용기는 더 알고 싶을 만큼 멋있는 모습이었고, 더 알아가고 싶던 그 시절에 대한 인연은 끝났죠. 직장동료로 시작한 인연 사이에 시절인연이 끼어 있었을 뿐이라 생각했어요. 연애란 외롭고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라 없는 시간을 내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당신과 나, 생각하는 게 엄청 다르죠?”라는 말에 그는 이내 말을 줄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결혼이 뭐길래 이리 마음을 조급하게 만드는 것인가 생각했다. 나름의 목표가 되는 멋있는 것이라는 것, 알겠다. 하지만 명확한 답을 아직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30대가 되면 안정적인 어른이 되어 있을 줄만 알았던 나는 아직도 결혼, 출산, 육아.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어린아이에 멈춰있다. 아, 이제 또 명절에 집에 가면 어른들이 만나는 사람은 있냐고, 적당히 만나 시집가라고 하겠지? 혼자 하는 것들이 좋아지는 삶에 결혼이란 숙제가 주어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