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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근이 Nov 01. 2020

18. 한국에서는 몰랐던 호주 취업의 문

첫 잡인터뷰 이야기


시험을 패스하고 나서도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던 건, 뭔가 계속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였겠지. 호주에서 산 시간은 3년이 다 되어가는데, 집에서 혼자 공부만 해왔으니 그 시간만큼 호주 생활을 했다고 할 수 없고, 이제야 호주 사회 초년생이 된 것이었다. 이미 포화상태라고 하는 호주 약국 시장에서, 호주 학력과 경력도 전혀 없고, 영어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한가득인 나의 경쟁자들은.. 어리고, 영어에 문제없고, 학생 때부터 실습하며 경력을 쌓아온 호주 약대 졸업생들이다.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걱정이었다.



온라인으로 지원해놓은 약국은 겨우 10여 곳, 한 달이 지났지만 역시나 답신은 하나도 없는 상태였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내가 움직이지 않는데, 누가 나를 그냥 데려다 써줄 리가 없었다. 



진지하게 취준생의 임무를 해나갔다. 영어 Cover Letter와 CV 쓰는 방법부터 공부했고, 유료 첨삭도 받아보았다. 스카이프로 Job interview를 위한 수업을 들었는데, 관련 경력이 있는 튜터에게 시간을 맞추느라 밤늦은 시간에 수업을 들었다. 다른 튜터들은 질문에 대답하면 가끔 문법적으로 틀린 내용만 고쳐줄 뿐 대부분 "잘했어" 하고 그냥 넘어가버려서 시간과 돈 낭비만 하는 기분이었는데, 그 선생님은 달랐다. 질문의 의미에 대한 설명, 대답할 내용뿐 아니라 태도에 대한 조언까지 해주었다. 몸이 많이 안 좋은지 수업 펑크를 자주 냈지만, 튜터를 바꾸지 않고 계속 수업을 들었다.



아이엘츠 시험도 아니고, 약사 시험도 아닌 새로운 종류의 영어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이런 준비를 할 단계까지 온 것이 어디냐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다. 계속해서 블로그와 YouTube를 뒤져가며 취업 영어 공부를 차근차근해나가고 있던 중에 이력서를 보냈던 곳 중 한 곳인 H 약국에서 답메일이 왔다. 








브리즈번에서 3시간 반 정도 떨어진 지역의 약국이었다. 한 달도 더 지나서 받은 답메일은 인턴쉽을 언제 시작할 수 있는지, 면접은 언제 볼 수 있는지, 그리고 최근 사진과 여권을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온라인 지원에 실제로 답이 왔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하고 기뻐서 힘이 났다. 언제든 시작할 수 있고, 언제든 인터뷰 보러 갈 수 있다고 답장을 보내 놓고 또 며칠을 기다렸다. 



기운이 난 김에 이력서를 좀 더 업데이트해서 대여섯 약국에 인턴 지원 이메일을 추가로 보내보았다. 이메일을 보낸 지 30분 정도가 되었을까? 온라인 지원은 조금만 더 해보고 직접 발로 뛰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설마 하며 전화를 받았는데, 방금 지원했던 약국들 중 한 곳인 B약국의 리테일 매니저라고 했다. 그녀는 나의 비자 상태와 일할 수 있는 일정을 물어보곤 바로 인터뷰를 잡자고 했다.







 

이틀 뒤로, 첫 인터뷰가 잡혔다!! 




브리즈번에서 차로 5시간 가까이 떨어진 지역의 약국이었다. 약국장님과 중간 지점에서 만나 인터뷰를 봐도 된다고 했지만, 나에게 정말 소중한 기회였기 때문에 기꺼이 약국까지 찾아가겠다고 했다. 뭔가 의지를 보여주고 싶었기도 했고, 약국이 어떤 곳인지 직접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호주 흔한 도로 (photo by 둥근이)



나의 면접 때문에 B는 하루 휴가를 냈다. 브리즈번을 아침 일찍 출발한 우리는 점심시간쯤에 약국에 도착했다. 뭔가 그 마을과 어울리는 분위기의 작고 오래된 약국이었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약국으로 들어간 나는 카운터로 직진했다. 인사를 건네는 직원에게 면접을 보러 왔다고 말했더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했다. 오랜만에 신은 하이힐 때문에 5분 만에 발이 아파왔다. 약국장님이 손님과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 이메일과 전화로 대화를 나눴었던 매니저님과 먼저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잠시 후, 약국 입구에 있던 작은 방에서 약국장님과 둘이 앉아 짧은 인터뷰를 보았다.

 

 

영어 인터뷰를 준비해본 사람들은 기본적인 인터뷰 질문들에 대해서 잘 알 것이다. 


Tell me about your self. 

What are your strength and weakness? 

What is your 5 or 10 year plan?

problem solving, team work에 대한 이야기 등등. 


‘설마 이런 걸 진짜 물어볼까?’ 싶지만 그래도 질문받았는데 대답 못할까 봐 다 준비하게 되는 그런 질문들이 있다. 한창 연습을 하던 중이라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에 가득 찬 상태에서 면접에 임하게 되었다. 그런데 약국장님이 나에게 했던 질문은 “우리 약국 어떤 거 같니”, “한국에서 병원에 있을 땐 무슨 일했니”, “이 동네에 살 집은 알아봤니”, “비자는 어떻게 된다고?”, “남편은 무슨 일 하니”… 같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질문들이었다. 궁금한 거 질문하라기에, 약국이 대체적으로 어떤 일과로 돌아가는지, 직원 몇 명이서 같이 일하는지, 인턴 약사에게 요구되는 능력치는 어느 정도 되는지.. 약국 관련해서는 내가 질문을 더 많이 한 것 같다.



그렇게 약국장님과 대화를 끝낸 후, 매니저님은 나를 데리고 다니며 약국 직원들을 한 명씩 다 소개해주고, 약국 구경시켜주고, 어떤 일하는지 알려주고… 뭐 그런 분위기였다. 그렇게 짧은 - 마치, 오리엔테이션 같은 - 잡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브리즈번으로 내려오니 밤이 늦었다. 첫 인터뷰가 기대했던 거랑 달랐지만 나쁘진 않았던 것 같았다. 여러모로 의미가 큰 하루였다. 







다음 날 아침, 매니저님께 짧은 이메일을 썼다. 인터뷰 기회를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와, 인터뷰 때 느꼈던 점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일하고 싶은 의지를 한 번 더 보여주는 내용을 전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매니저님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벌써? 설마 이대로 합격인 것 인가?’ 하며 얼른 전화를 받았다. 매니저님은 이메일 잘 받았다며, 인터뷰 때 못 물어본 게 있는데 지금 질문해도 괜찮겠냐고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웃으며 당연히 괜찮다고 했는데 그게.. 대면 인터뷰보다 더 어려운 '정식' 전화 인터뷰 일 줄은 정말 몰랐다...

 


손님이 약국에서 산 물건이 마음에 안 든다고 가지고 왔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환자가 처방약을 받아갔는데 잘못된 용량을 받아갔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관리대상약(마약류) Oxycontin 20mg 처방을 40mg으로 받아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환자가 전화 와서 Simvastatin이 무슨 약이냐고 물으면 어떻게 설명할 것 인가?


같은 질문으로 Rabeprazole, Clopidogrel, Fluoxetin 등 …


Urinary infection에 주로 쓰는 항생제는 뭐가 있나?


Chest infection에 주로 쓰는 항생제는 뭐가 있나? 등 …



질문을 열 개는 넘게 받은 것 같다. 그렇게 시간 걸려서 약국까지 찾아간 날은 별 질문을 안 하더니.. 이럴 거면 그때 제대로 인터뷰를 보던지, 아니면 처음부터 전화 인터뷰를 하던지. 완전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원래도 전화 통화에 부담이 있는 데다가, 생각 안 해본 질문들을 받은 터라 갑자기 엄청 긴장했다. 약 이름이 한국이랑 발음이 조금씩 달라서 잘 못 알아듣기도 했고, 아무튼 전체적으로 만족스럽게 대답해내질 못했다. 잘 모르겠다고 미안하다고 답을 하기도 했고… 하… 아무튼 이건 진짜 아니었다. 




매니저님은 괜찮다며 나를 좀 달랬고(?), 다음 주까지 약국장님이 몇 명 더 면접 본다고 하니 다 끝나면 그 주말에 연락 주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한 겨울인데도 땀이 나있었다. 아... 후회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이미 망쳐버렸다. 대답했던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그냥 내가 너무 한심했다. 첫 인터뷰였으니, 경험치 쌓은 거라고 생각해야 했지만, 속상하기만 했다. 일하고 있는 B에게 전화를 걸어서 엄청 징징거렸다. B는 다른 지원자는 없을 거라며, 그냥 정해놓고 형식적인 인터뷰 한번 더 본 걸 거라며 위로했지만.. 어떡하지 나. ㅠㅠ 해놓은 짓이 있어서.. 마냥 설레면서 다음 주말을 기다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앞서 연락이 왔었던 H 약국에서 답장이 왔다.





다음 주 수-목요일쯤 약국에서 인터뷰를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뭔가 진짜 취업 시장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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