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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근이 Nov 01. 2020

20. 전반전 종료

호주 3년의 기록



약국에서 9월 초부터 일을 시작하기로 해서 한 달만에 정리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일은 이사 가서 살 집을 렌트하는 것이었다. 부동산 웹사이트를 열심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많은 것들이 느리고 구식인 호주이지만온라인으로 원하는 날짜와 시간대로 인스펙션을 예약할 수 있었다. 집을 직접 보기 위해서 브리즈번에서 여러 번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어서사진상으로 후보를 뽑고, 인스펙션을 하루에 모두 몰아서 잡는 것이 쉽지 않았다마음에 드는 집들 중에서는 정해진 날에 사람들을 한 번에 부르는 오픈 인스펙션을 하는 곳도 많았는데, 우리 일정과 맞지 않아 포기해야 했다.

 


심사숙고 끝에 마음에 드는 순서대로 1번부터 6번까지, 6개의 후보를 정해서 말 그대로 ‘폭풍 인스펙션’을 돌게 되었다. 빡빡한 일정이어서 미리 지도를 뽑고 동선을 짜서 계획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5시간 가까이 차로 이동 후, 도착하자마자 KFC에서 점심을 간단하게 때우고 1시부터 인스펙션 시작이었다. 30분 간격으로 돌았는데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이 거의 없이 계속 움직이게 되는 일정이었다. 



시간 맞춰 주소지로 찾아가면 부동산 직원이 와서 집을 보여주는데, 같은 부동산 직원을 여러 번 만나기도 했다. 어떤 집은 컨디션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5분도 안 돼서 그냥 나왔는데, 나중에 다른 집을 보러 갔다가 다시 만난 중개인이, 아까 거긴 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렇게 빨리 나왔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아무래도 그 집은 오랫동안 비어 있었지 싶다. 열심히 돌고 돌아 마지막 집을 돌아보자마자, 쉬지도 않고 다시 5시간을 넘게 달렸다. 저녁은 중간에 휴게소에서 간단히 때웠고, 브리즈번으로 돌아오니 한 밤 중이었다. B는 하루 종일 운전을 한 탓에 집에 오자마자 뻗어버렸다. 


인스펙션 결과, 우리 둘의 결정은 같았다. 가기 전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1번 집, 인스펙션 후에도 순위가 바뀌지 않았다. 보통은 렌트 신청을 여러 개 넣고 기다려본다고 하는데 우리는 이 곳 한 군데만 넣기로 했다. 그리고 신청 하루 뒤, 바로 수락을 받았다. 출근하기 일주일 전으로 입주 날짜를 잡아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보증금까지 입금하고 나니, 가장 무거운 짐을 덜은 것 같았다.

 

2015-2018년 우리가 살았던 집



 





두 달여만에 비자가 승인되었다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이제 별일 없으면 2년 뒤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게 된다이사 준비로 바쁘고 신경 써야 할 일들도 많았지만모든 것이 다 즐거웠다렌터카 회사에서 큰 이사 트럭을 빌려서 이사를 하기로 한 뒤로는마음 놓고 이것저것 물건들을 사다 모으기 시작했다필요한 목록을 정해서 중고로 사갈 대형 가전 가구부터 하나씩 샀고, 소형 가전이나 소품들은 IKEA, Target, K-Mart를 돌며 새 것으로 샀다






화창했던 9월 2일, 우리는 브리즈번을 떠났다. 짐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많아져서 3톤 트럭을 꽉꽉 채웠다. 새집에 이사 들어온 다음날 밤, 한국에서 호주로 여행 온 내 친구가 이삿짐이 그대로 널려있는 집에 도착했다5 6일 동안..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먹고마시고떠들고 정리를 하며 시간을 보내었다조금 정리된 후에 왔다면더 잘 챙겨주고 같이 여기저기 놀러 다닐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그래도 즐겁게 잘 지내다 간다는 친구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9월 9일 친구가 떠난 아침, 

첫 출근을 했다.

 




 

호주에 처음 도착한 날이 2012년 9월 9일이었다. 확실한 것 하나 없이, 그냥 부딪혀보자는 마음 하나만 가지고 출발했었다. 그리고, 정확히 3년 뒤엔, 호주 시골의 작은 약국에 출근을 하게 되었다. 3년 만에, 겨우 전반전이 끝났다. 아무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지 않아서 시작하지도 못할 뻔했던 그런 경기였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항상 마음 한 편에 두고 지냈던 시간들이었다.



아직도 더 많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얼마나 더 힘든 일들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정말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후반전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신이 나서 뛸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벅찬 기분이랄까. :D






and...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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