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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근이 Oct 21. 2020

01.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병원 약사 이야기

2010년 4월



대학 졸업 전에 면접을 보았던 병원에서, 학교를 졸업한 그 해 3월부터 바로 일을 시작했던 나는 어느새 병원 4년 차 약사에 접어들어 있었다. 주말과 공휴일에도 돌아가며 출근을 하고 낮과 밤을 번갈아가며 일을 하는데, 낮보다 밤이 더 바쁘고 평일보다 주말/공휴일이 더 바쁜 그런 곳이 병원 약제국이었다. 그때 나는 계속되는 2교대 근무에 몸이 지치고, 매일매일 많은 사람들과 싸우듯이 일하는 것에 마음도 지쳐있었다.



밤 당직은 병원 약사 생활에 있어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평일 밤 당직은 15시간 근무, 토요일 밤 당직은 20시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근무시간 동안 일을 했다. (퇴사하고 나서 토요일 근무 시간이 평일과 같아졌다고 들었다.) 병원 약국에서는 밤에는 앉아있다가 - 혹은 누워서 자다가 - 꼭 필요한 응급약만 내어주면 되지 않나 싶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병원의 업무 시스템은 주로 병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병동에서는 "응급이 아닌 약"도 굳이 "응급약" 오더로 입력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는데, 약을 밤에 미리 받아서 바쁜 아침이 오기 전에 모두 정리해두고 싶어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밤 12시 땡- 하면, 한참 전에 넣어놓은 (급하지 않은) 응급약 리스트가 프린터에서 무섭게 몰려나왔고, 그 고요한 밤, 단 두 명의 당직 약사는 990 침상 환자들이 다음 날 낮 또는 저녁에 복용할 내복약, 외용제, 주사약들을 챙기느라 뛰어다니기 바빴다. 틈틈이 약국이 바쁜지 모르는 병동에서 걸려오는 다양한 문의 전화까지 받아야 했다.



어느 밤, 너무 바빠서 전화를 못 받다가 급한 불을 끄고 겨우 뛰어가서 수화기를 들었더니, 받자마자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요!!!!!"하고 대뜸 소리를 지르던 그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왜 화를 내시는데요' 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무슨 일로 그러시는데요?"라고 물었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전화를 늦게 받았다는 사실에 화를 내면서, "너무 바빠서요"라는 내 말을 듣지도 않고 한참을 쏘아댔다. 그러고는 "너무 화나서 왜 전화했는지 까먹었네!"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 아닌가. 잠시 후 다시 걸려온 전화는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의 동일 인물이었는데, "Ifosfamide(항암제 성분명)랑 Holoxan(상품명)이랑 같은 거예요?" 같은 어이없는 질문을 했다.



밤새 짜증이나 화를 낼 시간도 부족해서 눈물을 참으며 일하고, 아침엔 다크서클이 발밑까지 내려온 생얼로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런 소모적인 스트레스 거리들은 하루 이틀 일어나는 일들이 아니었고, 하루에도 한두 번 있는 일들도 아니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때로는 간호사와, 때로는 간호조무사와, 의사와, 약무 보조원과, 환자 보호자와도 늘 날을 세우며 일을 해야 했지만, 대부분 누가 옳고 그른지도 없는 문제였기에 나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싸워야 하는지도 몰랐다. 약제국의 전화 수화기는 사람들이 하도 세게 던져서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살면서 내가 가장 까칠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2007-2010



병원 안에서는 모두가 바쁘고, 힘들다. 매일 같은 일상을 쳇바퀴 돌듯 하지만, 그 안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들이 계속 터지는 곳이 병원이다. 사람들은 의사, 간호사가 힘들지 약사가 뭐가 힘드냐며, 병원 약국에 약사가 30명이 있다고 하면 뭐 그렇게 많냐고 한다. 약제국은 늘 인원 부족에 시달렸고, 병원 밖의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는 긴장과 스트레스의 연속인 생활을 했다.  



일은 점차 익숙해져서 요령이 생겼고 처음처럼 모든 일이 엄청나게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두들 쉬는 시간에도, 퇴근 후에도, 휴무에도, 만나면 병원 일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지만, 내가 병원에 있을 때 글을 썼다면 그런 이야기들로만 가득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7명의 동기 약사들은 그래도 1년-3년 홀수 년에 온다는 탈출 위기를 잘 버티고, 4년 차가 될 때까지 한 명도 병원을 나가지 않고 있었다. 사실 5년을 꽉 채우기 전에 그만두면 퇴직금이 거의 없었던 우리 병원 시스템도 별생각 없이 출퇴근하고 있는데 큰 몫을 했다.



평소와 같았던 어느 날,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10년 차, 15년 차 선배 약사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내가 원하는 5년 뒤, 10년 뒤의 모습은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은 더 편해질 것이고, 호봉이 높아지고 승진하면 당직도 하지 않겠지. 그런데, 뭐랄까.. 내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누군가 나에게 '그래서 너의 꿈이 무엇이냐'라고, '꼭 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이냐'라고 물으면 대답할 말은 딱히 없었지만, 그래도 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때 나에게 그 일이 최선은 아니었던 것이다. 



생각의 힘은 강해서, 한번 그런 마음을 먹고 나니 하루라도 빨리 병원에서 벗어나 약국이든 제약회사든 연구소든 관공서든.. 아무튼 다양한 일들을 해보고 싶어 졌다. 5년을 채워야 생기는 퇴직금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때가.. 2010년 4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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