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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긍정 Dec 12. 2023

Wedding Anniversasy

결혼기념일, 꿈꾸던 결혼 생활



 곧 있으면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다. 결혼한 지 어느덧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거처를 일본에서 한국으로 옮겨왔고 직장을 그만두었으며 새 생명이 찾아와 주었고, 또 그 아기가 무럭무럭 자라 초등학생이 되었고 나는 다시 직장을 구했다.


 8년의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흘러갔다.






 결혼기념일이 다가오자 문득 다른 부부들은 결혼기념일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궁금해졌다. 일단 우리 부부는 내가 이벤트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지라, 소소하게 영화를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데이트를 즐겼다. 아무래도 아이가 있다 보니 이 정도의 데이트도 감지덕지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혼한 날엔 예쁜 눈이 내렸고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봄, 가을은 아니었지만 아름다운 날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기념해야 할 날이 12월이면 포기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기분을 내기 위해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싶어도 12월은 프리미엄이다. 예약이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가격도 배로 뛴다. 여행도 마찬가지. 어딜 가도 비싸고 예약도 쉽지가 않다. 항상 어딜 가고 싶은지 생각해 놓아도 2순위 3순위까지 생각해 놓지 않으면 어디도 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참 이럴 때 속상하다. 가끔 왜 12월에 결혼을 했을까 하며 자책도 해 본다. 눈 오는 결혼식, 낭만과 뒤바꾼 그 이후의 나날들이다. 

 물론 별일 아닐 수 있다. 우리 두 사람만 행복한 하루 보내면 되지. 싶다가도 어떤 해에는 왜 나만 결혼기념일에 아무것도 안 하는 거지?라는 생각도 든다. 이럴 때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 보다 싶다.  



 

 100세 시대인 요즘, 8년이라는 시간은 짧디 짧다. 지난 시간들보다 앞으로의 결혼 생활이 훨씬 더 많이 남아있다. 나는 딱히 결혼 전에도 결혼 생활에 대한 환상은 없었던 것 같다. 친구처럼 편한 사이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지금 남편과는 4살 차이가 나지만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고 있다. 남자를 만날 때 개그 코드가 맞는 게 가장 중요했던 나는 지금도 많이 웃으며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환상 따위는 없었지만 한 가지 로망이 있다고 하자면,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같은 부부로 늙어 가고 싶다는 것이다. 백발이 되어서도 할머니를 보는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고, 장난기가 가득한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의 장난을 잘 받아 주고, 작은 것에도 행복해하는 할머니. 나도 남편과 저런 한평생을 보내고 싶다는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어 우리 둘이서 서로를 의지하고 하루 종일 붙어 있어도 지루하지 않은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는 삶. 일상 속에서 소박한 행복을 즐길 줄 아는 그런 노년의 삶 말이다. 





 

 

 우리 부부의 노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난 8년의 시간만큼만 지내도 소원이 없을 것 같다. 싸움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많이 싸우는 편은 아니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런 잔잔한 물결 같은 결혼 생활이 좋다. 기념일마다 반짝이는 무엇, 명품과 같이 큰 선물을 받지 못해도 좋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바라 봐 주고, 아들이 커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서로와 함께 있음을 든든해하고 그렇게 함께 희로애락을 느끼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 그러려면 나도 더욱 성숙해져야 하고 노력해야겠다 싶은 마음이 든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부부가 어디 보통 인연이랴. 저 영화 포스터처럼 백발노인이 되어 '우리 참 잘 살았죠?'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결혼 8주년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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