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많은 직장암 3기 환자 가족의 입원 일기
어김없이 찾아온 어느 날 아침, 시계가 오전 8시를 가리키자 복도에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떠들썩했다. 아침밥이었다. 쟁반 안에는 생선 반찬 하나에, 모든 음식을 다져놓아 육안으로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반찬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런데 쟁반 구성을 확인한 아빠가 난데없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반찬 하나가 잘못 와 묵무침이 2개였는데, “아니 무슨 병원 밥이 이러냐! 해도 해도 너무 심한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목소리가 한탄도 아니고, 투정도 아니고, 짜증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해 화였다. 내가 아는 아빠가 맞나 싶었다. 우리 아빠는 평생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이었다. 반찬 투정이라곤 정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데, 병원에 온 지 거의 한 달 만에 이런 말을 했다. 것도 꽤 오래 참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솔직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병원비가 비싸다고 할지언정, 우리가 뭐 호텔에 온 것도 아니고 밥 정도는 당연히 포기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학교급식이나 사내식당이 아무리 맛있어도 계속 먹으면 질리듯 병원밥도 아빠의 반찬 투정 정도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이 날 점심에도, 저녁에도 식사에 대한 아빠의 화는 멈추지 않았다. 먹는 건 아주 본능적인 일이라, 그 힘이 매우 세더라. 그때 알았다.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는 걸.
그렇게 시간 때우기 식의 식사를 마치고, 기분전환을 위해 아빠와 내가 정한 햇빛 존으로 향했다. 2층에 어느 복도인데, 밖에 나갈 순 없지만 햇볕이 쨍하게 들어 무르익은 따뜻함을 간접체험할 수 있다. 새로 산 양말도 신어봤는데, 아빠가 남긴 한마디가 잊혀지지 않는다. “참나! 양말이 그림에 떡이네…” 그러고보니 의식하지 않을 땐 몰랐는데, 아빠 눈엔 양말에 담긴 음식들이 참 맛있어 보였나 보다. 웃기고, 또 그런 생각을 한 아빠가 안쓰러웠다.
다음 날 아침, 금방이라도 식사를 거부하는 날이 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대범하게 병원 식사를 한 끼 중단하고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반찬가게를 찾았다. 좁은 길가에 집밥 느낌으로 장사하는 이곳은 ‘엄마의 부엌’이라는 작은 반찬가게였다. 이곳에서 아빠에게 주문받은 깻잎무침, 잡채, 오이지, 가지볶음을 구매했다. 다행히 이 정도의 식사는 간호사님도 흔쾌히 괜찮다고 했다.
반찬가게에서 사 온 반찬들을 아빠에게 하나하나 소개하는데, 흥얼거리는 아빠의 입을 알아챘다. 2만 원도 안 되는 반찬이었는데, 우리에게 이렇게 큰 기쁨이 되어주다니. 그것만으로도 더 바랄 게 없었다. 하얀 침대 시트 위에 양념 강한 이 반찬들을 보며, 나의 양심 일부가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괜찮았다. 며칠 만에 보는 아빠의 씰룩거리는 입과 맞바꿀 수 있을 정도에 양심이었다.
먹는 거, 별거 아니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별거다. 별거들 중에서도 정말 별거다. 맛있는 거, 먹고 싶은 거, 생각나는 거 그대로를 먹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