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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현 Apr 14. 2022

[입원일기 #12] 나 오늘 억울해!

걱정 많은 직장암 3기 환자 가족의 입원 일기

그동안 기록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으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글로 옮기지 못했다. 글은 곧 내 생각인데, 하나로 합쳐지지 않았고 감정만 떠다녔다. 그렇다. 제목이 좀 자극적일 수 있겠지만, 입원해있는 병원과의 트러블이 좀 있었다. 감정으로 치자면 안정기에서부터 황당함, 억울함, 화남, 그리고 그 뒤에 체념하는 과정까지. 이제는 우리가 겪은 지난 3일간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시 이곳을 찾았다.




지난 월, 화, 수 동안 우리가 겪은 일이다. 참고로 우리 아빠는 직장암 3기 판정을 받고 3월 중순 로봇수술을 진행해 현재까지 입원해있는 환자다. 3기 중에서도 항문과 가까운 곳에 암세포가 있어 항문은 살리지 못했고, 영구적인 인공 장루를 단 케이스다.

<월요일 아침>
- 아침 8시, 주치의 교수가 회진을 돌았다.
- 지난주에 이번 주 퇴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던 그는 예상했던 것처럼 “상태가 다 괜찮아져서, 가셔도 되는데 퇴원하시겠어요?” 우리에게 물었다.
- 수술부위(직장암)는 치료가 다 되어서 병원에 있어도 하는 게 얼마 없다고 했다.
- 합병증으로 소변 문제(원치 않는데 요의가 없이 계속 줄줄 세어 나오거나, 요의가 있는 반면 소변이 나오지 않는 문제)가 심했던 우리는 “이대로 집에 가면 안 될 것 같다. 이번 주까지 소변만 좀 해결되면 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 주치의는 “알겠다. 그럼 소변만 좀 더 지켜보자”라고 했다.
-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잘 꿰매진 항문을 하루에 3번씩 세척하는 중이었다. 그때마다 의사들은 “훨씬 좋아졌다”, “클린 한 물만 나온다”라고 했고, 그건 전날인 일요일 저녁까지도 그랬다.
- 반면 아빠는 항문 통증이 심하다며 의사에게 말했지만 “거의 다 나았고,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통증 같다. 체위 변경을 자주 해줘야 한다”라고 했다.
<월요일 점심>
- 뜬금없이 꿰맨 항문에 고름이 생겼다며, 원래 소독을 해주던 사람보다 높은 직급의 교수가 찾아와 소독을 해줬다.
- 원래 소독을 하는 것 그 이상으로 항문을 찢듯이 소독을 했다. 세어 나오는 물은 이전과 달리 전혀 클린 하지 않았고, 눈으로만 봐도 짙은 노란색의 고름이 세어 나오고 있었다.
- 아침까지만 해도 퇴원 이야기가 오고 갔었는데, 갑자기 고름이 웬 말인지 상황 파악이 잘 안 됐다. CT를 찍자고 했고, 12시부터 8시까지 예견치 못한 금식에 들어갔다.
<월요일 저녁>
- 갑자기 하루에 4번으로 소독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 무슨 일인가 해서 자세히 물어봤더니, “월요일이 되자 염증 수치가 극도로 올라가서 CT를 찍어보자고 한 건데, 안에 큰 고름이 있다”며 치료를 좀 더 해야 한다고 했다.
- 이 정보도 우리가 물어봐서 겨우 겨우 알게 된 거라는 게 제일 충격이었다.
<화요일 아침>
- 또다시 회진이 다가왔다. 월요일 저녁에 들은 이야기처럼 항문 쪽에 큰 고름이 하나 생겼고, 그 고름을 제거하려면 이번 주까지 소독을 4번 정도 하면서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 대략적인 퇴원 일정을 물었는데, 이번 주까지 지켜보고 다음 주쯤에 가면 될 거라고 했다.
<화요일 점심>
- 마치 이 고름이 아주 큰 병인 것처럼 겁주길래, 소독하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 기간 동안 소독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1달 이상이라는 답변을 했다.
- 더 기분이 나빴던 건 소독을 하는데 아파하는 아빠 항문 뒤에 인턴을 3명씩이나 세워두고, 소독하는 법에 대해 하나, 하나 연설을 했다. 우리 아빠를 시험 삼아 점심에 가르치고 저녁부터 직접 해보라는 식이었다. 다 들렸다.
- 모든 게 불안했고, 누구라도 붙잡고 이야기해야 했다.
- 소독하는 교수에게 2분만 시간을 달라고 했다. 두 교수가 다른 말을 하고 있어 불안하고, 소독도 인턴들 세워놓고 지금 배워 저녁에 하게 하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화요일 저녁>
- 아니나 다를까 점심에 아빠 항문을 기웃거리던 인턴이 소독을 한다며 아빠를 불러냈다.
- 한 일주일간 소독하는 모습을 봤던 나는, 그 인턴이 들고 있는 고무 관이 왠지 기존 것보다 두꺼워 보였다.
- “내가 뭘 알겠나” 했지만 철판 깔고 말하고 싶었고, 말했다. 그런데 그 인턴 의사는 “이거 맞아요. 진행하겠습니다”며 확인도 안 하고 두배, 세배는 굵은 관을 집어넣어 소독했다.
- 당연히 고통은 더 심했고 안 나오던 피까지 줄줄 세기 시작했다.
- 끝나고 찝찝해서 집요하게 확인해달라고 했고, 확인해보니 간호사가 잘못 준비한 재료를 의사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쓴 거였다.

이 일이 있고 난 직후, 난 너무 불쾌했다. 지나고 나서 정리해보니 세 가지 이유에서였다.

바뀐 재료를 보호자가  알아채야 하나. 또 내가 아닌 것 같다고 했을 때 확인하는 척이라도 해야지, 왜 콧대만 세우기 바빴을까.

우려했고, 막으려고 시도도 했던 일이 너무 바로 일어난 것(점심때 나눈 1차 문제제기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것), 어떻게 이렇게 하루 만에 드라마틱하게 고름이 발견되는지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데, 아무도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

왜 아무도 사과를 안 하나. 그 의사는 간호사가 잘못 준비해 간호사한테 잘하라고 했단다. 피해를 본 건 아빤데 왜 지가 왕놀이를 하나. 의사가 되어서 잘못된 재료에 대한 사리분별도 못해놓고 왜 큰소리는 떵떵 일까.

주치의에게 할말을 정리했다.

순간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봤다. 이런 일을 당하고도 그냥 지나쳐야 하는 이유가 없었다. 길가에서 만 원짜리 물건 하나를 사도 이렇게는 안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자기 자신이 시험대에 올라가 한이 맺히는 것 같다고 말했을 때, 바로 달려가 따졌다. 왜 잘못했는데 아무도 사과하지 않냐며 말이다. 결국 간호사는 재료를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라며, 사과했다. 하지만 그 의사는 한껏 귀찮은 표정만 일관하며 끝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주치의 회진 때 모든 사실에 대한 불만을 최대한 표출했다. 아빠를 위한 일이라면 병원을 옮길 생각도 있다고 했지만, 주치의는 병원에 미숙한 사람들도 있어서 그렇다며 “진짜 죄송하다, 화날만하다. 용서해달라”라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글로 남기며 뭔가를 얻고 싶은 건 아니다. 문제를 알게 되고 사과를 받기까지 하루 정도의 시간이 있었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정면돌파 외에는  표현을 했을 때 불리한 면이 훨씬 많은 위치라고 생각했다. 억울했고, 화가 나서 눈물도 났다. 그러다가도 우리를 지킬 수 있는 건 우리뿐이니까 슬픈 것도 억울한 것도 내 힘으로 직접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외롭다. 의사, 간호사도 사람인지라 그 달라진 아니꼬운 시선도 너무 따갑다. 그럼에도 후회는 없다. 병원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지만, 몸이 아픈 아빠에게 마음까지 아프라고 하는 건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오늘도 나, 그리고 우리를 잘 지켜냈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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