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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구 맛집이 시장에 숨어 있었다

상인들의 밥상이 나의 인생 밥상이 되다 홍성 광천 젓갈시장 내 한일 식당

by 까칠한 한량

서울에서 떠나는 아침


아침 9시, 알람보다 일찍 눈이 떠집니다.

어제 밤 미리 검색해둔 길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텀블러에 에디오피아 시다모 원두로 내린 따뜻한 커피를 채워 넣습니다. 서울에서 홍성까지, 네비게이션은 2시간 반이라고 안내하지만 평일 오전이니 조금 더 빨리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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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를 달리며 생각해봅니다. 과연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먹을 만한 가치가 있을까?

지인의 소개로 알게되고, SNS에서 본 몇 장의 사진과 추천 댓글들만 믿고 떠나는 여행이라니. 뭐 실패해도 홍성 장터가서 하루에 1000개 이상 팔린다는 호떡도 먹고, 놀다오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홍성으로 달려봅니다. 이런 설렘이 전 좋습니다.

아직 모르는 맛집을 찾아가는 길, 새로운 발견에 대한 기대감 말입니다.




2시간여 차를 달리다 보니 벌써 코끝에서 바다 냄새가 납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골목길로 접어들수록 점점 더 시골스러운 풍경이 펼쳐집니다.

과연 이런 곳에 정말 맛집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쯤, 저 멀리 '광천젓갈시장'이라는 간판이 보입니다.


시장 안에 숨어 있는 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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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세우고 시장 입구에 서니 이미 상인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며 한일식당을 찾아 두리번거렸는데,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저씨, 한일식당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젓갈 가게 사장님께 물어보니 환한 미소로 대답해주십니다.

"저기 저 골목으로 쭉 들어가면 있어요."

상인분의 말씀대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니 정말 소박한 간판의 한일식당이 보입니다.

외관은 평범한 동네 밥집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벌써 몇 테이블은 상인과 장 보러 온 손님들로 가득합니다. 대부분 현지분들 같아 보이니 이미 소문이 난 집인가 봅니다.



첫 만남, 그리고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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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서니 따뜻한 인사말과 함께 구수한 젓갈 냄새가 반겨줍니다.

사장님께서 빈자리로 안내해주십니다. 벽에 붙은 메뉴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간장게장정식, 젓갈정식, 된장찌개....


간장게장정식 2인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봅니다.

인테리어 구수합니다...낮익은듯한 눈에 익은 동네 식당 같은

그런데 밥상이 나오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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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게장 두 마리가 윤기 좋게 올라와 있고, 그 주변으로 각종 젓갈들이 작은 접시에 정갈하게 담겨 나옵니다. 새우젓, 오징어젓, 명란젓... 그리고 열무김치, 시골 된장찌개, 갓 지은 쌀밥까지. 화려하지는 않지만 하나하나 정성이 느껴지는 상차림입니다.



인생 게장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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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다리를 쪼개어 한 입 베어물었을 때의 그 감동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짜지 않으면서도 깊은 감칠맛이 입안 가득 퍼집니다. 게살이 이렇게 달콤할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신선하고, 간장 양념은 게의 비린내는 전혀 없이 오히려 단맛을 더욱 끌어올려 줍니다.


함께 나온 젓갈들도 하나씩 맛보니 각각의 개성이 뚜렷합니다. 어리굴젓은 적당히 짭짤하면서도 감칠맛이 훌륭하고, 오징어젓은 쫄깃한 식감과 함께 고소한 맛이 일품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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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 한 술 떠서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고, 열무김치로 상큼함을 더하고, 다시 게장으로...

이런 식으로 먹다 보니 어느새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있었습니다.



가격마저 감동적인 곳

서울이나 여수,호남의 유명 게장 맛집들을 떠올려봅니다. 분명 맛은 있지만 게장정식 하나에 4만원대는 기본이니, 아무리 맛있어도 자주 갈 수는 없는 곳들이었죠. 특별한 날이나 손님 대접용으로나 생각해볼 만한 가격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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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일식당의 간장게장정식은 2만원입니다. 처음 메뉴판을 봤을 때 잘못 본 건 아닌가 싶어서 다시 한번 확인했을 정도였어요. 이 정도 퀄리티에 이 가격이라니,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반찬으로 나오는 각종 젓갈들의 수준도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가격 때문에 망설여지지 않으니 그후에도 게장이 댕기는 날이면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오늘은 게장이 당기네' 하는 날,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곳이 생긴 것입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방문

첫 방문 이후로도 몇 번 더 광천 시장을 찾았습니다. 처음에는 게장만 먹으러 갔는데, 두 번째 방문에서는 젓갈정식을 주문해보았습니다. 게장 대신 다양한 젓갈들이 더 많이 나오는데, 이것도 나름의 매력이 있었습니다. 각각의 젓갈마다 다른 바다의 맛이 담겨 있어서 마치 서해안 전체를 맛보는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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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다른 맛들


물론 홍성에는 한일식당 외에도 여러 맛집들이 있습니다. 장날이면 소머리국밥집마다 줄이 길게 늘어서고, 천 원 호떡은 달콤한 추억을 선사합니다. 우렁쌈밥집에서는 신선한 채소와 함께 건강한 한 끼를 즐길 수 있고, 각종 젓갈 가게에서는 직접 담근 젓갈들을 맛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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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에게는 역시 한일식당이 최고입니다. 다른 곳들이 나름의 특색과 맛을 자랑한다면, 이곳은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입니다. 한 상에서 홍성의 바다와 들, 그리고 사람들의 정을 모두 느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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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의 여운


매번 한일식당에서 밥을 먹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서는 항상 같은 생각을 합니다. '다음에는 언제 또 올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역시 와서 잘했다'는 만족감이 공존합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뒤를 돌아보면 홍성의 들판이 점점 멀어져 가지만, 입안에 남은 게장의 단맛과 젓갈의 구수함은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계속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며칠 지나 입맛이 없을 때면 문득 그 맛이 그리워집니다.


진짜 맛집이란


화려한 인테리어나 SNS용 예쁜 플레이팅, 혹은 유명 셰프의 이름이 아니라, 매일 그 맛을 찾는 사람들이 있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정직한 맛이 있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 먹고 나서 '또 오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는 곳이 진짜 맛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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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식당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시장 한복판의 작은 식당이지만, 상인들의 든든한 밥심이 되고,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인생 맛집'으로 기억되는 곳. 간장게장뿐 아니라 젓갈 정식, 시골 된장찌개, 그리고 열무김치 한 그릇까지... 모두 담백한 손맛으로 차려져 있어서, 먹을 때마다 '집밥'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곳입니다.



서울에서 2시간 반을 달려도 전혀 아깝지 않은 맛.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오고 싶게 만드는 따뜻한 마음까지. 홍성 광천 젓갈시장의 한일식당은 제게 그런 '인생 밥상'이 되었습니다.


한일식당 충남 홍성군 광천읍 광천로299번길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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