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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rmycanada Oct 26. 2020

(필리핀) 편견

 지독한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아마 우산을 가져가지 않은 날, 비를 홀딱 맞은 채로 교회에서 집까지 한 시간 가량을 걸어왔을 때 감기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 같다. 머리는 지끈지끈하다 못해 누가 망치로 두들기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고, 목은 잠겨서 말할 수 있는 힘 조차 없었다. 목구멍에 음식을 삼킬 의지마저 없어 며칠째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감기약은 한 통을 다 먹어봤자 소용이 없다. 늘 아침 일찍 올라가 티쳐들과 수다를 떨면서 하루를 시작했는데, 며칠 째 내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니 세실이 내 방문을 조심스럽게 두들겼다. 


"Anding.. Are you okay?"

안딩, 괜찮아?


"No..."

아니...


 밥과 약을 챙겨 먹었냐는 세실의 질문에 나는 '노'로만 일관했다. 겨우 몇 마디 내뱉으니, 기력이 없어 또 그렇게 침대에 하염없이 누워있는데 오후에 아떼(요리사)가 내 방문을 두들겼다. 평소에 말이 없고 수줍음이 많은 그녀는 식사만 차려놓고 없어지는 바람에 자주 보지 못했는데, 못 본사이에 볼록 나왔던 배가 만삭이 되어있었다. 아떼는 손 한쪽은 허리에, 한쪽은 큰 국그릇을 들고 그걸 건네주며 먹으라는 시늉을 한다. 국그릇 안에는 3인분은 족히 되어 보이는 흰 쌀죽이 있었다. 한국사람들이 아플 때 죽을 먹는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만삭이 된 배를 받치고 4층을 걸어 올라왔을 거라고 생각하니, 고마움과 미안함이 앞섰다. 입맛은 전혀 없었지만 아떼의 정성을 생각해 숟가락으로 크게 한입 먹어보았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다. 


 혼자 방에서 열과 두통에 싸우면서 나도 모르게 지독한 외로움이 스며들었는지 아떼가 준 죽에서 쓸데없이 다정함이 느껴져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 아무도 두들기지 않았던 방문을 궁금해해 준 세실의 다정함도 이제야 마음으로 와 닿아 결국엔 펑펑 울어버렸다. 입엔 죽을 가득 넣고 '짜...'라고 중얼거리면서 눈물 콧물을 다 쏟으며 꾸역꾸역 그 많던 죽을 다 먹고야 말았다. 차올랐던 외로움과 고독함이 비워져서였는지, 아떼가 만들어준 죽이 효과가 있었는지, 아니면 아침에 약을 사다 준 세실의 걱정이 감기를 쫒았는지 다음 날부터는 거동이 괜찮아져 수업에 나가기 시작했다. 



 한인 커뮤니티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워들으면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편견 생겨버렸다. 여기서 한국인은 '돈'일뿐인 호구고, 술이나 종일 마셔대는 시끄러운 민족이라는. 귀동냥으로 듣는 이야기 속에서도 한국인과 필리피노들은 그다지 어울리지 못했다. 게다가 당시 아버지 없는 '코피노'(코리안과 필리피노 혼혈)가 뜨거운 감자로 이슈화되면서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는 바닥까지 간 것 같았다. 나에게 필리피노 역시 그랬다. 같이 살던 또래 티쳐와 몇 번 어울려 놀면서, 당연스럽게 비용을 내쪽에서 부담했다. 얼결에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여전히 이유를 알지 못했고 여기선 그게 마치 관례인 것처럼 당연했다. 나뿐만이 아니다. 학생들에게 밥을 얻어먹고 다니거나 애가 딸린 남자와 데이트를 하는 티쳐들이 왕왕 있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학생들은 한국인이 아니면 그다지 어울리고 싶지 않아 했다. 매일 마주 보고 섞여 살면서도 그런 몇몇 사람들 때문에 서로 편견을 만들고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 


 이런 편견 때문에 세실의 집에 처음 놀러 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도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필리피노에 대해 편견을, 세실은 한국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세실이라는 인간과 김지현이라는 인간이 국적과 피부색과 언어를 뛰어넘어 마음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다행히 세실은 스피킹 선생님이었고, 교재보단 세상과 선생님에게 궁금한 게 많았던 나는 세실의 집에 놀러 가고 싶다고 졸랐다. 죽에 네스퀵을 타 먹는 초콜릿 죽이 꼭 먹고 싶다며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졸라 입성하게 된 것이다. 실은 한 차례 앓고 난 후, 약값을 한사코 받지 않겠다는 세실에게 라면과 김으로 보답하고자 집념 있게 졸랐다. 보는 눈이 많은 학원에서 자칫 잘못했다가는 자기에게도 선물을 달라는 은근한 압박을 받을 것만 같아 직접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몰래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주말마다 한국 술집에 가지 않고, 방도 없는 필리핀 친구 집에서 참 잘 먹고 잘 자는 나를 보며 세실도 편견의 편견도 깨졌다. 그녀가 나를 선뜻 초대하지 못했던 이유는 한국인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소박한 집에 살고 있어서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실의 딸 크리사와 아들 루이스도  세실 표 반찬과 밥을 주면 한 그릇을 싹 비워버리는 한국 아가씨가 신기했는지 혹은 반가웠는지 내가 오는 것을 반기는 눈치였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어차피 같은 문화와 언어 속에 사는 사람들도 지독하게 말이 안 통하는 관계가 있고,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미소만 주고받아도 우정이 피어나는 관계도 있다는 것을. 관계 속에서 편견이 물러나니, 그저 인간만 보인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맛있는 걸 좋아하고, 서로를 사랑할 줄 아는, 참 따뜻한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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