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랑코끼리 이정아 Dec 09. 2023

반전 매력, 우리 동네 로컬교회 목사님

인도에 다시 와서 살게 되면서, 아니 그 보다 더 이전에 한국에서부터 결심한 일이 있었다. 다시 인도에 가면 한인교회가 아니라 집 근처 로컬교회에 다녀보자는 이었다.


'요가를 배워보자', '영어 공부를 해보자', 그리고 '로컬교회 출석을 하자'는 내 결심을 하나씩 이루기 위해 구글 지도를 검색하면서 찾아 나섰다.

요가 학원도 정했고, 영어 선생님도 소개받았는데 교회는 좀체 정해지지가 않았다.


단골이 동네 미용실의 크리스천 미용사에게 머리 염색을 하다 말고 교회 정보를 물어보기도 하고, 역시나 크리스천인 내 차 기사에게도 주변 교회를 알아봐 달라고 했다.

너무 크지 않은, 집에서 멀지 않은, 종파도 잘 따져보라고 부탁을 했다.


한국교회의 온라인 예배만 드리기를 한 달 남짓, 기사 존슨이 적당한 교회를 찾았다며 언제 목사님을 만나보라고 했다. 그래서 존슨이 전화로 약속을 잡은 평일 낮에 교회로 찾아갔다.



우리 집에서 차로 5분이면 충분한 거리의 주택가 골목 안쪽에 자그마한 벽돌 건물에 연노랑 칠이 되어있는 예쁜 교회였다. 마당에는 여전히 물이 쏟구치는 펌프가 있고, 석류나무에 빨간 작은 석류가 매달려있는, 어릴 적에 엄마 따라서 갔던 동네 교회와 너무나 닮은 외관이었다.

마음이 포근하고 편안해졌다. 한눈에 마음이 확 닿았다. '그래! 이 교회로 정하자.' 이미 내 마음은 굳힌 상태로 삐거득, 나무문을 열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다.


발리우드 리듬처럼 경쾌한 성가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먼저 나를 반겼다. 학교가 쉬는 날, 아직 9인데 벌써 크리스마스 공연 준비 중이었다.

핑크색 벽에는 에어컨이 여러 개 달렸고, 연두색 벽에는 TV와 키보드도 보였고, 천장엔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밖에서 본 교회 외관과는 다르게 제대로 갖춰진 내부의 모양새였다.



수북이 쌓인 플라스틱 의자를 바닥에 내려놓던 중년의 남자분이 나를 보더니 문쪽으로 빠르게 걸어왔다.

'목사님이시구나!'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온화하고, 편안한 웃는 인상의 전형적인 좋은 성직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좀 전에 목사님이 내려놓았던 하얀색 플라스틱 등받이 의자에 마주 앉았다. 서로 서툰 영어로 자신을 소개하고, 출석을 약속했다.


순복음교이며, 25년 전에 마을이 아직 형성되기 전 허허벌판에 본인이 처음 세운교회에서 지금까지 목회를 하고 있다고 했다. IT회사에 다니는 두 아들이 있는 나보다 두 살 적은 목사님은 25년 사이에 커진 도시와 마을, 그래서 교인이 많이 늘어난 얘기, 코로나 이후로 반이상 교인이 줄어든 이야기 등을 하시면서 외국인이 로컬교회에 온 이유를 궁금해했다.


이유를 설명하고 교회를 나서는데, 좀 전에 공연 연습을 하던 아이들이 쪼르르 문 앞에 모여서 배웅을 해줬다. 귀여운 아이들 표정이 영어로 얘기하느라 신경 썼던 내 긴장도 어주었다.



바로 다음 주일부터 갈 수 있을 것 같았던 교회는 남편 일정 때문에 계속 미뤄지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요가를 마치고 기사가 안 와서 집 방향으로 걸어 나오고 있는데 "마담! 하우 아 유?"라며 누가 큰 소리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쳐다보니 로컬교회 그 목사님이었다.

교회에 가는 길이라며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고, 집이 요가학원 바로 뒤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교회에서 봤던 엄숙한 분위기와 너무 달라서 한눈에 못 알아볼 정도였다. 다시 보니 웃는 인자한 얼굴의 목사님이 맞았다.

물어보지도 않는데 괜히 찔려서 다음 달에 한국에 잠시 다녀오면 그때부터 교회에 가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한국을 다녀온 바로 다음 주일에 교회로 향했다. 온화한 표정으로 목사님이 반겨주었고, 그곳의 모든 교인들의 얼굴에서 평화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곳이 교회지'라는 마음이 들게했다.


예배시간 내내 저분이 내가 이전에 만났던 그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설교도, 기도도 너무 거침이 없고, 힘이 느껴지고, 한마디로 카리스마가 넘쳤다.

평소에는 온화하고 편안한데, 교회 단상에 서면 완전히 달라지는 모습에 목사님이 달리 보였다.


이후로 나는 비록 타밀어로 하는 설교이고, 기도이지만 한국교회 온라인 예배를 마치고 꼭 교회를 간다. 집중해서 기도하는 시간과 공간필요했고, 로컬교회에 헌금도 하고, 내가 그곳에서 할 일도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예배 전에 1시간가량 기도와 찬송을 하는데 그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리고 설교시간에는 혼자서 성경책을 읽는다.

그렇게 인도에서 내가 주일마다 출석하는 교회가 생겼다.


지난주, 교회를 다녀온 다음날인 월요일에 인도 첸나이에 거대한 사이클론이 지나갔다.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기고, 정전이 되고, 마비가 되었다.

수요일부터 조금씩 복구가 되었고 일상이 회복되면서 요가 학원도 다행히 재개되었다.


요가매트를 어깨에 메고, 슬리퍼 차림으로 진흙과 물 웅덩이를 피하면서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마주 오던 오토바이가 내 앞에 서더니 웬 남자가  "하우 아 유?"라고 해서 누군가 한참 쳐다봤다. 목사님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고, 오토바아에는 양동이가 달렸고, 그 양동이 안에는 빗자루와 솔이 담겨있었다. 인도 전통복장인 짧은 치마까지 입고 있어서 도저히 목사님이라고 인지가 되지 않았다.

사흘 전에 쩌렁쩌렁 힘 있게 설교하시던 그분이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교회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다행히 교회 안까지 물이 들어오지는 않았다며, 교회 마당에 쓰레기와 진흙이 밀려들어와서 청소를 하려고 가는 이라고 했다.


50대 중반이면 인도에서는 노년이라고 해도 무방할 나이이다. 그럼에도 손수 청소도구를 챙겨서 교회로 향하는 그 모습이야말로 아름다운 성직자의 뒷모습이었다.

기사만 왔으면 나도 같이 가서 청소를 도우고 싶었지만 갈 수가 없어서 안타까웠다.


온화한 표정에, 설교는 힘이 넘치고, 기도 소리는 하늘에 닿고도 남을 것 같은 목사님은 직접 교회 청소를 하려고 혼자서 교회로 향하는 분이었다.

'목회자는 이런 모습 이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내 기준의 판단을 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하얀 양동이를 덜컥 덜컥 달고, 짧은 치마의 청소 복장을 하고 교회를 향하는 목사님의 귀여운 반전 매력이 그날 하루 종일 내 마음이 따뜻했던 이유가 되었다.


비록 타밀어로 하는 설교이지만,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이지만 목사님의 사는 모습에서 그 설교는 한국의 여느 대형교회 목사님의 설교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아니 그보다 더 마음을 터치하는 힘과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믿게 된다.


온화한 순박한 미소와 빗자루와 하얀 양동이와 짧은 치마와 쩌렁쩌렁 카리스마 있는 설교 모습, 어느 것 하나 목사님의 모습이 아닌 것은 없다. 목사이님의 삶의 모습과 단상에서의 모습은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이지만 그 반전매력이야말로 진정한 목회자의 모습이 아닐까?


우연히 찾아간 동네 로컬교회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교회건물도, 얼굴에서 평화가 보이는 그곳의 사람들도, 반전매력의 목사님까지 내가 찾던 그런 교회였다. 그곳으로 이끈 보이지 않는 힘에 감사하며, 그곳으로 이끈 이유를 찾아볼 생각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