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자는 어떤 사정 때문인지 아내도, 집도, 혈육들과도 떨어져 홀로 쓸쓸한 거리를 헤맨다. 그렇다면 화자는 애초 외톨박이는 아니었다. 아내도 있었고, 살뜰한 부모도, 형제도 모두 있었다가 상실한 것이다. 상실감이란 있다가 없을 때 배가되는 법. 바람은 불고, 날은 저물고 추위에 방황하던 화자는 어느 목수네 집에 방을 얻는다. 목수네 명패는 박시봉이었을 거고. 그리고 습내 나는 이 작은 방에서 화자의 땅굴파기가 시작된다. 낮이고 밤이고 홀로 처박혀 아무와도 이야기하지 않는 대신 생각은 끊임없이 질주한다. 질그릇에 담긴 불에 손을 쬐기도 하고 잿가루 위에 글자를 써보기도 하고 방구석에 누워 잉여짓을 하는 동안에도 어리석었던 지난날에 대한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후회와 슬픔, 부끄러움.... 소처럼 연하여 새김질하는 동안 과거의 관념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풀어 오른다. 어쩌다 나는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왜 그렇게밖에 살지 못했을까.... 얼굴이 화끈거리고 눈물이 핑 돌며 후회와 슬픔에 짓눌려 죽을 것만 같다.
한참을 울었을까. 감정의 소용돌이가 지나면 적막이 찾아든다. 고개를 돌리면 허연 문창도 보이고 높은 천장도 보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 모든 일들은 어쩌면 그냥 그렇게 일어나게 될 일들이었을지 모른다고. 내 뜻이며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보다 더 강한 존재,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굴려가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 화자는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 어지러운 마음은 차츰 정돈이 된다. 슬픔과 한탄, 후회와 같은 것들은 마치 앙금처럼 가라앉고 그 빈 자리에는 이제 쓸쓸한 마음만이 맴돈다.
저녁이 되면 바깥에는 싸락눈이 내려 문창을 툭툭 치기도 하는데 이럴 때면 화로를 더욱 가까이 하면서 화자는 문득 언젠가 보았던 나무 하나를 떠올린다. 먼 산 뒤 바위 옆에 홀로 선. 오늘 같이 눈 내리는 어둑어둑한 저녁이면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눈송이가 굵어지면 아마도 점점 하얗게 변해가고 있을 테지. 그 맨질맨질한 마른 잎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내면서.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도 홀로 묵묵히 서서 그 많은 눈을 맞으며 꿋꿋하게 버텨나가고 있을 것이다. 화자는 드물고 굳고 깨끗하다는 갈매나무를 생각했다.
30년대 3대 얼짱 시인이라는 후광이 없어도 백석의 시는 충분히 순수하고 아름답다. 평북 정주의 유년 시절이 담긴 그의 소싯적 언어들은 그 자체로 보물이다. 예민하고 까다로우며 결벽스러웠을 시인. 거칠고 황량한 시대 속에서 얼마나 많은 부대낌과 심적 갈등을 겪었을까. 어지러운 조선을 떠나 만주를 떠돌던 시인에게 시작(詩作) 활동은 이제 스스로를 보듬고 치유하는 의식이 된다. 지치고 병들었던 자아는 이제 시인의 의식 속에서 꿋꿋한 갈매나무로 재생된다. 박시봉방에서 보낸 편지는 시인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로와 다짐의 메시지가 되었다.
나는 내가 가장 가난하고 보잘것없던 시절에 이 시를 가장 많이 읽었다. 가난한 시인의 금싸라기 같은 시어들은 시인 스스로뿐 아니라 가난과 무능함에 몸서리치다 땅굴을 파고 누운 어리석은 영혼들을 꽤나 구제했을 것이다. 물론 시시한 시 한 편으로 영혼의 치유가 될 만한 미욱한 이들에 한해서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여전히 미욱하고 가난한 나는 쓸쓸하고 지칠 때면 명의의 카우치 대신 시시한 시 한 조각을 꺼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