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사랑하다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


글쓰기는 정확해지고 싶은 욕망이다.


신형철의 글을 좋아한다. 그의 글이라면 믿고 읽는다. 문학 텍스트를 자신만의 예리한 통찰과 깊은 사유의 시선으로 꿰뚫어 그에 걸맞는 최적의 인용과 정확한 언어로 부려내는 신형철의 필력은 늘 감탄스럽다. 무엇보다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한 과정 자체 - 그러니까 자기구도적, 혹은 자기성찰적 태도의 견지 - 를 숨기지 않는 이 인간적인 비평가의 태도는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문학에서 영화 텍스트로 확장된 그의 사랑을 실험한 책이다.


이 책은 영화비평(의 형식을 띤) 글들이 (우연한 배치처럼 보이는) 영리한 구성을 통해 마치 하나의 완결된 작품 혹은 주제를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즉 신형철,이라는 하나의 주체가 '삶의 의미'를 묻는 자기 해석 과정에서 자양분을 대줄 최적의 영화들을 끌어들인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특히 책의 후반부를 차지하는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와 <그래비티>에 대한 글들이 그렇다.


우리가 이야기를 읽는 이유 중 하나는, 어떤 이야기도 그 의미가 확정돼 있지는 않기 때문이고 그 덕분에 우리가 그 이야기를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몇 문학 이론가들은 그와 같은 독서가 작품을 다시 쓰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주인공인 그러나 내가 쓰지 않은 이야기를 다시 쓰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그 이야기의 비평가가 되어 그 이야기를 창조적으로 해석하는 길뿐이다. 실용주의의 개념을 빌리자면 그것이 바로 ‘재서술’일 것이다.


- 신형철, <정확한 사랑의 실험>, 마음산책, '<라이프 오브 파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중에서


그는 직업으로서의 비평에 온당한 가치를 부여한다. 번역이 제2의 창조인 것처럼, 비평 역시 '재서술'이라는 형식을 빌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영역이다. 그러나 신형철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에게 '재서술'은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주제가 된다. 그리고 (그의 재서술을 빌어) 텍스트를 읽은 독자들이 다시 각자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해준다. 신형철 글의 탁월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영화(그래비티)는, 삶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는 잠재적 허무주의자들에게, 생명은 그 자체로 긍정돼야 마땅하다는 것을 설득하는 스페이스 시뮬레이션이다.


(…) 결국 텍스트에 대한 모든 해석은 자기 자신에 대한 해석일 뿐인지도 모른다. 돌이켜 보면 2013년 하반기 내가 읽은 텍스트들은 대체로 ‘삶의 의미’라는 주제 둘레로 모여들어 서로 연결되고는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렇게 되기를 내가 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이 와중에 이 영화를 보았으므로 여기서도 같은 질문을 발견(투사)했을 것이다. ‘삶에는 의미가 있는가, 있다면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이 영화가 내게 준 대답은 이것뿐이었다. ‘질문의 층위를 삶이 아니라 생명으로 바꾸면, 생명이 긍정되는 데에는 이유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살아 있으니까, 계속 살아야 한다.’ 나는 이 대답에도 역시 만족하지 못한다. 어쩌면 애초에 질문 자체가 틀린 것일까. 나쁜 질문을 던지면 답을 찾아낸다 해도 그다지 멀리 가지 못하게 되지만, 좋은 질문을 던지면 끝내 답을 못 찾더라도 답을 찾는 와중에 이미 꽤 멀리까지 가 있게 된다. 일단은 좋은 질문이라고 믿고 계속 물어나갈 수밖에 없겠지. 나는 내 생명의 절반을 살았다. 나 역시 어떤 식으로건 나를 다시 낳아야 할 때가 되었다고 느낀다.


- '<그래비티>, 허무주의자들을 위한 스페이스 시뮬레이션' 중에서


책머리에서부터 책의 마지막 장까지, 신형철 표를 단 글들은 통째로 인용하고픈 문장들로 가득하다. 왜 그럴까. 정답은 이 책의 제목에 있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 그는 그가 해석의 대상으로 삼는 텍스트를 ‘정확하게 사랑하고픈’ 사람이다. “비평은 함부로 말하지 않는 연습”이라고 그가 밝혔듯, “함부로 말하지 않기 위해 늘 작품을 세워두는 글쓰기”를 지향하는 그가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섬세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을 품고 썼기 때문일 것이다. 내게 신형철은 '정확하게 쓰기' 위해 가장 애쓰는 사람이다. 탁월한 글은 그 결과이다.


신형철의 첫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2008)가 문학에 대한 그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묶은 책이었다면, <정확한 사랑의 실험>(2014)은 ‘서사’라는 공통 축을 놓고 영화 텍스트로까지 외연을 넓힌 실험의 확장편이다. 이전의 책에서 탁월한 문학비평가의 필력을 통해 조명된 다양한 서사를 읽었다면, 이번 책에선 ‘신형철’이라는 해석자의 개인적 통찰과 인식의 깊이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자칫 현학에 빠지기 쉬운 비평의 거품을 산뜻하게 걷어낸 얼굴로.


나는 해석자다. 해석자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다. 해석은 기술이기 때문에 비평은 직업이 될 수 있다.


(…) 더 좋은 해석과 덜 좋은 해석은 있다. 내게 이를 가르는 기준은 ‘생산된 인식의 깊이’다. 해석으로 생산된 인식이 심오할 때 그 해석은 거꾸로 대상 작품을 심오한 것이 되게 한다. 이런 선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해석이 좋은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석은 작품을 다시 쓰는 일이다. 작품을 ‘까는’ 것이 아니라 ‘낳는’ 일이다. 해석은 인식의 산파술이다.


모든 해석자는 ‘더’ 좋은 해석이 아니라 ‘가장’ 좋은 해석을 꿈꾼다. 이 꿈에 붙일 수 있는 이름 하나를 장승리의 시 <말>의 한 구절에서 얻었다. “정확하게 사랑받고 싶었어.” 내게 이 말은 세상의 모든 작품들이 세상의 모든 해석자들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해석자의 꿈이란 ‘정확한 사랑’에 도달하는 일일 것이다.


- 같은 책, '책머리에' 중에서


영화라는 텍스트를 대상으로 그가 부리는 언어, 즉 문장들은 ‘정확해지고 싶은 문학적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다. 영화평론가가 아닌 문학평론가로서 <씨네21>에 연재한 글을 중심으로 엮은 이 책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그 매력이란, 그가 연재 지면에 늘 달았다는 추신처럼 “영화를 일종의 활동서사로 간주하고, 문학평론가로서 물을 수 있는 것만 겨우 물어보려는” 태도 즉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있을 것이다.


문학(글쓰기)의 근원적인 욕망 중 하나는 정확해지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래서 훌륭한 작가들은 정확한 문장을 쓴다. 말하고자 하는 바의 본질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다른 문장으로 대체될 수 없는 문장을 말한다. (…) 결국 문학은 언제나 ‘근사치’로만 존재하는 것이리라.


- 같은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 <로렌스 애니웨이>와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중에서


그는 자신의 글들이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표방했으나 '부정확한 사랑의 폐허'로 보일 수 있음을 겸허하게 내비친다. 그러나 적어도 내겐, 그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문학이든 영화든 텍스트를 대상으로 삼는 신형철의 글은 ‘정확한 사랑’에 대한 구애 더 나아가 텍스트를 기반으로 떠나는 구도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첫 번째 평론집(2008)과 두 번째 평론집(2014)을 통해 ‘직업적’ 글쓰기에 충실했던 - 텍스트 해석에 정확한 사랑을 부여하고자 했던 - 신형철을 만날 수 있다면, 그의 첫 번째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2011)는 산문 형식이 주는 보다 자유롭고 개인적인 층위에서 그가 어떤 시선으로 비평의 문장들을 꾸리는지 엿볼 수 있는 매력적인 장이 된다.


나는 그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의 실험을 통해 내 나름의 실험을 꾸려가고 싶다는 생각을 키우게 된다. 그가 섬세하게 드나든 텍스트를 통해, 그 텍스트를 기반으로 길어 올린 그만의 텍스트를 통해, 이제는 나만의 텍스트를 끄집어내고 싶은 욕구랄까.


“결국 텍스트에 대한 모든 해석은 자기 자신에 대한 해석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그의 말은 정확하다.


우린 모두 ‘자기 비평’에 오롯이 책임이 있는 비평가들일지도 모른다.


정확해지고 싶다.


(2017)


"우리는 과거의 체험을 어떤 식으로건 서사화하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저명한 실용주의자 리처드 로티는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1989)에서 자신의 과거를 바로 자신의 언어로 '재서술'하는 행위의 중요성에 대해 열렬히 강조한 적이 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읽고 해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비평가일지도 모른다."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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