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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Sep 11. 2022

계속할 것, 담담히

호스피스 입원 첫날


- 계속해.


아버지의 입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온 소리. 이제는 귀를 바짝 가져다 대야만 아버지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C 문학 계간지 신인평론상 심사평에 나의 이름이 박힌 것을 보여드리고 난 직후였다.


호스피스 입원 첫날. 욕창 방지 에어 매트가 깔린 침대가 불편해 밤새 뒤척거리다 새벽에 잠든 아버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모르핀 때문에 지속적인 통증은 안정된 듯도 하지만 깨어 있는 시간보다 잠에 취해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밤 9시면 소등. 깜깜한 병실. 접이식 의자를 펼친 보호자용 간이침대는 다른 병원의 것보다 좁고 불편하다. 누워서 천장의 정사각형 흰 타일을 바라본다. 몸은 피곤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몇 날 며칠 응급실 의자에 밤새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몇 년 전 기억. 술에 취해 욕설을 쏟아내며 고함을 지르는 외상 환자. 혈변을 콸콸 쏟아내는 환자. 고통에 일그러진 몸들이 아우성치는 장면들. 죽음에 가까이 다가서 있던 사람들. 바로 눈앞에서 생판 모르는 타인의 임종을 목격한 밤도 있었다.


당시 어쩔 수 없이 지켜본 타인의 임종 장면. 곧 숨을 거두는 고령의 여자 환자 주위로 가족들이 빙 둘러선다. 엄격한 출입 통제 속에서도 의사는 유일하게 (바깥에 대기 중이던) 모든 가족을 소환해 임종을 지켜보게 한다. (물론 코로나 사태 이전의 일이다.) 커튼이 쳐지고. 울음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임종하셨습니다. 곧이어 의사의 선고가 들리고. 가족들은 응급실 한가운데서 맞이하는 이 황망한 죽음에 마음 놓고 오열하지도 못한다. 비어져 나오는 울음소리를 가만히 들으며. 나는 죽어가는 자의 앞에서 억누르는 울음과 슬픔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타인에게 전염되는지를 온몸으로 느낀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피부에 돋아난 소름을 털어내 보려 한다. 죽음의 선고. 블랑쇼의 <죽음의 선고>를 떠올린다. 블랑쇼는 어떤 계기로 이 작품을 쓰게 되었을까.


복도로 조용히 빠져나온다. 그간 거쳐온 여러 병원의 복도가 두서없이 떠오른다. 극도의 신체적 피로와 극도의 정신적 각성이 교차하던 곳. 지금은 호스피스 병동. 여러 복도를 거쳐 머지않아 호스피스 복도에 있게 될 거라는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때가 오기 전에. 나의 글쓰기를 유독 응원해주던 아버지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의식이 또렷이 있을 때에. 연초에 생애 처음으로 써본 평론이 중앙일간지 신춘문예 본심에 오르고 심사평에 딸의 응모작이 언급되었을 때. 아버지는 기뻐했고(물론 담담히) 이렇게 말했다.


- 계속 써.

- 결과에 상관없이?

- 응, 결과에 상관없이.

- 왜요?

- 네가 좋아하는 거니까.


나는 ‘왜’라는 우문을 던졌고. 그는 ‘좋아하는 것이니까’라는 현답을 남겼다. 그때도 아버지는 ‘계속할 것’을 요구했다. 계속해야 하나. 계속할 수밖에 없나. 계속할 것인가.


새로운 도전에 나선 동생이 최근 복잡다단한 심경과 상황에도 불구하고 “계속해보려고”라는 말을 했을 때.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를 떠올렸다. 나는 타인에게 계속해볼 것을 격려하면서. 왜 스스로는 계속해보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가.


다시 병실. 아버지가 급성 통증을 호소한다. 추가 진통제를 투여한 후 다시 잠에 빠진 아버지는 고요하다. 아버지 침상 건너편 자리에서 다시 울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아버지 연배의 남자 환자. 어제는 그의 아내가 연이어 울음을 터뜨렸다. 섬망 증세로 자신에게 욕설을 퍼붓는 남편을 끌어안고 울기도 했던 그녀. 마침 병실에 들어선 사회복지사가 다급하게 그녀를 위로했고. 나는 밤새 그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 커튼 너머로 들려오는 흐느낌은 오전에 교대한 큰딸의 것이다. 아버지, 아버지. 딸의 눈물은 몇 분째 멈추지 않는다.


덩달아 눈물이 나오려 한다. 나는 담담하다. 아직까지는. 아버지가 그러한 것처럼. ‘계속할 것’을 생각하는 것을 계속할 수 있는 한.


(2022-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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