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럼에도 불구하고 Oct 29. 2022

죽어가는 자를 위한 돌봄

호스피스에 대한 오해와 진실

호스피스는 잘 죽는 법이 아닌 "인생의 마지막까지 잘 사는 법"에 관한 것입니다.


- 카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권역호스피스센터 김대균 센터장


# 호스피스에 대한 선입견


아버지가 호스피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막내 외삼촌이 전화를 했다.


- 호스피스? 거기 그냥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잖아.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호스피스를 '죽기 직전 들어가는 곳'으로만 여겼다. 시어머니가 갑작스레 폐암 말기를 진단받고 우여곡절 끝에 호스피스에 입원하기 전까지는.


폭염이 유난했던 , 더위와 식욕 부진, 그리고 서서히 늘어가는 통증으로 집에서 나뭇가지처럼 말라가던 어머니는 호스피스에 입원한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여명이 2개월밖에 남지 않았으니 호스피스 입원을 권유한다는 주치의의 말은 처음에 수용되지 않았다. 의료진과의 대화에서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남편과 나는 호스피스 입원을 여러  권유하는 의사의 의도를 의심했다. '호스피스'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긍정적이지 않은 때이기도 했다. 많은 고민과 논의 끝에 어머니는 집에서  달가량 지내다 결국 호스피스에 원하게 되었다. 집에서는 통증 케어를 감당할  없었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입원 후 식욕과 활기를 되찾았고, 아프기 전 모습으로 살이 오르기까지 했다. 매일 퇴근 후 찾아오는 아들 내외가 있었고, 주말마다 가족들이 병원에 모여 북적이는 시간을 보냈다. 휠체어로 정원을 산책하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꽃화분을 만들고, 발 마사지를 받았다. 지난 사진들을 보며 함께 웃었고, 부쩍 가까워진 간호사들과 농담을 주고받았다. 백일홍 가득 핀 배롱나무 밑에서 손자와 사진을 찍기도 했다. 안정적인 통증 관리와 친절하고 세심한 케어 덕분인지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특별한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 뒤, 어머니는 갑작스러운 고열로 섬망에 빠지면서 임종실로 옮겨졌고,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뒤 남편과 나는 별도로 시간을 내어 호스피스를 다시 방문했다. 담당 주치의와 간호사들에게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어머니 생애 마지막 시간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준 그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웠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호스피스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바꾸었다. 의학적 판단과 치료 대상으로만 환자를 바라보는 일반 병원과 달리, 호스피스는 죽어가는 자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살피고 돌보는 전문 인력들이 모인 곳이다.


# 돌봄이라는 행위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엔 저자가 알츠하이머로 죽어가는 어머니를 돌보는 장면이 간결하게 묘사된다.


“그녀는 병원에서 빠져나가려 했고, 간호사들이 그녀를 휠체어에 묶어두었다. 난생처음, 나는 그녀의 의치를 씻어 봤고, 손톱을 청소해 줬고, 얼굴에 크림을 발라 줬다.”


- 아니 에르노, <한 여자>, 정혜용 옮김, 열린책들, 2012, 97쪽


어느 날 무릎을 세우는 통에 성기를 내보이며 잠든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저자는 울기 시작한다. 그 무엇에도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기저귀를 차고 점점 더 주변 존재들을 분간하지 못하는, 걸음이 느려지고 넘어지기 시작하는, 가진 에너지를 온통 입에 집중시키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


나의 아버지도 다르지 않았다. 섬망이 악화되면서 그는 병원에서 빠져나가려 했고, 콧줄을 빼려는 그의 손에 간호사들은 손싸개를 씌웠다. 난생처음, 나는 그의 용변 후 뒤처리를 도와주었고, 소변통에 소변을 받았고, 피부 건조염으로 갈라진 발과 다리에 의약용 크림을 발라주었다.


호스피스 도우미 샘들(그들은 ‘호스피스 전문 보조 인력’으로 소위 통념적 간병인과는 구별된다)은 어떤가. 시간마다 기저귀를 체크하고, 배액과 용변 양을 기록하고, 매주 한 번씩 (목욕의자나 목욕 침대에서) 목욕을 시켜주고, 욕창 환자를 위해 체위를 변경해주고, 안정을 취하지 못하는 환자의 곁에서 손을 잡아주고, 친절하게 말을 건네고, 의사와 간호사들이 미처 챙기지 못하는 환자의 불편한 점을 해결해준다.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을 헤아려 조언을 건네고, 말벗이 되어주기도 한다. 나는 '간병'이라는 말보다 '돌봄'이라는 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간병과 돌봄의 차이는 '환자를 대하는 마음'에 있다. 간병이 '의무'에 가까운 뉘앙스라면, 돌봄은 '소명'의 느낌에 가깝다. 오전-오후-야간 3교대로 돌아가는 도우미 샘들과 가까워지면서 나는 그들을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한쪽에 '환자를 대하는 마음'이 있다면, 다른 한쪽엔 '환자가 응하는 마음'이 있다. 주는 쪽이 진심이어도 받는 쪽이 이를 거부한다면 마음과 마음은 통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호스피스에 입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수요일, 의사 P가 상주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프리젠테이션 세션을 열었다. 주제는 '통증 관리'였지만, 호스피스 입원 환자를 돌보는 것에 관한 전반적인 교육 프로그램에 가까웠다. P는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의 저자이기도 하다. 항암 불가 판정 이후, 호스피스를 알아보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P의 이 책은 내가 (그가 재직 중인) C 호스피스로 마음을 굳히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40여 분에 걸친 프리젠테이션은 내가 그의 책을 통해 받은 인상과 다르지 않았다. "인간의 삶을 생존과 실존으로 구분하고, 생명 역시 목숨과 존엄이라는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하여 인간다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좇는" 태도. 프리젠테이션 내용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그가 C 병원으로 옮긴 후 처음 맡았던 환자 S에 관한 사례였다. 말기암과 같은 불치병을 대하는 환자의 심리적 단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처음엔 부정하고, 마음을 열지 않다가, 변화를 겪으며 수용하고, 주변에 감사하게 되는 것.


아버지의 경우, ‘부정’의 단계는 없었다. 그는 암 의심 소견을 들은 4월 초부터 이미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으니까. 그는 처음부터 ‘안정’ 단계에 있었지만, 호스피스에 입원 후엔 가족 외에 마음을 열지 않았다. 나와 동생 이외엔 도우미 샘에게 먼저 도움을 요청하는 법이 없었고, 우리가 없을 때에는 어떻게든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다. 자존심 강한 아버지가 느꼈을 모종의 수치심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의 몸은 갈수록 쇠약해졌다. 아버지는 한결같은 태도로 환자들을 돕는 도우미 샘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면도와 목욕 서비스를 해주는 샘들에게 직접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되었고.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의료진에게도 고맙다는 진심을 전했다. 기타로 노래를 불러주는 음악치료사 샘에게 선뜻 노래를 청해 들으며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평생 타인에 대한 경계심과 의심을 늦추지 않았던 아버지를 생각할 때 이는 놀라운 변화였다. 매일 발 마사지 봉사를 하러 방문하는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의구심 가득한 눈빛은 어느새 그들을 기다리는 시간으로 바뀌었고, 다리를 주물러주는 나이 지긋한 남자 봉사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왜 미처 이런(봉사할) 생각을 하지 못했나’ 하는 후회 섞인 표현을 비치기도 했다. 의심과 비판 모드로 일관하던 아버지는 점차 '고맙다'는 표현을 자주 하게 되었다.


9월 중순. 아버지는 내게 손을 내밀며 잡아달라고 했다. 내가 먼저 아버지 손을 잡아드린 적은 많았어도, 아버지가 먼저 손을 잡아달라고 내민 것은 처음이었다.


- 최근. 이상해. 자꾸 누군가 손을 잡아주면 좋겠어. 의지하고 싶어.


교육 시간 막바지에 의사 P가 한 말이 생각났다.


- 절대 환자를 혼자 두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호스피스 병동의 방침입니다. 보호자들은 지치고 힘들겠지만, 환자를 생각할 때, 지금 가장 가치 있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세요.


결국 핵심은 ‘곁에-함께-있기’였다.


# 죽음이 아닌 삶에 대한 이야기


P는 그의 저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에서 임종실 없는 병원이 죽음에 대해 얼마나 불친절한 공간인지 설명한 바 있다. 그리고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소개한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기관들이 많지 않던 2013년대에 일반인과 의료인 간의 임종 장소에 대한 선호도 조사였다. 일반인 중 임종 장소로 호스피스 완화의료 기관을 선택한 경우는 드물었지만, 의사들은 임종 장소로 호스피스 기관을 가장 선호했다는 것.


호스피스 시설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생애 말기의 고통을 최대한 줄여주고,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임종을 돕는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고통 없는 죽음과 연명의료를 받지 않을 가장 확실한 임종 장소로 우리나라에 호스피스 보험제도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호스피스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 박중철,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 홍익출판, 2022, '의사들은 어떻게 죽기를 원할까?' 중에서


호스피스는 얼핏 죽음의 공간으로 보인다. 틀린 말은 아니다. 외면하고 배제했던 죽음을 마주하는 곳.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그곳에서는 죽음이 아닌 삶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것을. P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듭해서 겪게 되는 환자들의 죽음은 한때 나를 허무주의에 빠지게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사색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얻은 깨달음은 삶의 본질이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죽음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 기억 속에는 죽음은 '사건'이 아니라 환자분들이 내게 보여주었던, 그리고 나와 함께 만들었던 삶의 마지막 이야기로 저장되어 있다.


- 같은 책, '에필로그' 중에서


나는 아버지 삶의 마지막 이야기를 함께한 사람이었다.


(2022-9-7 ~ 2022-10-29)


https://naver.me/5MU6LkpH


이전 09화 희미해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