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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위나 Jun 27. 2020

워킹맘시(詩)

내 머리엔 풀이 자란다







내 발가락 속에는





내 발가락 속에는 뭔가가 있지

한쪽 엄지 발가락 안에는 종이

다른 한쪽 발가락 안에는 구름이

언제인지 모르게 꽁꽁 숨어있지


내 발가락 속에는 뭔가가 있지

오른쪽 엄지발톱에는 빨간색 페디큐어를

왼쪽 엄지발톱에는 파란색 페디큐어를

아무도 모르게 꼭꼭 숨기고 덮어뒀지


내가 걸을 땐 종소리가 흘러나와

내가 걸을 땐 구름처럼 몸이 가벼워

햇빛보다 먼저 눈을 뜨는 아침에

구름처럼 가볍게 일으켜 세워주고

달빛보다 늦게 잠드는 까만 밤에

은은한 종소리로 나를 재워주지


세상은 나의 종소리를 듣지 못해

구름처럼 들뜬 나를 알아채지 못해

언젠가 지구 반대쪽

노을의 끝을 여행하게 된다면

내 발가락 속 종소리는 하늘 가득히 물결치고

내 발가락 속 구름은 노을 사이로 피어오를 거야


내 발가락 속에는 뭔가가 있지

꼭꼭 숨겨두고 오늘도 노을을 바라보며

사뿐사뿐 종종거리며 걸어 다니지









그녀의 허리

      



그녀의 허리에 해가 뜬다
그녀의 허리에 새벽이 솟아난다
그녀가 허리를 굽힐 때마다 해는 숨고
그녀가 허리를 펼 때마다 해는 눈부시다
그녀가 허리춤에 해를 차고
동쪽에서 남쪽으로 일을 나간다
허리에서 흐르는 땀은 비가 되고
허리가 움직이는 각도는 산이 된다
일을 마친 그녀가 서쪽으로 돌아오면
해는 그녀의 옆구리로 넘어가고
허리에 숨었던 구름은 붉은 앞치마가 된다
저녁밥을 짓는 그녀의 반대쪽 옆구리에
고즈넉한 초승달이 떠오른다
그녀의 허리에 저녁이 번진다
그녀가 설거지를 하면 달이 얼굴을 씻고
그녀가 다림질을 하면 달이 얼굴을 편다
밤이 깊어 그녀가 잠이 들면
달은 밤하늘 위로 날아오른다
허리에 해달을 품고 사는 그녀
해달을 품어야만 꼿꼿이 사는 그녀

 그녀의 오목한 가슴에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담겨있다                   









땀나는 여자




여기 땀나는 여자가 있다

숨을 쉬어도 땀이 나오고

밥을 먹어도 땀이 흐르고

잠을 자도 땀나는 여자가 있다

눈물이 땀으로 흐르는 여자

소리 내어 울어도 울어도

눈물 대신 땀으로 온몸을 적시는 여


여기 땀나는 여자가 있다

심장 땀으로 가득 찬 여자

혈관 속으로 땀이 흐르는 여자

자궁의 양수가 땀으로 머무는 여자

땀이 흘러 시냇물을 이루고 강이 되

 바다로 흐르는 여


여기 땀나는 여자가 있다

흘린 땀이 바다를 이룬 여자가 있다

그 여자의 바다에는

땀을 먹고사는 심해어들이 있다

그들은 곧 바다 위로 올라올 것이다

더 이상 그 여자가 흘릴 땀이 없기에


여기  땀으로 변해버린 여자가 있다

땀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여자가 있다









비 오는 날



내 머리엔 풀이 자란다

비 오는 날엔 밖에 나가서

빗물을 흠뻑 적셔줘야

풀들이 싱싱하게 자란다.


내 머리인 풀이 자란다

바람 부는 날에도

머리의 풀이 흩날리도록

바람을 맞아줘야 풀들이 억새 진다.


내 머리엔 풀이 자란다.

낮에는 햇빛에 광합성을 하고

밤에는 별빛 달빛을 머금고 잠을 자야

풀들이 반들반들 윤기가 난다.


내 머리엔 풀이 자란다.

눈 내리는 겨울엔 눈꽃을 만들어

내 머리의 풀들은 나를

왕관 쓴 여왕으로 만들어준다.


비, 바람, 해, 달, 별, 눈을 맞고 풀들은

나비, 벌, 무당벌레, 쇠똥구리 친구들을 사귄다.

내 머리는 어느새 풀 숲 생명 가득해진다.

생명 가득해진 풀숲을 조심조심

머리 꼿꼿이 세우고 돌아다닌다.


내 머리엔 풀이 자란다.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햇빛 쨍쨍한 날 캄캄한 밤

봄 여름 가을 겨울

풀을 키우려 분주히 나댄다.






육아시

https://brunch.co.kr/@weenakim/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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