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어느 선까지 기다려줘야 할까요

by 숙제강박

아이는 자주 선을 넘는다. 언제까지 뛰어다니나 지켜보면 항상 내가 소리 지르며 말릴 때까지 뛰고, 언제까지 먹나 지켜보면 배탈이 날 때까지 먹는다. 쉽게 잠들지 않고 장난만 치다가 밤이 깊어서야 잠들고, 장난도 나나 아내가 어디 하나 부딪혀서 “아야!” 소리를 지를 때까지 점점 심해진다. 아이가 선을 넘는다 싶을 때면 그릇이 간장 종지만 한 나는 아이가 잘못될까 싶은 조바심에 오래 지켜봐 주질 못한다.

하지만 아이가 넘는 선은 내 선이지 아이의 선은 아니다. 내가 더는 못 참겠어서, 내가 피곤해서,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눈치 보여서 아이를 멈추게 한 거다. 사실 객관적인 선이란 게 존재하지도 않는다. 나와 아내의 선이, 또 할머니의 선이, 지나가는 모르는 아저씨의 선이 다 다를텐데 내 선만이 옳고 아이의 선은 그르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이어지다가 아이를 미성숙한 존재로만 대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워졌다. 아이의 선을 내가 정하고 내가 좁히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끝없는 생각과 너른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줄곧 바라왔었는데 아이의 행동을 가장 좁혀놓는 건 언제나 나였다. 아이의 행동은 규제하면서 생각과 마음만 넓어지기를 말도 안 되게 바라왔던 것이다.

육아의 바이블로 일컬어지는 칼 비테의 교육법에서나 영재를 키워내고 있는 부모들은 입을 모아 아이를 진지하게 대하라고 말한다. 아이를 미성숙한 존재로서 바라보지 말고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라고 말이다. 아이의 어처구니 없는 질문도 어른을 대하듯 답변하고, 얼버무리거나 윽박지르지 말 것이며 아이의 호기심에 동참하는 것이 좋은 부모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아이가 미성숙한 모습을 끊임없이 보기 때문이다. 아이는 혼자서 젓가락질도, 목욕도, 양말을 벗는 것도, 차를 피해 비켜서는 것도 혼자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리고 부모가 그런 기본적인 것들을 보조하면서 부모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아이가 미성숙한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아이가 미성숙한 것은 아이의 마음이나 생각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성인보다 나을 때도 많다. 편견 없이 누구에게나 다가가는 모습이라든지 벌레 하나를 들여다보면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편협해진 내 마음을 탓하기도 하는 걸 보면 정말 그렇다. 다만 아이가 미성숙해 보이는 순간은 대부분 아이의 신체능력과 관련된 일이다. 신체적으로 미성숙한 아이를 가지고 그 생각과 마음까지 미성숙하다고 치부해서는 안될 일이 아닌가.

아이를 진지하게 대하고 대하다가 정말 아이가 내 안에서 성숙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면 아이와의 시간도 완전히 다른 성격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일방적인 보육으로 점철된 시간이 아니라 함께 놀고, 함께 세상을 공부하고 서로의 하루를 공유하는 소중한 시간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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