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만 생각하면 경쟁심이 생겨요

by 숙제강박

나는 남들과의 경쟁으로 인해 만족감이나 상실감을 느끼는 시기에서 어느 정도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경쟁에 끝없이 노출돼 온 나로서는 그것이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었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것이 얼마나 나를 좀먹는지 알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생각이 들 때면 의식적으로 그것을 몰아내려 노력해왔다. 그런 연습이 수년간 반복되면서 지금은 그 누구도 오랫동안 질투하지 않고 나보다 나은 점이나 모자란 점이 공존한다는 것을 진정으로 느낀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비천하다고 여기는 삶의 방식을 마주쳐도 어느 정도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을 보면 이제 나의 삶의 방식은 경쟁이 아니구나, 하고 대견해한다. 나이 들어감의 순기능 중 단연 최고다.

문제는 나의 경쟁심이 엉뚱한 곳에서 발현된다는 데 있다. 바로 아이에 대한 일이다. 요즘은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뭐든지 잘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동년배의 다른 아이들보다 뭔가 뒤떨어지지는 않는지 끊임없이 신경 쓰고, 그것을 당장 개선하기 위해 즉각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언어능력이나 신체능력과 같이 내가 노력해서 개선시킬 수 있는 분야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키나 피부처럼 사람의 힘으로 바꾸기 쉽지 않은 분야에까지 그 경쟁심이 녹아든다는 게 문제다. 내가 남들보다 키가 작거나 피부가 좋지 않은 것에 대해서 별 감정을 느끼지 않는 내가 왜 유독 아이에게만 그 잣대를 엄격히 들이대는 것인지 이상한 노릇이다.

왜 아이에게만 유독 경쟁적인지에 대해 가능한 답변 중 하나는 내가 경쟁심을 버렸다는 사실 자체가 거짓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수 십 년 동안 만들어진 그대로 여전히 경쟁심의 노예이며, 경쟁이 내 삶의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고, 나는 심지어 육아라는 면에서도 다른 부모들을 누르고 이기고 싶어 하는 것이다. 마치 아이가 훌륭하게 자라는 것이 모두 육아의 결과물인 것처럼 말이다.

또 가능한 답변은 내가 남들과 경쟁하고자 하는 종목은 더 이상 나 스스로가 아니며, 나는 은퇴하고 코치가 된 전직 운동선수처럼 아이를 새로운 선수로 삼아 경쟁에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틱한 변화나 큰 발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내 인생에 있어서는 이제 경쟁을 포기하고, 가능성이 큰 아이에게 배팅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능한 답변은 아이의 윤택한 미래를 위해 없는 경쟁심을 억지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는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세상의 무서움과 냉혹함을 아는 나로서는 아이의 성공적인 삶을 만들어 줄 의무가 있다. 그래서 나는 실제로 아이를 가지고 경쟁하고 싶지 않지만 아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경쟁에 내몰고 있는 것.

그 어떤 답변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특히 두 번째와 세 번째 답변은 끔찍하다. 두 번째 답변은 내 인생을 부정하고 내가 못 이룬 것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전형적인 못난 부모를 보는 것 같아 그렇고, 세 번째 답변은 나를 왜 이렇게 경쟁적으로 키웠냐는 아이의 원망에 대한 중년 아버지의 슬픈 변명 같아 그렇다. 차라리 모든 잘못의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리는 첫 번째 답변이 가장 양심적으로 느껴진다.

내가 아이에게 가장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은 나의 경쟁심이다. 아이를 지금의 교육 시스템에 편입시켜 당연한 듯이 줄 세우기를 배우게 하고 싶지 않다. 삶의 다양한 방식을 인정하고 그 어느 삶도 우월하거나 비참하지 않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다. 그래야 내 아이가 그 어떤 삶을 살더라도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경쟁심의 문제에서도 육아의 가장 큰 원칙은 어김없이 적용되나 보다.

“아이를 바꾸고 싶다면 지시하는 대신 내가 바뀐 모습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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