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의 시대다. 통계자료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주위에 아이를 낳는 부모가 손에 꼽힐 정도인 것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아이 없는 주위 부부들의 이유를 들어보자면 가장 큰 것은 역시 주거 안정, 그다음은 경제적 문제다. 주거도 경제적 문제 중 하나이므로 결국 출산은 돈의 문제구나, 싶다. 돈, 즉 경제적 효율성의 잣대로 보자면 아이를 낳아서는 답이 없다. 밥 숟가락만 하나 더 놓는다고 애를 키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아이를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대로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경제적 지원과 심리적, 정서적 안정, 올바른 인성교육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아이를 낳는 것이 왜 그토록 거대한 숙제로 다가오는지 알 것도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이들은 있다. 경제적 여유가 남들만큼 없더라도 말이다. 무엇을 위해 그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서 아이를 낳는다는 말인가. 단지 본능에 충실해서인가 아니면 걱정이 없는 성격이라서인가. 어쨌든 나도 그 대책 없는 사람들 중 하나이므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의 좋은 점을 몇 가지 이야기해서 출산율을 높이는데 미약한 힘을 보태보기로 한다. 물론 경제적인 면에서는 거의 좋은 점이 없으니, 구차하지만 심리적인 면, 특히 시간에 대에서만 말해보기로 한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 중 가장 좋은 것은 세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즉, 시간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온갖 미디어에 나오는 좀처럼 늙지 않는 연예인들과 또래답지 않은 젊은 취향을 유지하고 있는 노인들의 소식에 많은 이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시대가 아닌가.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온갖 시술과 수술이 난무하고 나이 든 이들은 꼰대 소리가 듣기 싫어 기를 쓰고 젊은이들의 유행어를 배워보는 시대.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 시간을 거스르려는 시도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우선 내 외모나 취향을 젊게 유지하려는 노력은 육아에 밀려 설 자리가 없다. 대신 올바른 부모라면 좋은 부모로서의 역할이나 자세에 대해 우선적으로 고민한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러다 보면 시간의 흐름을 비관하며 거스르려고 하지 않게 된다. 시간은 나와 아내를 늙게 하지만 또한 아이를 자라게 할 것이므로 더 이상 거슬러야 할 대상이 아니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성인이 되어 다음 세대를 이끌 것이고, 우리 세대는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물려주고 멀찍이 서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시간은 아이를 포함한 우리 가족이 행복한 미래를 위해 자연히 받아 들어야 할 순리고 더 지혜로워지기 위해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할 첨가제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자연의 섭리임을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또 하나는 다른 시간의 속도를 동시에 체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의 시간은 어른보다 빠르게 흐른다. 1년 전의 영상을 돌려 보면 나와 아내는 다를 것이 없는데 아이는 그 사이 말을 배우고 걸음이 익숙해졌다. 누군가는 이런 걸 보면서 ‘빠른 아이의 시간만큼 내가 빠르게 늙었군.’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아이의 시간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한다. 생명이 만들어진 뒤 온전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면 오히려 시간의 개념이 받아들이기에 따라 다른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고군분투에서 놀랍게도 내가 앞으로 나아갈 동기를 부여받는다. 그런 눈으로 어른인 나의 시간을 지켜보면 시간은 더 이상 느리게 흐르지 않는다. 내가 헛되이 보내는 얼마간의 시간은 아이가 엄청나게 변화할 수 있을 만큼 빠르게 흐르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은 본성에 충실한 삶이라고 했다. 물론 나는 인간 종의 유일하고 보편적인 본성에 대해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이 아이를 낳아 유전자를 퍼뜨리는 것이다,라고 말해봤자 미시적으로 살펴보면 아이를 낳지 않아야 할 이유들은 차고 넘치는 복잡한 시대니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지 개개인의 본성이다. 내 본성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맞다면, 또 심리적인 만족을 경제적인 만족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본성이라면, 아이는 훌륭한 본성의 발현이 될 수 있다. 물론 내 본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 현재 본성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적인 장벽이 마음속에서 실제보다 더 높고 견고하게 부풀려져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봤으면 한다. 출산율이 이렇게 낮은 건 인류 역사상 대기근이나 전염병, 전쟁 말고는 처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