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사전적으로 “믿음의 대상을 굳게 믿고 가르침을 지키며 그를 따르는 일”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능력과 열심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주시는 은혜를 덧입는 힘과 능력이 함께 하여야 함은 믿는 자 모두 잘 인지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전도를 내세우며 이야기하기 이전에 자신의 믿음 그 자체에 대한 철저한 점검을 통하여, 자신의 영을 제대로 살리어 내며,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능력이 발휘되므로 인하여,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영의 사람(예비의 천국 시민)이 되어야함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에 따르는 결과로 성령의 열매는 충실케 되며, 더욱이 세마포는 깨끗게 되어 점과 흠, 티가 없는 상태로 유지되므로, 구원의 확신이 자신의 마음 판에 확실하게 각인될 것입니다. 시험과 연단을 통하여 자신의 믿음을 단련하심을 통하여, 승리하는 믿음으로 바꾸어 주실 것을 굳게 믿고 말씀과 기도, 예배를 통한 찬양 경배를 자신의 삶속에 살려내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세우시므로 인하여 우리가 따라야만 하는 규례(법, 규범)를 통하여 심판과 상 주심, 쓰임이라는 거룩한 절대적 기준과 표준을 한시라도 놓아 버리거나, 잃어버려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를 범하는 많은 경우에 있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믿음의 질에 대하여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간혹 해보게 됩니다. 주님의 뜻대로 산다고 자부하는 자들도 주님께서는 “주여 주여 하는 자들”로 규정하시며 비유하심에는 서로 거의 똑 같은 신앙생활의 범주 안에서도 그 신앙의 단계와 방향, 그리고 믿음의 질 자체를 세밀히 살펴보시며 측량하고 계신다는 것을 관과 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어렵고 무거운 신경쓰기 싫은 대목이지만, 주님께서 참 신앙과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비교하심을 잘 살펴보면, 주님께서는 절대적 기준의 척도를 지니시고 그의 나라와 의에 대한 뜻하심에 근접할 수 있어야함을 깨닳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우리 주위에 믿음의 선진들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이 꼿꼿하게 주님만을 의지하는 자세를 통하여, 우리는 믿음만을 위하여 순교도 불사하는 믿음의 굳건함을 자신의 것으로 차용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께 온전히 의탁함에 반절만 신경쓰고, 반은 세상에 걸쳐 놓은 것들의 방향을 어떻게 보정(교정)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 회개함과 동시에 거두어 제자리 매김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말씀은 영(靈)으로 시작하여 영에 대한 풍성함을 제공하고 있지만, 인간들은 죄로 인하여 영에 대한 두려움과 그에 미치지 못할 것에 대한 막연함을 통하여 그 실체에 다가가려는 노력조차도 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일하시며, 기도하기를 원하심도 각자의 영을 강성하게 이끌어주시기 위함임을 깨달아야함에도 기도도 대충하며, 영에 대하여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무지함을 지속하는 것이 인간들일 것입니다. 영이 제대로 열리거나, 영에 대한 민감함이 있어야 성령의 인도나 마귀/사탄의 역사를 체감적으로 인식할 수 있을 터인데, 영의 가난함과 죽어감이 무엇인지?는 도통 모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두렵고 떨림과 신령과 진정으로 여호와를 경외함에 대하여 기도의 분량이 차도록 지속하여야 하며, 하늘에서 이루신 것 같이 땅에서 이루시려함이 무엇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확보하여 힘주시기를 갈구하며 우리는 오늘도 헐떡이며 쫒아가야 할 것입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심이 꼭 안 믿는 영혼만을 말씀하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만이라도 제대로된 온전한 믿음의 자녀가 되도록 “승리하는 로드맵”을 실천하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