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2022
미국으로 이주한 지 올해로 22년째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식구가 함께 오기는 힘들었다. 한번 올 때마다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 데다 맞벌이 부부이니 직장에서 동시에 휴가를 한 달씩 받기도 쉽지 않았다. 귀한 휴가를 받아 한국을 와도 여러 도시를 돌며 친척집에 인사하다 보면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국내여행을 해본다는 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친구 부부가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여행을 한다 해서 부러워만 했다. 이번엔 22년 만에 처음으로 우리 부부가 함께 방문해 함께 돌아간다. 나날이 연로해지는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이번 방문의 첫 번째 목적이지만 그 사이사이 내나라 산천도 돌아볼 수 있길 희망한다.
한국 방문 동안 남편은 미국 시간에 어느 정도 맞춰 일하느라 한국시간 새벽 5시부터 오후 1시까지 일하기로 했다. 직장일이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수시로 인터넷 연결이 끊기는 미국집보다 통영 숙소의 인터넷 속도가 몇 배나 빨라 일하기가 오히려 수월했다. 세계 최고인 한국의 IT시스템 저력을 한국 방문 내내 실감했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공항의 무료 인터넷 속도가 비싼 돈을 지급하며 사용하는 미국 가정 인터넷 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오후 1시까지 남편이 일하는 동안 나는 글을 쓰고 사진 정리를 하고 그날 구경할 곳을 찾아보았다. 양가 식구들이 방문하기 전 사전 답사인 셈이다. 통영 숙소를 에어비엔비를 통해 예약했는데 한 달 렌트에 1500달러 정도였다. 방이 두 개에 거실과 부엌이 제대로 갖춰진 빌라인데 예상보다 위치나 시설이 좋아 만족도가 높았다. 한려수도의 바다와 섬 경치가 거실창을 가득 채우는데다 언덕을 내려가면 바로 중앙시장이 있고 강구안과 그 주위 동네가 한눈에 보여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좋았다.
렌트카는 먼저 방문한 친구가 경차인 Ray를 추천해주었다. 주차란이 심한 한국에 주차하기도 좋고 고속도로 통행료도 반액이었다. 고속도로 통행료 자동페이 시스템인 하이패스를 구입하니 인터체인지에서 통행료 지불을 위해 따로 줄을 서지 않아서 편리했다. 관광지에도 경차 주차장이 따로 있는 곳이 있어 좋았다. 차는 작지만 안이 넓어 한 달 살 짐에 친척들 선물에 가방이 많은 우리에겐 안성마춤이었다. 불편한 점은 하이패스 구입과 충전시 외국 크레딧카드 승인이 잘되지 않아 현금을 써야했다. 게다가 주차장이 대부분 무인시스템에 주차비를 크레딧카드로만 지불하게 되어있어 가끔 외국카드로 결제가 안되서 불편을 겪어야했다.
남편은 이번 방문에 맛집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컸다. 토요일 아침마다 미국집에서 한국방송을 틀면 맛집 소개가 나오곤 했다. 그때마다 군침 돌게 하는 각종 한국음식들을 눈으로만 감상하며 언젠가 한국 가면 맛보리라 했었다. 내가 방문할 곳을 검색하는 동안 남편은 맛집을 검색했다.
매일 아침식사는 장 봐온 걸로 간단히 먹고 점심은 맛집 순례를 하기로 했다. 오늘은 남편이 찾아둔 맛집 리스트 중 하나인 해물뚝배기집을 가기로 했다. 대부분 식당은 최소 2인분 주문을 원해서 한 끼에 둘이 먹기엔 양이 많아 남은 음식은 가져와 저녁거리로 먹으면 되었다. 해물뚝배기는 살아있는 전복까지 넣어 바닷가 음식답게 피조개에 낙지에 싱싱한 해물이 가득이었다. 미국에서 먹던 전복은 살아있는 걸 바로 먹어도 딱딱했는데 신기하게도 한국에선 익히고 조려도 부드러웠다. 거의 냉동 해산물로만 요리하다가 바다에서 막 건져 요리를 하니 국물 맛부터 달랐다.
방문 준비할 때 한국은 오미크론이 위세를 떨어 막 정점을 지나는 중이었다. 이런 시기에 부모님 집이든 친척집이든 장기간 머문다는 게 더 위험하고 민폐인 것 같아 따로 숙소를 정하기로 한 것이다. 아직도 조심해야 할 때라 해서 친구들에게 부담을 줄 것 같아 방문을 알리지 않아 아쉽고도 미안했다.
은퇴하면 전 세계 도시를 한 달씩 살아보자던 꿈을 꾸었는데 공교롭게 코로나 바이러스 덕에 첫 실현을 하게 되었다. 통영에서 한 달 살아 보기가 앞으로 어찌 전개될 지 기대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