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 대해선 교과서에서 배운 통영갓과 나전칠기가 유명하다는 것 외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저 코로나로 집안에 갇혀 계신 양가 부모님이 바닷바람이라도 쐬면 좋겠다 해서 정한 숙소였다.
삼한시대부터 유래를 찾을 수 있는 통영은 조선 선조 37년 1604년 삼도 수군통제영를 두룡포로 옮기면서 통영이라 불리게 되었다. 통영은 시 통폐합 정책으로 과거 충무시와 통영시가 합해져 통영시로 되었다 한다. 시 통폐합으로 유서 깊은 많은 도시가 시의 이름을 잃고 통합되어 아쉬웠다.
대구에서 구마고속도로를 가다 중간에 잠시 지방도로를 타다 고성 IC에서 다시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갔다. 한국에 살던 동안 시댁을 갈 때마다 달리던 구마고속도로는 그사이 편도 2차선으로 넓어져 있었다. 편도 1차선으로 교통정체가 심하던 고속도로가 이젠 사방팔방 길이 뚫려 정체 없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하니 강산이 많이 변한 걸 실감 나게 했다.
통영시 주전골길.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숙소를 찾느라 가파른 고갯길을 힘겹게 올랐다. 그러나 숙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났다. 탁 트인 거실 창으로 보이는 경치가 환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앞엔 미륵도가 병풍처럼 펼쳐지고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는 강구안이 아래로 보였다. 언덕 바로 아래엔 갓 잡아온 활어들이 펄떡이는 중앙시장이 있고 양 옆으로는 과거 망루로 쓰였다는 동포루와 서포루, 뒤로는 북포루가 든든히 자리하고 있었다. 숙소를 나서면 오른쪽으로 세병관이 근엄한 모습으로 바다를 지켜보고 있었다.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 중앙시장부터 찾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저녁 먹거리부터 돌아보았다. 활어시장에는 해산물 식당이 즐비했다. 도다리 쑥국, 매운탕, 대구뽈찜, 멸치회무침, 시랫국, 돼지국밥, 해물탕, 무슨 요리인지는 모르지만 다찌란 음식까지 먹거리가 지천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다찌는 생선요리와 각종 반찬이 나오는 통영식 정식이란다.)
강구안 해안에는 통영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통영꿀빵 집이 지나가는 관광객을 불렀다. 팥빵을 유난히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우선 꿀빵 10개에 만원인 한팩을 샀다. 그리고 봄철에 꼭 먹어야 한다는 계절 음식 도다리 쑥국과 충무김밥을 샀다. 과일전 주인장이 권하는 단짠 맛이 난다는 짭짤이 토마토가 신기해 한팩 샀다.
숙소 주인장이 일러준 대로 3만 원 이상이면 집 앞까지 배달해준다는 코사마트에 들러 물과 반찬거리와 쌀을 배달시켰다. 장터를 한 바퀴 돌며 장을 보고 지름길인 까꾸막(가파른 오르막) 골목길을 숨차게 올라오니 마트 배달이 벌써 집 앞에기다리고 있었다.
음식값은 제법 비쌌다. 도다리 쑥국 일 인분이 만오천원이나 했다. 그러나 미국처럼 팁이 없어 상대적으로 싸게 느껴졌다. 환율도 많이 올라 1달러가 1270원대나 했다. 우리 같은 여행자에겐 좋지만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로 한국도 예외 없이 인플레이션 늪으로 빠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했다.
사람들로 북적일 것 같았던 장터도 코로나 여파로 한산했다. 사람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은 게 아니었다. 지난 2년동안 관광객이 줄어 폐업한 가게가 여기저기 보였다. 한국도 이제 막 격리가 해제되어 앞으로 관광객이 모여들 거란 기대로 상인들은 서로 위로하고 있었다.
장 봐 온 먹거리가 한 상 가득이다. 배가 고팠나 보다. 충무김밥은 20여 년만인 데다 탄생지 본고장에서 먹게 되어 잔뜩 기대하며 저녁상을 차렸다. 도다리 쑥국은 도다리 한 마리가 통째 들어가 있었다. 쌉쌀한 쑥 맛이 입맛을 돋운다. 미국 내집 마당에 심어놓은 쑥보다 더 진한 내 나라 향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