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통영- 태평동성당

5.4.2022

by 류재숙 Monica Shim

미사를 드리려 가까이 성당이 있나 검색해 보았다. 여행 중에 주일을 꼬박꼬박 지키기가 쉽지 않다. 여행 중에 미사 대신 기도로 대신해도 되는 지를 여쭈어 보니 신부님은 신자로서 무엇이 우선인지 생각해 보라 하셔서 미사를 빠지려니 마음 한편이 불편했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맞춰 산다는 핑계로 원칙보다 편리를 좇아 산 것 같아서다. 전통과 원칙의 힘이 변화의 힘 못지않게 신앙생활과 우리네 삶에 영향을 준다는 걸 자주 잊고 산다.


가톨릭 교회를 검색하니 6분 거리에 태평동성당이 나온다. 아침 10시 반에 평일 미사가 있어 일하는 남편을 두고 혼자 나섰다. 숙소에서 나와보니 언덕 바로 아래 하얀 성당 건물이 세병관 옆에 있다. 뾰족한 첨탑이 하늘로 솟는 여느 성당과 달리 반듯한 사각 건물이 낯설었다.


성당 입구에 큰 느티나무가 있고 작은 성모상이 높이 모셔져 있었다. 가파른 입구를 올라 마당에 들어서니 또 다른 성모상이 있다. 처음 보는 성모님 얼굴이다. 아름답고 선이 고운 성모상만 보았는데 이 성모님은 선 굵은 얼굴에 듬직한 몸매를 하고 해녀처럼 씩씩한 모습이다. 안고 계신 예수님 얼굴도 튼튼한 아기 모습이다.


성경에 나오는 여인상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성경에 나오는 여인들은 남에게 의지하는 소극적이고 의존하는 모습이 아니라 대가족을 챙기고 큰 살림을 도맡아 하며 남편이나 식구들에게 직접 천을 짜 좋은 옷을 지어 입히고 좋은 음식을 먹이며 가정을 이끄는 강인한 여인들이라 했다. 그러고 보니 해녀를 닮은 이 성모님의 얼굴이 성경의 여인과 닮았다. 거센 파도를 뚫고 물질을 해서라도 가족을 돌보는 든든한 해녀나 희생된 제물로 바쳐지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하느님을 믿고 남은 제자들과 전교를 계속한 성모님은 강인한 어머니이자 여인이었다.


태평동성당은 작고 아담하지만 10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다. 1945년 말, 일본강점기 시절에는 성당에도 일장기를 게양하게 되었는데, 해방되고 나서 일장기를 더 이상 게양할 필요가 없어 본당 신부는 그 자리에 교황기를 걸었다.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던 ‘두렉’이라는 미군 군종 신부가 이 교황기를 알아보고 산비탈에 있는 신정성당(현재 태평동성당)을 방문한다. 미사 후 군종 신부와 본당 신부는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초라한 성당을 보고 일본 사람들이 버리고 간 적산가옥이 많을 것이니 아무것이나 골라잡으면 조치를 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그래서 현재의 성당 자리에 있던 일본 사찰 ‘명증사’를 인수하고, 절 내부만 개조하여 1969년까지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결국 교황기가 새 성전을 선물한 것이었다.


이곳은 순교자의 피가 뿌려진 순교의 터이기도 하다. 뮈텔 주교가 기술한 「치명일기」 817편에 보면, “이 요한 회장은 동래 장교였는데, 울산에서 다른 교우들과 포졸에게 잡혀 십칠일 있다가 후에 ‘통영‘으로 가서 8명이 참수 치명하니 나이 팔십 세라.”라고 적혀있다.

또한, 제주도 함덕리 출신 김기량(펠릭스 베드로) 복자는 1866년 동료 4명과 함께 박하유를 팔기 위해 통영의 게섬에 상륙하여 마을로 들어섰다가 낯선 이들을 수상하게 여긴 주민들의 신고로 체포된다. 그들의 배 안에서 천주교 서적과 성물이 발견됨으로써 천주교 신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통제영 본영으로 압송되어 교수형에 처했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은 대부분 옥중에서 교수형으로 처해졌다고 하니, 그 장소는 바로 태평동성당 뒷부분 통제영 영지라고 한다.

미사를 마치고 만난 본당 신부님은 이 성당에는 두 가지 보물이 있다 하셨다. 성당 올라가는 길에 느티나무 고목 가지 사이에 1978년 동굴 모양의 석굴을 만들고 모신 성모상이 보물 중 하나라 한다. 좁고 위험한 언덕이 기도하는 장소로 어려움이 있자, 성당 마당에 새로운 ‘성모자상’을 건립하였다 한다. 다른 성당과 다르게 성모상이 둘이나 모셔져 있음이 의아했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다.


두 번째 보물은 종탑에 걸려 있는 종이다. 이 종은 해방 후 불하받은 일본식 절이 이제는 성당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던 종이다. 그 후 새 성전이 완성되고 필요성이 없어진 종은 관할 섬 지역의 신설 공소마다 옮겨 다니다가 2004년 본당 종탑으로 되돌아왔다 한다.


소박한 아침 미사 참여 덕에 귀한 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마치 순례길에 나선 듯 우연히 들른 서울 종로성당과 이곳 태평동 성당이 순교지임을 알게 되었다. 이 땅에 전교하기 위해 피 흘리며 순교한 많은 분들 덕에 지금 평화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keyword
이전 04화통영-박경리 기념관을 다녀오며